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에 파묵칼레
”파묵칼레 가봤니? 튀르키예 버전 우유니 사막이라는데?“
엥? 우유니? 내가 알고 있는 그 볼리비아 우유니? 백색 세상으로 가득 찬 그곳?
이스탄불의 매연에 콧속은 새까만 먼지가 그득했다. 사람들 틈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소매치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힙색을 꽉 부여잡고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인파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복잡한 것들을 피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가자, 파묵칼레!‘
바로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그랜드 바자르 같이 주옥같은 보물들이 가득한 이스탄불이지만 내겐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삶이 녹아든 동네, 골목길, 구멍가게에 눈이 돌아가는 나이기 때문이리라.(인싸가 아닌 아싸의 전형적 여행 패턴이다.) 우유니... 푸른 하늘을 맑은 거울처럼 담아 놓은 소금밭, 이 세계가 아닌 외계같은 그곳. 그런 곳이 튀르키예에 있다니... 이동하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 없었다.
버스는 파묵칼레에 나를 내려놓았다. 우리나라의 면단위의 작은 터미널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변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모랫빛 낡은 정류장과 그 앞에 흩날리는 먼지 바람의 향연이 서부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거 완전 황야의 무법자인데? 카우보이 모자를 구해야 하나?‘
’그런데... 하얀 소금밭은? 하늘을 담은 물결은?‘
속은건가? 대도시의 혼란 속에 취해 순간 내가 어떻게 된걸까? 그럼 어쩔건가. 이미 왔는데... 책망할 시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불확실함과 우연의 연속이 여행의 묘미이자 거기서 얻는 기쁨은 여행의 매력이니 말이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숙소를 전세 낸 것만 같았다(서양인들은 대부분 호텔에 머물고 있어 한가한 것이었다). 장거리 여행일수록 체력관리가 필수이기에 땡볕이 내리쬐는 정오는 휴식이 옳지만, 기분 좋은 긴장과 흥분에 못 이겨 밖으로 나왔다.
’석회수 온천을 찾자!‘
하얀 그것을 찾고자 눈은 쉴 새 없이 주변을 탐색하였다. 멀리서 보이는 새하얀 빛깔, 햇빛에 반사된 맑은 백색의 향연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연주에 이끌려 끌려가는 어린 아이처럼 하얗고 청아한 그곳을 향해 발이 움직였다.
첫 인상은 ’순수‘, ’기본‘, 태초’의 낱말들이 떠올랐다. 석회는 삿포로의 눈이 쌓이자 마자 얼어버린 듯의 모습이었다. 푸른 빛 물결은 구름과 하늘을 담은 거울과 같았다. 그 속에 있는 내가 순백의 오점같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온천수 혹은 석회수라고 하는 물 속에 발을 담갔다. 온기와 미끈거림이 마사지를 받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조물주가 바라보는 나 아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
하나라도 더 갖고자 하는 욕심,
남을 쳐내야 내가 산다는 그릇된 마음,
세상에서 ‘나’만 소중하면 된다는 이기심.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왜 그리 치열하게 살았을까?’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나다.
파묵칼레 속으로 더 들어갔다. 커다란 야외 수영장이 보였다. ‘클레오파트라 고대 온천 수영장’이란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유유자적 수영을 하는데 물 속에는 오래된 기둥, 부서진 건축물이 보였다. 그리스, 로마 시절 부서진 유적지 안에 온천수를 넣어 수영장을 만든 것이란다. 여행자들은 한가로이 유영(游泳)을 즐기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수영하는 건 왠지 경주 왕릉 위에서 뛰어노는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졌기 떄문이다.
야외 수영장을 지나 언덕 위에 오르니 멀리까지 능선이 펼쳐졌다.
‘정말 광활하구나.’
대부분 석회수 온천과 야외 수영장까지만 드나들기에 파묵칼레가 이렇게 넓은지는 모른다. 그럴만도 한 것이 피부를 태울 것 같은 따가운 햇살과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여름의 심보이기 때문이다.
”까짓것 끝까지 가보지. 언제 다시 이 곳을 오겠어.”
신발 끈을 동여매고 힘을 냈다. 바닥 끝까지 내리꽂는 직사광선 ‘네 따위가 감히?’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나 따위가 감히!’하며 오기로 걸었다. 무너진 기둥과 돌 사이로 둥근 아치형 건물이 보였다. ' 빌립기념교회 (St. Philip Tomb and Church)‘였다. 빌립이 말년에 전도를 하다가 순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곳이다.
온몸은 땀이 절였고 다리는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해졌다. 암기 과목을 공부하면 금방이라도 다 외울 것 같은 청명함이다. 마음에 맺힌 덩어리가 녹아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빌립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이곳까지 이끌어 주심을 감사, 포기않게 하심에 감사, 모든 순간이 감사, 살아있음에 감사..
살다보면 누구나 고비가 찾아올 것이다. 거기서 멈추게 되면, 고비는 고통으로, 기회는 좌절로 흘러갈 것이다. 반대로 크게 심호흡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인생의 뜻 깊은 순간으로 변모될 것이다.
‘멈추느냐, 나아 가느냐.'
한 끗 차이가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