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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다양성연구소 Nov 04. 2022

어디서든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나의 오줌권에 대하여" 인터뷰 10. 박길연

안녕하세요, 박길연님.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네, 저는 민들레 장애인 야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길연입니다.


길연님께 화장실은 어떤 공간인가요?


제게 화장실은 생존권입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비장애인분들은 아마 화장실이 생존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잘 먹고 잘 비워야 하는데 우리는 비우기가 힘들다 보니까 잘 먹지를 못하고, 참아야 해요. 그로 인해서 건강은 계속 안 좋아지죠. 그래서 화장실은 생존권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가 27살 때까지는 비장애인으로 살았고 그 이후로는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요. 27살 때까지의 화장실의 이미지는 제게 더러운 곳이었어요. 근데 지금 제가 장애인으로 살면서 화장실은 저에게 있어서 굉장히 다르게 다가오는 거죠. 소중한 곳으로.


말씀해주신 것처럼 화장실에 큰 불편함이 없을 때는 그런 ‘소중함’이나 ‘생존권’에 대해 생각할 일이 적을 것 같아요. 화장실을 이용할 때 겪는 불편함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저는 할 얘기가 많습니다. 바깥에 나가게 되면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곳이 100% 중에 거의 90%기 때문에 저는 나가면 물을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화장실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조금만 다쳐도 회복이 안 되는 특성이 있어요. 그리고 다른 여성분에 비해서 체격이 좀 큰 편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보통의 여성분들은 저를 화장실에서 보조하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해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변기가 굉장히 다양한 모양으로 나와 있어요. 변기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돼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하고 변기가 굉장히 각도가 잘 맞아야 하고 손잡이 위치도 맞아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대리석으로 된 화장실이고 안에서 휠체어가 휠체어 댄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이 화장실이 사실 누구나 이용할 수 없는 거죠. 그냥 잘 만들어놓으면 된다는, 깨끗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사용하기 불편해서 물을 먹지 않고요. 저하고 같이 사시는 분이 남성인데요. 어떤 장애인 화장실들은 여성과 남성 화장실 바깥에 있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둔 곳이 있는 반면에 여성과 남성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야만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에도 있어요. 그래서 동거인과 외출하게 되면 같이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물을 안 먹게 돼요. 몇 년 전에는 의사가 신장이 굉장히 안 좋은 상태여서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 만약에 이대로 물을 안 먹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신장이 망가질 수 있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많이 먹지 못하는 삶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먹고 비워야 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잖아요. 근데 장애인들에게는 비울 곳이 마땅치 않은 거예요. 그리고 왜 장애인들이 동성끼리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냐고요. 이게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평소 표현도 남녀노소 이런 게 아니라 ‘누구나’라는 표현을 잘 쓰는 편인데요. 그래서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하잖아요. 근데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의 복지 쪽 전문가들 생각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게... 현재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화장실 문제가 단순한 불편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삶을 살아 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평소에 출장이나 시위 같은 외부 활동을 많이 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럴 때는 어떤 방식으로 외출을 하시나요?


저로서는 참 말하기가 참 곤란한 거지만, 저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제가 평소 이동 길이가 길어서 어떤 날은 18시간을 물 한 번 안 먹고, 화장실 한 번 안 갔다올 때가 많아요. 대부분 나가면 거의 8시간에서 10시간은 안 먹고 안 비우고 돌아오는 경우가 제 인생에서 거의 80%입니다. 화장실을 참는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안 먹는다고 해서 화장실을 안 가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어쩔 수 없이 가야 화장실에 가야 할 때가 있어요. 근데 비장애인처럼 제가 바로 옷을 내리거나 하는 과정들이 바로바로 되지 않고 장애인 화장실은 보통 하나밖에 없다 보니까 줄을 서야 하는 상황들이 생겨요. 그래서 저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생리대를 차고 나가요. 혹시나 너무 급해서 실수를 할 수 있는 상황들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아까 여자 화장실 안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경우를 말씀드렸잖아요. 그 경우에는 다른 분이 망을 봐주시고 저는 밖에서 정말 개다리 춤을 추면서 사람들이 없기를 기다렸다가 남성분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허겁지겁 나왔어요. 어떤 분들은 화장실이 그래도 비우고 나면 참 편안하다, 가뿐하다고 하시는데. 저는 빨리 끝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나와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집에서 나올 때는 언제 어디서든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그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물을 안 먹는 것과 동시에 생리대를, 굉장히 두꺼운 생리대를 차고 다니는 게 제 삶이에요. 제 삶.


