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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경험은 최악의 원단!

by 영화하는 이모씨

묘사를 하다 보면 실제 작가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녹여내는 일이 많이 있다.

묘사뿐 아니라 아예 스토리 자체를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으면서 동시에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다.


사실 좋은 이유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뻔한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 생동감, 실제가 주는 디테일등. 장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소비자들에게 '실화'라는 말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장점들 뒤에는 굉장히 분명하고 위험한 단점이 도사리고 있다.


작가가 아는 그 완벽함이 문제이다.


작가가 경험을 스토리에 녹여내겠다고 결심한 것만 봐도 보통 심창찮은 경험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게 꽤나 임팩트 있는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작가는 그런 경험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치 그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간듯할 것이다.

그때 주고받은 이야기들, 상대방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의 공기, 냄새, 온도, 바람, 빛깔까지 완벽하게 모든 세포들이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순간을 글로 옮길 때, 작가들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실제로는 더 많다.

경험을 잘못 녹여낸 경우를 보면 경험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헐렁하다.

단어 하나하나는 굉장히 과격하고 격정적인데 반해서 어쩐지 자세히 들려주지를 않는다.

또는 스토리상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 경험을 녹여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너무 짧고 단순하게 적고 만다.


그 이유는 자기가 아는 것을 소비자에게 전해주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든 경험의 당사자는 정말 모든 오감으로 그 당시를 기억하고 회상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애서 그 감정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작가가 경험을 쓰다 보면 본인은 그 당시의 모든 바람과 공기, 온도와 빛깔가지 생생하게 느끼고 있어 구체적인 묘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스스로 군더더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정도 문제는 어쩌면 쉽다.

누군가가 너만큼 나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경우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면 그 부분은 다른 것보다 애정을 갖는다.

그것은 내 경험, 내 것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런 경험은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토리를 위해 애써 꺼내어 놓은 나에 대한 존경의, 연민의 애정이다.

이게 짱구를 굴려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 자부심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 애정 덕분에 이런 부분에 대해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듣게 되면 그 어떤 피드백보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어떻게 이게 이해가 안 돼?"

"이 사람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거야?"

"이 사람의 고통이 그렇게 작게 느껴져?"


이 에피소드, 이 스토리에 대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경험, 오버스럽게는 자기 자신이 부정당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말 그래서 피드백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단순히 고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써 피드백한 사람에게 분노를 품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걸까?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작업할때 지키는 원칙이 있는데

1. 만복 상태에서

2. 도서관이나 카페같이 열리고 밝은 공간에서 글쓰기

를 하는 것이다.


배불러야 모든 것이 잘 보인다. 너그러이 보이고 객관적으로 보이고 선명하게 보인다.

또 밝고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간에서는 한없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괜히 눈물이 찔끔 나더라도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유산을 했을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좋은 작가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주신 경험이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이런 경험이 작가를 만드는 거라면 작가를 안 하고 말겠다고 했다.


나는 싸가지 없게도 지금도 그 위로는 미친 위로라고 생각한다.

경험은 작가에게 중요한 재료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히 다른 사람이 정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은 그 입을 다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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