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낮춘다고 좋은 사람이 나타나는 건 아니잖아요
"너는 눈이 너무 높아."
이런 말을 듣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부터였다. 처음에는 웃으며 넘기기도 하고,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은 삼켜지지 않고, 목에 걸린 것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마치 '넌 눈 높은 거 맞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질문했다.
"너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나는 답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티키타카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그리고 나랑 성격이 잘 맞았으면 좋겠어."
그 사람은 나에게 다시 말했다.
"너무 추상적이지 않아? 넌 진짜 눈이 높은 것 같아. 외적인 조건은 없어? 그래야 사람을 만나지."
'대화가 잘 통하는 걸 원하는 게 눈이 높은 건가? 나랑 잘 맞는 걸 원하는 게 눈이 높은 건가? 내가 추상적인 조건을 말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면 생각하는 기준 자체가 높은 걸까?' 그때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적인 조건을 따지는 게 눈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눈이 높지 않다고 여겼다. 그런데 반대로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눈이 높다는 말을 들으니 심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정말 눈이 높은 걸까?
시간이 지나도 내 이상형은 늘 한결같았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스스로 눈이 높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맞아, 나 눈 높아. 인정해!'
소개팅을 하고 잘되지 않았을 때, "너는 눈이 너무 높아. 눈을 좀 낮춰."라는 말을 들어도 이젠 별로 개의치 않는다. 눈 높은 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기 때문이다.
이참에 남들이 흔히 말하는 '원하는 배우자상'을 리스트로 적어보기로 했다. '그래, 대체 어떤 사람을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적어보자.'는 마음으로.
1.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2. 웃음코드가 맞는 사람
3. 책임감 있는 사람
4. 예의 바른 사람
5.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
6.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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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다 보니 어느새 번호가 20번까지 갔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이렇게까지 많았다고? 그래, 눈 높다는 소리 들을 만하다."
눈 높은 걸 인정한 김에, 아주 제대로 만나보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이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배우자상'의 조건을 전부 충족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중에서 2/3 정도? 조금 더 욕심을 내려놓으면 반 정도만 맞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적어놓고 "저는 눈이 높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나도 가끔 고민한다. '내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렇게까지 따지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위해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따진다기보다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 : 결혼을 하려면 눈을 낮춰야 하는데, 참 쉽지 않아.
친구 : 지금껏 혼자였는데, 이제 와서 눈 낮추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이지만 생각해 보니 꽤 진지한 문제였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포기하면서까지 결혼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런 현실에 쉽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위한 연애가 아니라, 연애를 하다 평생 함께하고 싶을 때 하는 게 결혼이니까.
나는 여전히 눈이 높고, 추상적인 이상형을 가지고 있다. 대화가 잘 통하고, 웃음코드가 맞는 사람. 변함없는 나의 이상형이다. 이런 내 이상형을 굳이 바꾸고 싶지는 않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인 삶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눈이 높은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더디더라도, 나는 나의 마음을 지키며, 나와 맞는 사람을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