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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Jul 26. 2021

동행의 기쁨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소중함

   아침 일찍부터 열차를 타기 위해 바라나시 가트 주변의 시장 골목을 벗어나 고돌리아 사거리를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울리는 경적과 매연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큰 두려움과 고통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 정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출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여행의 시작은 혼자라서 두려웠고, 혼자라서 선택할 수 있었으며 혼자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기도 했다. 그리고 바라나시를 마무리하는 오늘은 동행이 생겼다. 


   먼저 와서 동행을 제안한 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K였다. 그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 중년의 아저씨였다. 푸석푸석한 피부와 아무렇지 않게 삐져나온 수염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까치집 머리를  하고 있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손에는 리모컨을 쥐고 잠들어 있을 모습이 상상된다. 한국이라면 흔히 볼 수 있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이런 만남은 흔하지 않다. 아내와 자녀가 있는 K의 여행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시작한 몇 달의 모험이었다. 그런 결정을 했을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몇 차례 K에게 여행의 이유를 물었지만 나와는 다르게 본인의 여행을 떠벌이지 않았으며 그저 그의 무거운 입을 조심히 내게 보였다. 머뭇거리지도 않았고 그저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의 입술만 보아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소리 없는 대답 대신 슬며시 웃음을 띄워 보낸다. 

   두 남자는 흙먼지를 뚫고 바라나시 정선 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행이 있기에 빠르게 카주라호 행 플랫폼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그렇지만 나만은 완벽하지도 순조롭지도 못했다. 내 모습은 인도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피부가 더 도드라질 정도로 창백해졌고, 눈은 쾡한 상태였다. 그저 입꼬리만이 동행의 기쁨과 순조로움에서 오는 즐거움으로 인하여 살짝 올라가 있을 뿐이었다. 

   창백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인도에 오면 많은 여행자들이 경험한다는 물갈이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갈이는 정말 끔찍했다. 그런데도 어디서부터 오는 긍정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인도로부터 반가운 인사를 그리고 환대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배에서는 우렁찬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무릎은 쪼그렸다 폈다를 반복해서 저려왔다. 거기다 앞뒤로 맨 배낭이 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내 복부를 압박해왔다. 그러던 중 쾡해진 나의 눈에 갑자기 초점이 잡힌다. 한 여행자의 무리가 내게 와서 인사를 건넸다. 식당에서 만났던 중국인 친구들이 같은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한 목소리로 놀란다. 같은 열차 거기에 같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 번 식당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눈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반갑다니. 그저 그랬을 뿐인데 이들 모두 우리가 되어 함께 동행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잠깐 눈인사만 나눈 사이도 다른 지역에서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반갑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인연일 뿐인데 여행지에서 만큼은 그저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생도 이러할까? 스쳐 지나가기에 그리고 스쳐 지나왔기에 그냥 보내버렸던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는 상당히 많다. 나는 관계를 함에 있어서 여러 단계를 나누고 만나는 사람들을 구분해왔다. 그러기에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여유 없이 자신을 몰아쳐왔기에 주변에 사람을 두기보다는 쳐내기 바빴다. 그리고 내 기준이 너무나 강했기에 만남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물갈이로 인하여 비워낸 속에 다시 나의 생각들로 가득 들어찬다. 어차피 배탈 때문에 금방 배출되겠지만 속에 담는 생각을 깊이 음미한다. 생각의 맛을 기억한다면 생활로 돌아갔을 때 그 맛을 기억해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동행이 기뻤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함께하는 모두가 너무나 즐거웠다. 서로의 간식을 나누고, 도시락을 나눴다. 그렇지만 간식도 도시락도 그 어떤 주전부리도 물갈이로 인하여 입을 댈 수는 없었다. 그 배탈은 분명 병균에 의한 것이었다.  나의 불신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기쁨에 목매어하며 쉴세 없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켤 뿐이었다. 아쉽게도 그들이 건넨 호의에는 입을 댈 수 없었지만 그 맛은 기억한다. 속을 비워내고 또 비워냈어도 그 맛만큼은 내 입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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