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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l 02. 2024

매수자인데 왜 '을(乙)' 같지?(3)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을(乙)이 된 경험을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온통 '부탁할 일 투성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매물 주세요"로 공인중개사에 시작된 부탁은 "깎아 주세요"에 이어 "계좌 주세요"로 마무리됐다.


 '좋은 집을 사고 싶으면 부동산(공인중개사)에 잘해라'라는 말이 있다. 부동산 중개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좋은 물건이 들어왔을 때, 아무래도 먼저 생각나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잘한다'는 의미가 예전에는 틈틈이 같이 수다도 떨고, 아무 이유 없이 방문도 해보고, 간단한 간식이라도 대접하는 등의 '올드한' 방식이었다면 요새는 그 뜻이 조금 바뀐 것 같다. 집을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인중개사도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인간적인 접촉보다는 서로 얼마나 일을 깔끔하고 빠릿하게 처리하느냐가 좋은 고객의 기준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천부적이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최대한 공인중개사의 연락은 바로 받았고, 받지 못하면 시간 될 때 즉시 콜-백(call-back) 해주었다. 매수 금액이나 집을 보러 갈 수 있는 시간을 정할 때도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를 분명히 말해주었으며 남편(나)과 의논이 필요할 시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연락 주겠다는 회신기한도 분명히 정하고 지켰다.


 그 덕일까. 확실히 처음보다 자주 연락이 오는 느낌이었다. 몇 번 아내를 따라 공인중개사무소에 방문해보니 아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이 사람이라면 조건만 맞음 바로 거래할 거 같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위 '간만 보는' 손님이 아닌 진짜 실수요자로 보였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거래한 집을 소개받던 날도 그랬다. 우리 말고도 매물 소개를 요청한 집이 여럿 있는 듯한 상황에서, 아내는 바로 공인중개사무소로 직접 향했다. 그리고 바로 집을 구경했고, 남편에게 물어보고 승낙받으면 바로 가계약금을 넣겠다고 했다. 나 역시 그녀를 믿고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동의했고.


 그렇게 잠정 매수 후보가 된 다음에는 '깎아주세요'를 시전 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일정, 조건 다 맞추고 집 상태에 시비 걸지 않을 테니 금액을 조정해 달라는 요청. 절대 처음 제시한 가격 밑으로는 팔지 않겠다는 매도인의 으름장이 있었음에도, (무려) 천만 원을 깎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공인중개사 노력과 우리의 간곡한 요청이 통한걸 수도 있고, 매도자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집을 보여주는데 피로도가 쌓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십 수(또는 수십)억 하는 강남 집값에서 그 정도는 빼줘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우리에게 집을 팔겠다는 답을 받았음에도, 매도인의 계좌번호는 오지 않았다. 몇 십분, 아니 한두 시간은 흘렀을까. 혹여나 거래서 무산될까 싶어 (일단 출근하시라는 중개사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그 자리를 지키던 아내가 받은 답신은, 역시나 천만 원 까지는 못 깎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가격을 올리는 건 상도가 아니라는 중개사와, 다시 생각해 보니 도저히 그 값엔 못 팔겠다는 매도인간의 줄다리기는 원래 약속한 가격보다 몇 백만 원을 더 올리겠다는 합의점으로 귀결되었다. 그 이후에 계좌번호를 받은 건 또 수십 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렇게 우리의 거래는 몇 주 뒤, 애매한 숫자로 인터넷 부동산 거래 현황에 등록되었다. 00억, 또는 0억 0천만 원이라고 '쿨하게' 찍힌 다른 거래들 사이에서, 백만 원 단위까지 기재된 우리의 거래가격을 보며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가 한동안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였다. 한 푼이 아쉬운 매수자가 몇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막판에 떼썼다고 여기겠지. 왠지 모를 억울함(?)이 들었다.  


 이후 정식으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마치 자기가 젊은 부부에게 큰 선심 쓴 것 마냥 생색을 내는 매도인과 상대편 공인중개사의 태도에 우리의 기분은 엉망이 되었다(이 건은 '공동중개'로, 매수인 중개사와 매도인 중개사가 별도인 경우였다).


 도대체, 시세보다 꼴랑(!) 몇 백만 원 할인해 주는 상대에게(심지어 자기들도 돈이 필요해서 팔면서), 어째서 돈 주고 사는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놈의 귀하다는 강남 아파트 '로열동'이라서? 차라리 좀 덜 좋은 위치 더 싸게 사고 말지.


 하지만 깎은 금액으로 이사비, 도배 비용 등을 충당하며 이내 다짐했다. 상한 기분은 한순간이어도 돈은 남는다. 앞으로도 '멘털'관리 잘해서 돈 버는 거래를 하자.


 현재 우리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결과적으론 잘 된 것 아닌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집, 꾹 참고 견딘 보상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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