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MI Jul 28. 2021

바보 같아도괜찮아. 멍청해도 괜찮아.

   밤을 달리는 기차는 아침이 오기 전 새벽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내리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열차에서 내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마중 나온 것은 새벽의 내음과 배짱 두둑한 릭샤(인도의 오토바이 택시)만 가득할 뿐이었다.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보다 릭샤꾼들이 더 많았다. 너무나 당연스럽다는 듯 릭샤를 올라타기 전 흥정부터 시작한다. 말할 것도 없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한다. 그러기에 흥정은 필수다. 20분여의 시간이 지났을 때 역 앞에 남아있는 여행객은 나를 포함한 나의 동료들 5명뿐이었다. 

   릭샤꾼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말도 안 되는 가격 제시를 계속했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이라 가로등 불 빛 조차 없는 이 거리를 걷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릭샤에 오르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마지막까지 남게 되자 우리는 처음에 제시하던 가격에서 절반을 더 깎아서 제시했다. 이게 싫으면 우리는 그냥 걸어가겠다며 도로로 걷기 시작하자 한 턱 챙겨보려고 하던 릭샤꾼들은 서로가 데려다주겠다고 앞다퉜다. 

   난 여행을 하면서 가급적이면 가격 흥정을 하지 않는다. 합리적 가격보다는 흥정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또 워낙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싫어했고, 귀찮아했다. 그런데 함께하기에 이 정도 뻔뻔함은 극복이 가능한가 보다. 




   카주라호에서의 일상은 늘 숙소였다.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물갈이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속을 다 비우고 나면 괜찮을 것 같지만, 빚을 독촉하는 빚쟁이들처럼 더 쏟아 내라고 배를 두드린다. 설사만 정신없이 하는 터에 뭐하나 제대로 입에 놓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카주라호는 "누렇다." 이곳의 신전들과 여기를 비추는 태양의 색이 원래 노르스름한 것인지 설사로 인해 내 시아가 누렇게 된 것인지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그라로 이동하는 열차에 타 있었다. 그리고 열차가 목적지에 멈춰 서자마자 나는 약국을 찾았다. 

   약을 먹고 단 몇 시간 만에 물갈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었다. 이 얼마나 우매한가? 바로 약국부터 찾았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핑계 없는 고집을 피우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멍청함은 멍청함대로 얻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동행들에게 빙구 같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나의 멍청함에 대해 너스래를 떤다. 나의 우둔함을 빠르게 인정하고 그것을 농담으로 바꿀 수 있는 여유를 그들에게 보인다. 

   몸이 조금 회복되었고 이에 일정을 정돈한다. 내 일정은 이랬다. 금요일에 타지마할을 보고 그날 저녁 버스로 조드푸르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버스표와 숙소의 예약을 끝마쳤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 일정에 큰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타지마할의 휴관일을 체크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하필이면 금요일이 타지마할의 휴관일이었다. 한국처럼 당연히 월요일이 휴관일 거라는 생각에 상세히 알아보지 않았던 내 잘못이다. 또 한 번 빠르게 바보 같음을 인정하고 이후의 일정을 모두 취소해버렸다. 

   물갈이를 할 때는 한국에서 가져간 설사약이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주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설사를 일으키는 균과 인도의 균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몰랐던 사실도 아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를 후원하면서 받았던 뉴스레터에서 본 기억이 있다. 또한 한국의 휴궁일과 이곳 인도의 휴관일이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온 우매함인가? 나의 기준은 아직도 나에게 맞춰져 있기에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자막 대기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오만함이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아그라의 매연 속을 걸으면서 인정하기로 했다. 바보 같은 실수도 하고, 멍청한 모습을 보일 때면 그때마다 그것을 인정하기로 결심했다. 마치 내 신념이라도 깨지는 것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이것 하나 인정한다고 내 삶의 전부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 실수하고, 바보 같으면 어떠랴. 이후의 일정이 그리고 계획이 어긋나면 조금 어떠랴. 이후에 오는 감동도 이전에 받을 수 없었던 감동도 그대로 머물러 있을 텐데 말이다.


 



이전 07화 동행의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