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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한식주의자의 쌀국수 도전기

베트남 호치민

by 소정

배낭여행을 평생 업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한 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 그건 바로, ‘전형적인 한국 입맛’이다. ‘에이~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어?’, ‘음식의 세계화 시대인데~’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피자, 파스타, 햄버거 정도는 먹잖아?’
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내 대답은
‘미안... 못 먹어.’
지인들은 ‘거짓말치시네.’라며 나를 데리고 이탈리안 식당, 페스트 푸드점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정말 못 먹는구나.’라고 사과한다.
“나도 전세계의 식도락 여행을 하고 싶어!”
하고 외치지만 어떻하랴. 내 위장과 소장이 외국 음식을 싫어하는 걸... 선천적으로 유제품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 피자, 파스타에 들어간 치즈, 크림을 두어 입만 먹어도 하루 종일 ‘꺽, 꺽’거리며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그러다 된장국에 총각김치 한 입 베어 물면 속이 뻥 뚤린다. K-FOOD에 적합한 K-BODY다.

짐을 쌀 때마다 매번 고민되는게 먹거리 문제다. 배낭 속에 햇반, 컵라면, 3분 카레를 넣다 뺐다를 반복한다.
‘이번 여행도 배앓이를 할 텐데, 한식을 챙겨가야하지 않을까?’
‘아니야, 그래도 여행 짬밥이 얼만데. 이번에는 내 위와 장을 인. 터. 내. 쇼. 널로 만들거야!’
한식 유혹에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반복하다 큰 마음 먹고 햇반과 컵라면을 뺸다. 외국에서 여러 음식에 도전한다.
‘성공인가?’
아니, 이번에도 실패. 헤어진 여자친구의 바지가랑이를 잡듯이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놈의 도. 메. 스. 틱. 몸뚱이.’

코로나-19가 터지기 3년전 즈음인가? 나는 베트남 호치민 데탐거리에 있었다. 데탐거리는 호치민의 대표적 여행자 거리이다. 다양한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즐비하여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길거리 노점 상에서 풍기는 단짠단짠하고 숯불향을 가득 품은 갖가지 음식에 이끌려 앞에 섰다.
‘정말 맛있겠다.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꼬치를 하나 들었다가
‘여행 초반인데 배앓이를 하면 여행 전체를 망칠 수도 있어.’
두려움에 결국 포기를 하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쌀국수는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매일 컵라면과 빵만으로 연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쌀국수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쌀국수는 쌀로 만들었으니 리스크가 적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또 길거리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후루룩 먹는 풍경이야 말로 베트남의 아침 일상이기에 나도 그들 속에 함께 녹아들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도 노점상 음식은 배탈이 나지 않을까? 물갈이도 할 수 있고.’
다시 두려움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길거리 대신 식당에서 먹으면 낫지 않을까?’
자신과 타협하고 큰 길가에서 식당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베트남의 간판은 영어로 적혀 있는데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베트남어는 로마자로 표기하는데 F, J, W, Z가 없는 대신에 Ă, Â, Đ, Ê, Ô, Ơ, Ư의 7글자가 추가되어 29자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심가라 카페, 오토바이 대여점, 여행사, 식당들이 많았다.
‘쌀국수를 파는 식당을 찾아보자.’
어디선가 쌀국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따라갔다. 전체가 노란색으로 칠해진 3층짜리 식당이 보였다. '포퀸 (Pho Quynh)'이라는 식당이다. 맛집인지 식당 안은 사람들로 그득했다. 현지인 반, 외국인 반이 쌀국수에 열중이다.

포퀸(Pho Quynh) 쌀국수

'여긴 맛집이 분명하다. 내가 찾던 곳이 이곳이다!’
우연히 발견한 맛집이다. 얻어걸린 듯한 기쁨이다.
“내 인생 첫 쌀국수는 너로 정하마!”
나는 전쟁을 앞둔 장군처럼 결의를 다시며 식당 문을 열었다. 2층에 올라가 구석에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먹는 메뉴를 훑어 본다. 가장 많이 먹는 메뉴를 확인하고 주문했다. 잘 모를 때는 많은 이들이 먹는 음식이 안전한 법이다. 점원은 내 주문을 적고 돌아가는 찰라,
“No! Ngò”라고 외쳤다. ‘고수는 빼주세요!’라는 의미다. 하마터면 주문부터 실패할 뻔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음식이 도착했다. 플라스틱 젓가락을 입에 물고 쌀국수를 쳐다봤다.
“그래! 오늘 너와 단판을 짓자!”
일기토를 펼치는 장수의 마음이었다. 매서운 칼날을 휘두르는 듯이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어 올렸다. 초식(招式)이 승패를 좌우하는 법! 거침없이 면발을 흡입하였다.
‘어? 맛있다!’
쌀국수와의 대결은 나의 완승이었다. 고깃국물은 갈비탕과 닮았다. 특유의 고기 비린내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향이 풍미를 더해 주었다. 숙주나물 같은 이름 모를 야채들은 특유의 사각거림으로 재미있는 식감이었다. 중간쯤 먹다가 앞에 놓인 베트남식 고추 양념도 넣어보았다. 매콤한 맛이 더해지니 육개장을 먹는 것 같았다. 그릇 통째로 쥐고 국물을 마셨다. 보약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행복하다.”
건강한 음식에 행복함을 느끼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외국을 다녔지만 현지 음식을 맛나게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나도 자랑거리가 생겼다.
‘너 호치민에서 쌀국수 먹어봤어?’

돌이켜보면 과감한 변화보다는 안전한 변화가 성공의 이유였던 것 같다. 물론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허나, 매번 과감한 시도를 한다면 인생은 롤러코스터가 될 것이다. 검은색 옷만 입다가 카키색 옷을 입어보거나, 네모난 뿔테를 쓰다가 타원형 뿔테를 써보는 것 같이 작은 변화들은 즐거운 자극이 될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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