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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l 23. 2024

강남도 사람 사는 데예요

여기도 할인코너만 붐벼요


 



 강남으로 이사오며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의 걱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것이었다. 대출까지 무리하게 껴가면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비난의 어조가 느껴지는 조언도 들었다. 그 보다 많은 들은 이야기는 거주민들과의 '수준차이'였다. 너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이웃들 수준 맞춰 살라면 아무래도 버겁지 않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부부는 별 걱정이 없었다. 빚을 내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감당 못 할 정돈 아니었다. 허리띠를 조금 졸라매면 어떻게든 되지 싶었다. 그리고 원래 남들 사는 모습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나와, 강남에서 쭉 살았으되 소박하고 평범하게 자라온 아내이기에 갑자기 무리해서 사치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있었기에 마음 한편에 불안감은 있었다. 우리야 괜찮지만, 아이에게 친구들만큼 못 해 주면 어떡하지 하는 부모로서의 양심이랄까.


 나의 경우엔 '비싼 동네'라는 이미지도 불안감에 한몫했다. 아내를 만나기 전, 강남의 상징과는 같은 주상복합 아파트 앞 카페에 갔다 크게 놀란적이 있다. 수도권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체인점임에도 음료 가격이 다른 지점에 비해 2~3천 원씩 비쌌기 때문이다. 강남 물가가 비쌀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균질(均質)과 균등가격을 내세우는 체인점마저 이럴 줄이야. 그때 "어휴, 강남에선 못 살겠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강남에도 동네 할인마트는 있었고 딱히 물건이 비싸지도 않았다. 옷도, 가구도, 생활용품도 늘 사던 곳에 가서 쇼핑했다. 강남에 산다 뿐이지, 우리 생활에 변한 것은 없었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다름(?)도 딱히 문제 되진 않았다. 강남 아파트 주민들이라고 해서 단지 내에서 명품을 걸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비싼 음식만 먹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편한 차림으로 산책길을 걷고, 아이들은 불량식품을 들고 놀이터를 누볐다.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자면 귀신같이 특가나 할인 제품만 동나서 휑한 매대를 볼 수 있었다. 품위 있어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계산 도중 행사 제품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물건을 원래 자리에 놓고 오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내가 이사를 앞두고 종종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시댁에서 '강남 생활 수준'이니, '강남 하우스 푸어'니 하는 말을 처음 들었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오빠, 내가 사치스러워 보여? 우리 가족들이 부담될 만한 소비를 해? 아니면 반대로 이 동네 사느라 쓸 거 못 쓰고 먹을 거 못 먹고 불쌍하게 살아? 아니잖아. 우리 그냥 적당히 남들처럼 잘 살아왔어. 지금도 그러고 있고."


 잠깐 살아봤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소한 그들의 생활모습을 보다 보니 혹시 이 동네에 생각보다 부자가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혹시 다들 우리처럼 평범한 맞벌이 직장인이 '영끌' 해서 왔거나, 아이들 교육 때문에 잠깐 전세로 사는 건 아닐까? 우리 생각보다 쉽게 이 동네에 녹아들지도?


 그건 아니었다. 왜 그렇지 않은지를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역시나 행사상품만 동난 아파트 상가 내 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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