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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30. 2022

2등에서 탈출해야지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7일째

6월 30일 목요일 비


오늘로 휴직을 시작한 지 딱 일주일째다. 아무래도 바쁘게 일하다가 이제 막 시간이 좀 생긴 참이라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몰아서 하다 보니 일할 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단 아침에 헐레벌떡 준비해 첫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서 보내고 나면 본격적인 스케줄이 시작된다.


오늘은 자동차 정기점검을 하러 서비스센터에 갔다 왔다. 서비스센터가 성수에 있어서 이참에 성수동 카페거리와 맛집 투어를 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주 오랜만에 데이트인 셈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차가 평소보다 많이 막혔다. 서울에도 곳곳에 침수가 되거나 길이 끊긴 지역이 있다고 했다. 예약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차를 맡기고 고객 대기 라운지에서 아내랑 수다를 떨었다. 확실히 이런 스케줄로 바쁜 것은 일할 때랑은 다르다. 만약 업무 미팅에 10분 늦었다면 분명 마음이 엄청 불편했겠지만 오늘은 하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정비가 끝나고 아내와 성수동 맛집 골목으로 갔다. 그냥 집에서 밥을 먹거나, 첫째를 데리고 다니는 쇼핑몰이 아니고 이렇게 둘이서 성수동에 있으니까 연애할 때 생각이 났다. 실은 성수동은 우리가 결혼 전에 신혼집을 보러 다녔던 곳들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울숲은 우리가 결혼식을 준비할 때 스튜디오 촬영 대신에 했던 야외 촬영을 했던 곳이기도 했다.


문득 그땐 내가 아내에게 1등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2등이 된 지 오래다. 사실 이건 서운할 것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남편이 계속 아이보다 더 우선순위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아 그러고 보니 2등이 아니라 이제 3등이겠구나. 하지만 반대로 내 입장에서도 아내가 1등이라고 한다면 아내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첫째에게 아내가 금기의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사실 이건 아내 입장에선 당연히 자기가 1등일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을 텐데 대답은 놀라웠다.

"엄마는 내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는 이렇게 되물었고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시는 아이에게 그런 걸 묻지 않았다.


성수동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잠깐 쉬다 보니 첫째 하원 시간이 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내가 데리러 가긴 무리였다. 유치원 버스 도착하는 곳에 가있으니까 다른 아이들 엄마나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마중 대열에 합류했다. 어제 아내에게 배운 대로 아는 얼굴이든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이든 그냥 다 인사를 했다.


우리 아이 차례가 되어서 얼른 가서 우산을 씌워주면서 우비를 입혀주었다. 아이는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엄마가 왜 안 나왔냐고 하면서 아빠가 집에 가고 엄마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대놓고 그러니까 나도 좀 애써 나왔는데 실망스럽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만 좋아하지 말고 아빠도 좋아해 줘 ㅜㅜ"

"아빠도 좋아해! 엄마가 더 좋아서 그래"

마음이 좀 나아졌다.


툴툴대는 아이를 달래 보려고 이것저것 제안해봤다.

"우비 입었으니까 우산 쓰지 말까?"

"아니~"

"그럼 장화랑 우비 있으니까 놀이터에서 첨벙첨벙하고 들어갈까?"

"아~니"

"그럼 비 오니까 아빠가 집까지 안아줄까?"

"아~ 응! 응"

무슨 말을 해도 거절할 것 같더니만 안아준다니까 좋단다. 17kg이나 나가는 주제에.

아이를 들쳐 안고서 엄마 손잡고 걸어가는 친구들을 다 역전해서 제일 먼저 집으로 왔다.

아무래도 엄마를 이기고 1등을 하긴 쉽지 않겠지만, 비벼보기라도 하려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둘째 딸내미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애를 두 명 키우는 다른 집들 얘기 들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애 한 명씩을 전담마크하고 있다. 첫째도 아직은 아가라 챙길게 많은데, 그 와중에 둘째를 엄마 아빠가 다 챙기고 있으면 질투심과 분노가 폭발해 퇴행이 오거나 금쪽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우리도 둘째 낳으러 엄마가 갔을 때 첫째가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과 준비를 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첫째들은 엄마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둘째는 그만큼 엄마보다 아빠 손길이 많이 닿는다.


아내에게도 2등, 아들에게도 2등이지만 딸에게는 1등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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