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촉촉이 내렸다.
며칠간 우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감정은 구름처럼 흘러가는 것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한 가지 감정에 얽매여 나를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 걷기를 하다가 달팽이를 만났고, 딸을 불렀더니 키우겠다고 했다. 딸은 빗물과 비슷한 온도의 물에 달팽이를 올려놓고 목욕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응애 벌레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에 있는 플라스틱에 흙을 깔고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주었는데 먹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부모의 마음도 그런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딸은 냉장고에서 두부를 주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달팽이가 두부에 입을 대고 마음껏 먹었다. 딸은 주말에 도서관에 갔고, 나는 달팽이 곁에 누워 있었다. 달팽이가 흙 속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딸은 잠을 자는 거라고 말했지만, 달팽이 곁에 누워 있다 보니 걱정이 되었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혹시 달라진 환경으로 죽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비닐장갑을 껴고 흙 속에 들어가 있는 달팽이를 꺼냈다. 달팽이 몸은 보이지 않고, 껍데기 안쪽으로도 흙이 들어가 있었다. 수돗가에서 물로 흙을 씻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조금씩 움직이더니 몸을 내밀었다.
'자고 있었구나. 잠을 깨워서 미안'
순간 웃음이 났다.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달팽이에게까지 감정이입해서 달팽이의 잠을 깨워 버린 것이다.
잠이 깬 달팽이 사진을 딸에게 보내줬고, 집에 왔을 때 딸에게 달롱이 잘 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딸은 그 이름이 맘에 든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딸은 달롱이 집을 사 왔고, 귀여운 동생을 보는 것처럼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브로콜리도 줘보고 두부도 잘라주면서.
창밖으로 비가 내린 도로 위를 차들이 지나가면서 시원한 물줄기 소리를 낸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한때 내 마음을 어지럽힌 상념들은 곧 지나갈 것을 잘 알고 있다.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슬픈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들은 이어져 있고, 흘러간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나는 지금 나의 태도에 충실할 생각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로 복잡한 마음의 숲을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물론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지만,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며,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가끔은 간절히 원했던 일이 괴로운 일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인 것이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