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탕
겨울의 끝자락인 2월 중국 시탕(Xitang)으로 향했다. 상하이에서 버스로 1시간 반 거리인 시탕은 대표적인 수향 마을이다. 시탕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미션임파서블3‘에서 탐크루즈가 지붕위로 달리던 추격신의 실제 촬영지 덕분이다. 미션임파서블의 팬인 내가 중국여행 중 시탕을 간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도 탐크루즈인건가?“
’가죽 재킷에 레이벤 선글라스도 챙겨갈걸‘하며 도착한 시탕은 한 가운데 강줄기가 흐르고 강가를 따라 가옥들이 즐비한 마을이었다. 공주시의 하숙마을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제민천이 주변으로 옛 가옥들이 이루어진 것이 우리와 닮았다.
”2월인데도 왜 이리 춥지?“
내복에 파카를 두겹으로 껴 입어도 한기가 몸을 감싼다. 해가 나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와는 달리 강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스산스러운 한기가 몸을 애리게 한다. ’이 정도 추위는 버텨야 봄을 만나게 해주마!‘라는 겨울의 심보인가 보다.
'숙소를 먼저 잡자!'
몸을 누일 곳이 필요했다. 온기를 보존할 곳이 간절했다. 객잔이 보이는 골목을 따라 들어갔다. 폭이 1m도 채 안되는 길은 처마로 인해 응달이 깊게 배여 있었다. 길 중간 강가로 이어지는 틈 사이로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베는 것 같았다.
”왜 이리 사람이 없지?“
해가 중천에 떴는대도 인기척이 드물었다. 외부인은 나뿐인 것 같다. 외부인은커녕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의 시탕은 비수기인가 보다. 그걸 모르고 미션임파서블에 혹해 온 나는 여행 초자인가보다. 문연 가게는 열의 하나 정도이고 대부분 잠정 휴업이었다. 그나마 한 숙소 문에 ‘Open’이라 적혀 있어 무작정 들어갔다.
"Hello!", "Hello?"
프런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지만 싸여 있는 것 보니 최소 일주일은 청소를 안 한 듯 하다. 다시 나가기에는 찬 바람이 ‘흐흐, 어서 와~’라고 비웃을 것 같아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Excuse me!"
프런트 안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이 열렸다. 졸린 눈을 비비는 그녀는 이곳의 주인장인 것 같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이런 계절에 왜 왔지?‘, ’촌놈이구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Do you have a room?"하고 물었다. 당연히 있겠지. 휴업이라고만 말하지 말아라. 간절한 눈으로 바라 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를 따라 오라고 손짓한다. 주인장을 따라 들어간 방은 어릴 적 우리 집의 안방과 닮아 있었다. 빨간색 장미 무늬 이불과 두터운 초록빛 모포, 얇은 천으로 덮인 목침에 향수를 느끼며 이불을 두드리니
”콜록, 콜록“
쉴새 없이 기침이 나왔다. 이불에서 퍼지는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내가 몇 주만에 온 손님이 분명하다. 그래도 누울 곳을 찾으니 어찌나 다행인지... ’에고고, 삭신이야.‘하며 몸을 눕이는 순간 얼음같은 차가움이 바닥부터 내 몸까지 전해진다.
”밖이나 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배낭에서 있는 옷을 다 꺼내 입었더니 미쉐린 타이어의 캐릭터처럼 되어버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달린 난로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난로는 ’미안. 거기까지는 못 갈 것 같아.‘하며 온기가 코끝만 스칠뿐 입안에서는 하얀 입긴만이 가득했다. 집에 있는 정기장판이 그리웠다. 따뜻한 온돌이 생각났다(우리나라 최고!). 그렇게 하룻 밤을 지세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얻는다고 내가 여길 왔을까?'
창문 틈 사이로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이구나.'
일어나려고 하니 몸의 관절은 삐그덕 거리며 뼈가 206개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몸이 따뜻해질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이른 새벽이라 을시년스러웠다. ’구보라도 해야하나?‘ 한 겨울 구보하던 군대 시절이 생각났다. 여행을 왔는데 군대라니...
'이방인인 내가 이 길을 독차지 하는 것도 복이겠지.'
위안하며 걷는다. 낡은 돌로 만든 다리가 보이고 건너편에는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보았다. 저길 가면 따뜻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생존본능에 이끌려 다리를 건넜다.
김의 정체는 아침식사를 파는 리어카였다. 요깃거리를 준비하는 아저씨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무슨 음식을 파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니 뽀얀 순두부였다. 왼손으로는 순두부를 가리키고 오른손을 먹는 시늉을 하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티로폼 그릇에 순두부를 담는다. 이름 모를 가루와 간장을 뿌리고 플라스틱 숟가락을 얹혀준다. 건내받은 그릇을 잡은 양 손은 손난로를 댄 것양 따뜻해졌다. 한 입 떠먹어 본다. 뜨겁고 부드러운 덩어리가 목덜미를 타고 뱃속 깊숙이 흘러간다.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을 때마다 순두부의 온기가 손과 발끝에서부터 온몸까지 전해진다.
”아.. 살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보낼 힘이 생긴다. 이렇게 다들 하루를 버티어 나가나보다.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다. 식도락 여행도 있지 않는가? 이스탄불 해안에서 먹었던 짭조름한 고등어 케밥, 발리의 석양을 바라보며 음미한 랍스타, 방콕 시내 한 가운데서 즐겼던 달콤 시큼한 똠양꿍까지...
그 중에 제일을 뽑으라면,
순두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