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원래는 이제 필요한 건 평가다. 그런데!
하지만!
정말로 리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때는 ‘작가용 트리트먼트’가 완성된 순간이다. (이모가 쓴 글로 가면 4번 챕터직후를 말한다)
왜 그때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트리트먼트 부분에 언급되어 있으니 복습하는 걸로 하고!
소설이든 희곡이든 시나리오든 초고로 넘어간 이후에는 리뷰를 권하지 않는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미 초고의 형태로 글이 나왔다는 말은 서사중심의 뼈대가 있는 트리트먼트에 묘사와 대사라는 살이 붙어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그런데 묘사와 대사라는 것이 누구의 의견을 받는다고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묘사에서는 작가의 성질, 그만의 특징은 서사에서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서사는 사실 새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떤 묘사를 만나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시대의, 다른 장르의, 다른 질감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작가의 아이덴티티에 기반한 영역은 사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는다고 좋아지는 부분이 아니다. 되러 지극히 작가특성이 묻어나는 영역이다 보니 리뷰하는 사람이 봤을 때 동의가 안 되기 쉽다. 왜? 리뷰하는 사람도 자기 방식으로 묘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리뷰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다.
다른 사람은 자기 것을 쓰는 게 맞다.
그런데 이런 생각 없이 남의 의견을 수렴해서 묘사에 반영하다 보면 작가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초고가 완성된 이후에는 리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이제 작가는 ‘평가’만 받으면 된다.
평가는 지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스토리에 돈을 지불할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절대 단 한 명의 평가에 그치면 안 된다.
스토리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고 취향에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한 사람에게 나쁜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그대로 사장시키거나 도망쳐서는 안 된다. 적어도 세명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불호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호가 있다. 그러므로 명확한 불호를 통보받았다면 이건 나쁜 시그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스토리가 부담스럽다거나 취향에 안 맞는다는 것은 누군가 이 스토리가 취량에 딱 맞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불호대신 애매한 칭찬은 명확한 거절이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이 애매한 칭찬은 작가에게 실낙 같은 희망을 준다. 그래서 하나의 스토리를 십년씩붙들고 있는다.
돈 내는 사람들은 이 스토리가 지금 말하는 처럼 가능성이 있다면 정말로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돈을 지불한다는 말이다.
돈을 지불하지 않은 칭찬은 어른스러운 거절이며 악역을 피하며 도망가는 방법일 뿐이다.
평가는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제 이 스토리는 다 써졌으니 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이 스토리를 go 할지 stop 할지 고민하는 것이 순서 같지만 절대 아니다.
지금은 평가를 받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