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갈아타기'로 강남에 집을 마련한 케이스다. 이미 결혼 전부터 아내와 합의한 사항이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돼있었다. 집을 사고파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일지부터, 내 소득이 비해 엄청나게 큰 규모의 대출을 받아야 될지 모른다는 사실까지.
하지만 간과한 부분은 '상급지'와 '하급지' 부동산은 단순히 가격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주, 보유기간 등 각종 세금 관련문제에 발목 잡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매수를 목표로 한 강남 집들과 내가 가진 집의 가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부동산 하락장엔 하락기라고 가격차가 커지고, 상승장엔 또 상승기라고 갭이 더 벌어졌다.
지난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집을 매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한참 전부터 매물을 내놓았으나 우리 집을 보러 온다는 연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정작 전화 오는 곳은 매수를 위해 임장(臨場) 갔던 지역의 공인중개사로,좋은 물건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번번이 "저희 집이 안 팔려서요"라는 답으로 일관하며 수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목 빠져라 기다리던 매수 희망자가 등장했다(우리는 그를 귀인이라 불렀다). 아내와 나는 최근에 연락 왔던 중개사무소부터 순서대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에 찬 우리에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그 집 진작에 나갔죠. 강남에서 그 정도 조건이면 며칠, 빠르면 당일에도 나가요."
앞으로 연락 오면 바로바로 집 보러 오고, 진짜 계약할 마음 있으면 최대한 빨리 가계약금을 상대 계좌로 '쏘라는', 조언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말은 덤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단 몇 시간 만에 의사결정을 끝냈기에 만족할만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도 그땐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어차피 나중에 돌려받을 보증금이니까 가능했지... 그 2,3배 되는 규모의 거래를, 앞으로 집 값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며칠 만에 결정하라니.
그때부터 우리는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빨리 소개 좀 해달라며 몇 달 전에 방문했던 공인중개사들을 다시 한번 순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