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강남에 자가를 마련하였으나, 소위 '현타'는 집을 사기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었다.
아직 매도 가능 시점이 한참 남은 집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그래서 그 집을 팔아야만 강남 입성을 할 수 있었음에도 우린 1년도 더 남은 시점부터 집을 보러 다녔다. 공인중개사들과 안면도 터야 했고, 원하는 집을 제 때 망설이지 않고 사기 위해선 꾸준히 지역 부동산 시세를 파악해야 했으니까.
1년 후를 위한 사전 작업 정도로 여겼기에 딱히 우리에게까지 연락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집 살 돈이 없다고 누차 말했음에도, 잊을만할 때면 한 번씩 매물을 소개하는 연락이 오곤 했다. 나중에 때 되면 다시 연락 달라고 말하면서도 늘 궁금했다. 아직 가지고 있는 집도 못 판다는데 왜 계속 연락이 오는 것일까. 그 답은 우리 전셋집을 구해준, 어떻게 보면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 사장님께서 주셨다.
어느날, 목표로 하던 아파트가 급매로 나왔다는 소식에 일단 공인중개사에 달려간 우리. 정말 '급매'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가격임에도 아직 팔리지 않은 집 얘기를 하며 매수를 거절하자 그분이 말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대출 왕창 끌어 사서, 집 팔릴 때까지 이자 내며버텨도 이익이라고. 한 10억만 대출받으면 나머지는 자기가 전세도 세팅해 주고 알아서 해주겠단다. 얼마 전 큰 평수 매수한 사람도 대출을 십몇 억이나 내서 샀단다. 응? 집 값이 아니고 대출액이... 잘 못 들은 건 아니겠지? 내 귀를 의심했다.
"사장님, 저희 소득이 그렇게 대출받을 정도가 안 돼요. 설령 대출은 나오더라도 원리금 갚으면 생활이 안 될 것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힘 좀 들더라도 연봉 높은 삶을 살 걸, 후회하는 나 대신 아내가 답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그냥 친정이랑 시댁에 좀 도와달라고 해요. 양가(兩家)에서 한 2,3억씩만 받아오면 대출받아도 크게 부담 없겠구먼. 그쪽도 부모님들 도움 받을 수 있잖아요. 나도 이번에 딸 집 옮기는데 좀 도와줬어."
아, 그렇구나! 그렇게 쉬운 방법이. 저희는 그럴 사정이 안된다고 대답했음에도, 사장님은 딱히 믿는 듯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의 표정엔 '젊은이들이 (받을 수 있는데도) 도움 없이 자기들끼리 해결하려 하네'라는, 대견히 여기는 투가 서려있었다. 더 이상 설명을 포기하고 시기 맞을 때 다시금 도와주십사 부탁하며 문을 나섰다.
그 외에도 나를 기죽게 만드는 일은 몇 번 더 있었다. 일시적으로 자금이 모자라면 본인이 빌려주겠다던 중개사 아저씨, 중도금 없이 계약금과 잔금을 5:5로 내면 몇 천만 원 싸게 해 주겠다던 매도인, 시세보다 조금 싸게 나왔다고 직접 살 집에 방문 한 번 안 해보고 계약금을 쏴버리는(!) 매수자...
세상은 넓고 부자는 많다지만 내가 직접 이런 광경들을 보게 되다니. 과연 그들이 사는 동네에 내가 무리해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맞는지, 살게 되더라도 저런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감당 가능한지 고민이 깊은 시기도 있었다. 집을 사는 데 있어 금전 문제가 실질적인 허들이었다면, 이런 류의 감정적인 허들이 때론 극복하기 더 힘들었다고 해야 할까.
멘털을 다잡고 이 동네가 적응할 수 있게 된 건, 강남에 집을 사고 나서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