현재 장애인 화장실은 사실 장애인을 위한 곳이 아닌 상태네요.


우리의 몸이 왼손이 장애가 심할 수도 있고 오른손이 장애가 심할 수도 있어요. 그랬을 때 옆에서 보조하든 아니면 혼자 화장실을 이용하든 안에 구조적으로 어떻게 맞춰져 있는지에 따라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게 손잡이도 마찬가지고요. 예를 들어서. 변기 뚜껑을 뒤쪽으로 젖히고 앉으면 내 몸을 앞으로 계속 미는 등받이가 있어요. 아니면 그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변기가 있잖아요. 그러면 비장애인들은 앉았다가 바로 일어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해요. 게다가 센서기는 몸의 움직임에 따라서 계속 물을 내리잖아요. 물이 내려가면서 물방울이 많이 튀니까 옷이 젖기도 해요. 비위생적이죠. 혼자 옷을 입어도 마찬가지고 활동지원사님이 옷을 입혀줄 때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세면대에 보면 수도꼭지 밑에 센서기가 있죠. 이 센서기는 장애인 화장실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장애인은 손의 움직임이 많이 불편하기 때문에 수도꼭지를 돌리는 데 불편하다, 간단하게 손만 갖다 대면 물이 나오게 하겠다는 의도였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장애인분들이 사용을 많이 못해요. 세면대 주위를 싸고 있는 안전바가 있어서 휠체어를 탄 사람은 일차적으로 거리가 좀 있어요.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힘들게 센서기 밑에다 손을 대도 손을 씻으려고 몸을 좀 더 빼면 이미 물이 꺼져 있어요. 그래서 이 센서기가 몸 가까운 데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장애인을 위한 거라면 적어도 두 손이 거기까지 가는 게 힘들 수 있다는 걸 감안했어야 해요. 그리고 물이 나오는 시간도 좀 더 늘려야 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잘 만들어놨죠. 넘어지지 않게 안전바 잘 만들어놨고, 갖다 대기만 하면 물 나오고... 그리고 오작동이 일어나서 문이 열릴 때가 있어요. 변기에 앉아서 정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고 수치심을 느끼는 거죠. 화장실은 정말 비밀스러운 공간이어야 하고 나만의 공간이어야 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사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없는 거죠.


화장실을 누군가와 함께 이용해본 적이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을 누군가와 함께 이용을 하지만, 누군가 망을 봐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 혼자 이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화장실을 이용함에 있어서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혼자 볼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같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신체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굉장히 많잖아요. 물론 모두 100%는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 장애인분들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대다수예요. 그런데 신체적인 일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신체적인 조건이 있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는 거기까지만 허용이에요.


지금까지의 화장실 이용 경험 중에서 상대적으로 이용이 편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서울역에 가족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그랬어요. 그냥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던 거 눈치를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은요. 물론 이 가족 화장실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안에서 들어가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편했지만 육체적으로 편하지 않았던 거죠,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때, 이렇게 두 사람이 들어갔다 나올 때는 왜 남자가 저기서 나오는지 의아해하는 시선이 있잖아요. 이용하는 당사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이 있을 때는 그렇게 쳐다보거든요. 우리가 왜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하나요. 그래서 그나마 거기가 심리적으로는 편했어요.


비장애인이셨다가 27살 이후로 장애인이 됐다고 하셨잖아요, 화장실 이용이나 평소 생활에 어떤 변화들이 있으셨나요?


