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행자의 20년간의 여행 드로잉 일기
여행을 좋아한다.
“왜?”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멋드러진 대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정도?
연인 사이도 비슷하지 않은가?
“너는 왜 나를 사랑해?”
“사랑하니까 사랑하지.”
네가 착해서, 너랑 나랑 맞아서, 네가 눈부셔서 같은 단편적인 이유로는 사랑을 단편적으로 한정 지어
버리듯이, 나에게도 여행은 ‘좋아하니까 좋은거다.’
사랑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여행은 내게 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할 때부터 세계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가까운 일본, 태국부터 멀리는 호주, 시리아까지.
약 25개국을 떠돌아 다닌 것 같다. 짠소리 들으면서까지 야금야금 돈을 모아 비행기표를 사고 배낭을 메고 떠났다. 한해의 삶의 의미는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서는 여행을 멈출 줄 알았다. 그러나 육아가 방랑벽을 이길소냐. 갓 돌지난 첫째를 데리고 묵직한 기저귀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우리 아이들은 국내보다 해외여행이 먼저였다(당연히 아이들은 어릴 적 여행의 기억이 없다. 그래도 여행의 느낌은 전달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세월을 살다가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 왔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하늘을 원망하고 자책하던 매일을 겪었다. 머리가 복잡하도 못해 터질 즈음 ‘머리를 비우고 싶다.’라는 외침이 간절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타지에 나가면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나와 달리, 외국 여행자들은 한 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림을 그리자.’
그렇게 1년 동안 매일 그렸다. 살기 위해 그렸다. 선 하나도 못 긋던 내가 건물을 따라 그리기 시작하고, 주변의 일상이 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밥 먹고, 양치하는 것처럼 그림은 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10000시간이 지나니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10000시간의 법칙은 사실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가슴 속 커다란 응어리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과 그림은 내 삶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제는 여행을 가면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힌다. ‘찰칵’하고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 몇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순간의 공기, 바람, 향기,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여행드로잉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제부터 써 내려가고자 하는 것은 소심하고 평범한 40대 아저씨가 20여년 간 떠돌아다녔던 공간과 일상에 대한 여행드로잉 이야기이다. 쉽게 말해서 그림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림과 이야기이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용기를 담아 펼쳐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