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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Jul 28. 2018

[대만 여름 등산] 초령고도 草嶺古道

무더위에 대들었다가 졸도 할 뻔했던 목숨 건(?) 산행

이번 한국 여름은 그야말로 24년만에 왔다는 찜통 더위이지만,
사실 대만은 이런 여름이 거의 매년 반복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여름을 매년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는 대만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 이들에게 이건 그냥 삶의 일부분으로서 체질도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초여름 날씨에도 파카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아마 그들은 대만 늦가을, 초겨울 날씨에도 얇은 옷을 입고 다니는 한국 사람을 보면서 신기해 하는 것처럼,
살아온 환경에 따라 사람은 그렇게 다른가 보다.

작년 8월 그야말로 한여름 대만도 푹푹 찌는 여름이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의 권유로 등산을 가기로 했다.
평소 가보고 싶기도 했던 등산길이라 어찌저찌 승낙을 하긴 했는데...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기도 했고 아침인데도 날이 워낙 더운 걸 보고, 이거 괜히 등산 가겠다고 한 건 아닐까 덜컥 걱정이 앞섰다.

타이베이 시정부역 근처에서 만나 친구의 친구 차를 얻어타고 초령고도로 향했다.
이 즈음 대만은 여느 여름답지 않게 비가 오지 않아 여름인데도 건조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던 터였다.
차를 산 중턱에 세워두고 등산로 초입에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고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거 같은 기분이다...
이제 막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언제 하산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행히 막상 등산을 시작하니 녹음이 드리워져서 따가운 햇빛은 피할 수가 있었다.
아직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땀이 한 바가지씩 쏟아지는 게 왠지 그나마 챙겨운 500ml짜리 페트병 물 하나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껴 마시기 시작했다.

하늘은 구름도 없이 청명한데..
오늘 같은 날은 구름이 햇볕을 좀 가려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진을 봐도 뜨거운 햇볕에 말라가는 나뭇잎이 보인다..

초령고도는 구비구비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지는 꽤나 긴 등산로인데,
사실 나 말고 다른 동행자들도 벌써 꽤나 헥헥 대고 있었던 지라 적당히 올라갔다가 내려올 분위기...
전 코스를 다 돌려면 약 3~4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절반정도를 목표로 스타트~!

중간중간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목표로 했던 지점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더니 한 1시간 정도라고 하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다시 힘을 내보았다!
등산로 초입에 있었던 뭔가 사연이라도 있는 바위...

이런 찌는 더위에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이런 휴게 공간이 참으로 고맙다..

녹음을 빠져나오니 나무 없는 그야말로 고원지대가 펼쳐 진다...=_=;; 아... 이거 햇볕 어쩌나...

1시간 정도 오르니 뭔가 정상 비스무리한 곳이 보인다!
어떻게 서든 저기까지 올라가보자는 생각으로 스퍼트를 내본다.

근데 막상 올라보니 더 높은 곳이 있다...;;
오두막은 몇 년째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건지 지붕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뜨거운 열기 때문에 온풍이었다 ㅠㅠ
잔디를 봐도 오랫동안 비가 없어서 그런지 바싹 말라 있다..

우리가 올라온 등산로..
넷이서 올랐는데 둘은 그냥 지쳐서 저 뒤 어딘가에서 그냥 쉬겠다고 해서 나머지 둘이서 올라왔다...
물도 이제 거의 없는 상태...

사실 진정한 초령고도는 여기서부터이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일품인 등산 코스...

이 근처에서는 파라글라이딩도 한다고 해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여지껏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지는 풍경이다..
저 아래 해변은 작년까지 서핑하러 자주 갔던 와이아오이고 바다 저 편에 보이는 건 귀산도...

크지 않은 섬이지만 자연 지형은 꽤나 험준한 대만...

그래도 이대로 내려가긴 좀 아쉬워서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 있었던 태풍으로 망가져 보수공사 중인 모양인듯...
날이 너무 더워 등산객이 별로 없긴 했지만 이 날씨에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도시락을 꺼내 그늘 아래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진짜 잘못하다간 이 땡볕에 열사병이라도 걸릴듯...
모험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물도 떨어진데다 경사도 워낙 높은 데다 날도 더워서 적당히 하고 내려가야겠지 싶었다...

