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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눅한과자 Jun 25. 2024

매수자인데 왜 '을(乙)' 같지?(2)

강남집은 발이 달렸나




 나는 소위 '갈아타기'로 강남에 집을 마련한 케이스다. 이미 결혼 전부터 아내와 합의한 사항이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돼있었다. 집을 사고파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일지부터, 내 소득이 비해 엄청나게 큰 규모의 대출을 받아야 될지 모른다는 사실까지.


 하지만 간과한 부분은 '상급지'와 '하급지' 부동산은 단순히 가격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주, 보유기간 등 각종 세금 관련문제에 발목 잡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매수를 목표로 한 강남 집들과 내가 가진 집의 가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부동산 하락장엔 하락기라고 가격차가 커지고, 상승장엔 또 상승기라고 갭이 더 벌어졌다.


 

 지난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집을 매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한참 전부터 매물을 내놓았으나 우리 집을 보러 온다는 연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정작 전화 오는 곳은 매수를 위해 임장(臨場) 갔던 지역의 공인중개사로, 좋은 물건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번번이 "저희 집이 안 팔려서요"라는 답으로 일관하며 수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목 빠져라 기다리던 매수 희망자가 등장했다(우리는 그를 귀인이라 불렀다). 아내와 나는 최근에 연락 왔던 중개사무소부터 순서대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에 찬 우리에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그 진작에 나갔죠. 강남에서 그 정도 조건이면 며칠, 빠르면 당일에도 나가요."


 앞으로 연락 오면 바로바로 집 보러 오고, 진짜 계약할 마음 있으면 최대한 빨리 가계약금을 상대 계좌로 '쏘라는', 조언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말은 덤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단 몇 시간 만에 의사결정을 끝냈기에 만족할만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도 그땐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어차피 나중에 돌려받을 보증금이니까 가능했지... 그 2,3배 되는 규모의 거래를, 앞으로 집 값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며칠 만에 결정하라니.


 그때부터 우리는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빨리 소개 좀 해달라며 몇 달 전에 방문했던 공인중개사들을 다시 한번 순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좋은 매물 나오면 연락 주세요. 퇴근하고서라도 바로 보러 올게요."


 그렇게 우리의 본격적인 '을(乙) 질'이 시작되었다.



집은 파는 게 어렵지, 돈 들고 사는 건 쉬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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