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대만에서의 피서
한국도 그렇지만 대만에서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면
대낮에 어디 나갈 엄두가 안 난다...
햇볕은 마치 돋보기를 통해 응축된 태양 에너지가 나에게 집중되는 것만큼 뜨겁고,
바깥 공기도 사우나처럼 숨막혀지기 때문...
내가 생각하는 단어 중에 참 아이러니한 단어가 '더위를 피하다'는 '피서(避暑)'인데,
더위를 피하려고 바깥으로 (여행이든 뭐든) 나가야 한다는 게 오히려 더위를 피하기 보단 정면을 맞부딪쳐 이긴다는 '이열치열'에 가깝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튼 얼마 전 같이 훠궈를 먹으며 친해진 토니는 캠핑을 좋아하는 친구다.
그래서 그의 캠핑 크루와 함께 신주(新竹)라는 우리나라 가평이나 남양주 정도 되는 곳으로 캠핑에 가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날 초대해주었다.
캠핑에서 술과 음식을 빼면 남는 게 없기 때문에 변변한 캠핑 장비도 없는 나는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술이랑 안주거리로 퀵하게 장을 봤다.
물론 메뉴는 데킬라 등에 어울릴 라임과, 내가 좋아하는 스낵인 토스티토스에 살사/나초치즈 소스..
그리고 와인에 어울릴만한 치즈, 초콜렛 등으로 골라보았다.
장 본 짐들도 있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토니가 우리 집 앞으로 픽업하러 왔다.
다행히 날씨는 퍼펙트! (아침엔 그래도 버틸만 한데 낮이 되면 어떨지 좀 두렵긴 하지만 여튼 날씨가 화창한 게 구린 것 보단 낫다!)
나 외에도 몇 명 더 픽업할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집이 위치한 타이베이 북쪽에서 101타워가 있는 남쪽으로 이동중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스포츠카 한 대... (대만에선 한국보다 오히려 흔하게 아주 화려한 색깔의 스포츠카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두 명을 더 태운 후, 신주 산 속에 있는 캠핑사이트로 달렸다~
대만에서 2년 넘게 있었는데도 3명 이상의 대만 애들끼리 막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속도도 빠르거니와 각종 은어가 섞여서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가끔 내게 대화의 바통을 넘겨주어 내가 대화의 포커스가 되면 그나마 애들이 호응해 주어서 장단을 맞춰 보지만...ㅎㅎ
중국어는 역시 어려운 것 같다...
안면이 없었던 한 친구는 내가 홍콩 배우 '사정봉'을 닮았다며 분위기를 한껏 뛰워주었다..ㅎㅎㅎ
중간에 화장실도 들릴 겸 들어온 대만 휴게소..
대만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처럼 고속도로 곳곳에 휴게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산 속에 있는 캠핑 사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인근 마을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교외로 나온 사람들로 이 작은 마을마저도 북적였다.
식당 후보로 거론됐던 이 집엔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포기... 1955년 창업된 이 '앙구몐'이라는 면 집은 대만식 칼국수 같은 걸 팔고 있었다..
창업한 지 62년이나 된 집 치고는 리노베이션을 해서 그런지 겉과 안이 모두 깔끔했다..
다만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발 부산스러웠다.
혹시 몰라 이름을 올려놓고 메뉴판을 받긴 했지만... 이 더위에 오래 기다릴 순 없을 거 같아 아쉽지만 다른 집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길을 걸으며 다음 집을 물색해본다.
흑돼지로 나름 유명하다고 친구가 귀뜸해주는 데 아직은 영업시간이 아닌가 보다...
보통 맛에 자신 있는 집은 주인 맘대로 가게를 여는 것 같기도 하다...
신주는 화교계의 유대인과 같은 존재로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각지를 떠돌게 된 한족을 일컫는 '객가(客家)' 사람들이 많이 정착하는 곳이라 그런지 객가 요리점이 많았다.
이 집도 그 중 하나로 여긴 창업을 무려 1934년에 했단다...
마찬가지로 메뉴판을 보았는데 자리가 없어서...쿨럭...패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다른 사람들도 나들이 하기 좋다고 느꼈던 모양인지 어딜가나 장사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현지 친구의 리드를 따라 발길을 멈춘 곳은 역시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객가 음식점..
이 동네는 정말 명망 있는 토속 객가 음식점이 결집해 있는 집성촌 같은 곳이었다...
한둘도 아니고 이런 식당들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집도 마찬가지로 바로 자리가 나진 않았지만 다른 곳보단 대기자가 적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가게 앞에는 현재 대만의 총통인 차이잉원 총통이 다녀간 기념사진이 붙어있었다..
(참고로 차이잉원 총통도 객가족이라고 함)
아마도 이곳의 자리에 여유가 있었던 건 마을 중심가로부터 좀 떨어져 있기도 하고 비교적 리노베이션도 안 해서 다소 허름한 듯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역사가 저 정도 됐으면 맛은 틀림없겠지...라고 되뇌이며 자리를 잡았다.
죽순찜과 고추를 넣어 매콤하게 만든 돼지고기찜..
배가 무척이나 고팠기 때문에 바로 주문해서 먹었다.
모두 대만 특유의 맛이 느껴지는 토속 음식들..
이건 '또우깐(豆乾)'이라고 하는 말린 두부를 고추와 파를 넣어 매콤하게 볶은 요리..
우리나라 두부조림과 맛이 다소 유사하다.
(항상 대만 요리 이름 기억하는 게 어려워서 음식명은 까먹었는데)
이건 곱창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생강과 레몬즙, 그리고 고추로 잡내를 없애 매콤새콤하게 만든 요리!
곱창 매니아는 아니지만 이건 정말 입에 잘 맞았다~
아까 아래층에서 봤던 잘 조려낸 돼지고기찜과 죽순... (이게 아마 이 집이 자랑하는 주력 메뉴 같았다.)
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쫄깃쫄깃했고 아삭아삭함이 남아 있는 죽순찜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파는 '선초'라는 풀로 만든 차를 시켜보았다. (원래 안 먹어본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한 번 시켜봄)
근데 맛은... 딱히....ㅠ
살짝 씁쓰름한 것이 몸에는 좋은 거 같은데 마실만했다. 다만 기회가 있다면 다시 고르진 않을 거 같다 ㅎㅎㅎ
하이난 치킨처럼 겉은 꼬들꼬들 안은 부드러운 닭고기 요리...
대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양배추 볶음 '고려채(高麗菜)'
이 정도면 한국의 김치에 버금 가는 메뉴인 듯..
이건 돼지고기에 숙주, 칼국수보다 더 넓은 면을 써서 볶은 요리..
살짝 팟타이 같은 느낌이지만 맛은 대만스타일!
이건 돼지껍질에 파 같은 걸 넣어서 볶은 요리...
대만 사람들도 소고기를 많이 먹긴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소가 사람을 도와주는 동물로 특히 농민들 사이에서 신성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대대로 소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먹으면 그 사람에게 운세상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는 듯 하다..)
그래서 식당 가서 종종 호구조사로 소고기 못 먹는지 물어봐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것과 상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 요리에는 소고기 보단 돼지고기, 닭고기 위주였다.
대만에 가면 한국과 비슷하게 여러 요리를 시켜 자기 접시에 덜어 나눠먹는다.
한국인들의 식습관과 상성이 좋은 듯 ㅎㅎㅎ
본격적인 캠핑 전의 설렘을 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점심 식사~!
자, 이제 캠핑장으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