군대 시절 행군 시 오르막길을 오를 때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계단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이 무거워 다음 스텝을 옮기는 것이 상당히 버거워서 몇 걸음 걷다가 뒤 돌아서 한 숨 돌리고 하면서 다음 오두막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았다.

저 앞에 홀로 걷는 등산객도 땀 범벅으로 힘겹게 다음 오두막으로 향하는 중...

드디어 오른 오두막에서 내려다 본 전경...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과 바싹 말라 있는 수풀의 모습에서 경이로웠던 여름 더위가 아직까지도 느껴진다.

저~~~ 아래 자그맣게 보이는 게 그 부숴졌던 지붕의 오두막이다...
나무가 없어 꽤나 가까워 보일 수도 있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보이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은 코스..
대만섬 북동쪽의 툭 튀어나온 반도 같은 곳이다보니 오른쪽으로는 태평양이 왼쪽으로는 동지나해가 보인다.

사실 이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하이킹 코스가 펼쳐지지만...
물도 떨어졌고 점심시간도 다 됐고 지칠대로 지치기도 해서 욕심이 났지만 이쯤에서 하산을 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하필 또 검은 옷을 입어서 등짝이 타는 줄...ㅠ

아마 이 코스는 나무가 없다보니 한여름보다는 봄이나 가을에 한번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기수를 돌렸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내려가자니 아쉬웠던 지 사진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햇빛이 뜨겁지 않고 바람 부는 선선한 날에는 여기 책 한 권 가져와서 책읽다 바다 보고 하늘 보며 몇 시간이나 누워있고 싶다...
(근데 이 날은 그냥 인간 후라이 될 거 같아 몇 분만 누워 있다가 익는 것 같아 바로 일어났다..ㅎㅎㅎ)

차를 타고 지붕 부숴진 오두막 지점까지도 올라올 수 있는 모양...
길이 이니셜D에서 나올 법한 구비구비 코스다...

아까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중...
아까는 너무 더워 그냥 지나쳤던 곳이었는데, 뭔가 비석이 있는 걸 보니 의미가 있는 곳 같아 표지판을 들여다 보았다.

19세기말, 대만 지역 사령관인 류밍등이라는 장군이 이쪽 지역을 시찰하다가 강한 바람과 짙은 안개를 보고 이를 제어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라는 중국 전설에 따라 '호랑이'라는 글자를 넣은 비석을 세웠다는 이야기...
이것도 재밌게 수컷 호랑이 비석과 암컷 호랑이 비석 두 개가 있다는데 이 녀석은 암컷 비석이라고...

사진을 비스듬히 찍은 게 아니라 태풍의 영향으로 반쯤 쓰러진 표지판...

정말 반쯤 탈수되어 유체이탈이 되어가는 상태로 하산...
나머지 둘은 이미 차에 들어가서 에어콘 키고 대기중이라고..ㅎㅎㅎ (깊숙한 산이어서 그런지 전파가 잘 터지지 않아서 서로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샤오헤이원(小黑蚊)'이라는 모기보다 작은 검은 벌레인데 한 번 물리면 모기보다 한 200배는 더 가렵고 오래가서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정말 자다가도 가려워서 잠에서 깰 정도..ㅠ)
예전엔 얕봤었는데 반바지 입고 공원 벤치에 몇 초만 앉아있어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녀석들이 맹공을 퍼부어서 대만은 공원이 많아도 잘 안 가게 되었다...ㅠ
그래도 다행히 이 날은 방충제를 갖고 와서 실컷 뿌려줬다... 

저 아래 계곡에 들어가서 몸이라도 식히고 싶다...ㅎㅎ

대만도 한국처럼 계곡 근처에서는 저렇게 고기 구우면서 피크닉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
한국만큼 많이 보진 않았지만 있긴 있었다... (그래도 일부 몰상식한 한국 등산객처럼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가진 않기를...)

정말 기진맥진 탈진한 상태로 찾은 식당...
대만식 요리들로 한 상 가득...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는 뜬금없이 차 안에서 노래방 모드 ㅎㅎㅎ
종종 대만 사람들은 저런 휴대 마이크를 사서 차 안이나 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나름 신기했다.
위에는 마이크..아래가 바로 스피커 ㅎㅎㅎ
정말 대만사람들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노래방을 엄청나게 좋아한다..ㅎㅎ

더위에 맞서 목숨 걸고 나섰던 등산...
부지런한 주말도 좋지만 더 욕심 부렸다간 욕 봤을 등산의 추억...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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