제가 비장애인일 때는 몸 자체가 달랐는데요. 26살까지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장애에 대한 감수성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오로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여성이고... 오로지 이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면서 살았어요. 그렇게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장애의 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차별에 부딪히게 되는지 몰랐어요. 그러다 장애를 가지고 16년을 자신을 집 안에 가두고 산거죠. 제가 두려웠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나를 바라보는 시선. 오로지 이거 하나 때문에 16년을 제 자신을 집에 가두고 살다가 나왔죠. 나와 보니까 실제로 제가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래도 인권 활동을 하면서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었어요. 그 부분에서 장애인으로서만 제가 접근을 해본다면, 우리에게, 나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생각이나 인식들이 바뀌어야만 우리든 트랜스젠더든 누구든 다 같이 행복하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면서 장애인, 비장애인, 심한 장애인, 경증 장애인, 이렇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누구든 불편한 사람들의 입장에서의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집에 있다가 외부 활동을 다시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인권 활동을 하시게 된 것도 그 즈음이라고 들었어요.


그와 비슷한 질문을 가끔씩 받는데요. 집 안에서 오래 살아온 선천적인 장애인분들이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강할지, 아니면 중도 장애인이 더 강할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에 대해서 저는 당사자만이 느끼는 감정에서 당사자가 느끼면 그 사람 대답이 맞는 거라고 대답을 합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제가 바깥세상이 그리웠던 건, 27살까지 비장애인으로서 지역 사회에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바깥의 삶을 알기 때문이었다고 보통 이야기해요. 그래서 바깥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계속 강해지면서 더 이상 숨어 있는 삶, 갇혀있는 삶을 살기는 싫다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제 아들이 32살인데 당시에는 아들이 어렸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오는 눈총이나 시선들 때문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랬었는데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서 시선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때쯤에 저도 마음을 먹고 나왔던 거죠. 몸이 바뀐 상황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게 걱정이 많이 됐었죠. 그래서 한 기관에 문을 두드렸어요. 그게 바로 자립 생활 센터였었어요. 문을 두드렸더니 그곳에서 저한테 바로 일을 할 것을 제안했고 저는 거부를 하다가 결국에는 일을 하게 됐었죠. 그게 2006년도 4월이었어요. 그리고 2006년도 6월에 사건이 있었어요. 인천에 제 이름의 밑받침만 다른 고 박기연 열사님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굉장히 심한 장애인이었는데 서비스를 지원해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간석역의 지하철로에 휠체어를 탄 채로 당신 몸을 던졌어요. 그게 6월 1일이에요. 그러면서 인천 지역에서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화 투쟁이 시작됐죠. 제도고 뭐고 저는 그때 당시 아무것도 몰랐어요.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투쟁에 함께 했어요. 지금은 제가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말도 하고 손도 움직임도 어느 정도 있지만 19년도까지 한 10년 정도는 누워서 굉장히 심한 와상 중증 장애로 살았는데요. 그때 정말 필요한 거는 옆에서 보조를 해줄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고 박기연 열사님의 마음을 신경을 너무나 잘 알겠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해야 된다는 걸 알게 만들어준 계기였어요. 그러면서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저의 시야나 생각도 넓어지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도 보이게 됐고요.


민들레 장애인 야학에서 활동하신 지 오래되셨잖아요. 평소 사무실을 구하실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하시나요?


이건 좀 이기적인데요. 일단은 화장실에 휠체어만 들어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접근을 했어요. 왜냐하면 장애인 단체다 보니까. 장애인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접근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고서 접근을 했던 거죠. 그 정도의 핑계가 있고요. 보통 건물들이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그런 화장실에 있는 건물들이 많지가 않은데요. 이번에 인천 시청에서도 신관을 지으면서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신관 건물이 떡하니 들어섰는데,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어깨 힘주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인 거잖아요.

초창기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을 들어가기보다 장애인에게 공간을 주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왜냐하면 장애에 대한 인식이 안 좋거든요. 처음에 그것 때문에 제가 많은 상처를 많이 받았고 나중에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조그만 공간을 월세를 주고 얻어야 하는데 그걸 위해 계양구 일대 발품을 바퀴가 닳도록, 열이 나도록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힘들게 한 공간과 계약을 했어요. 근데 소유주의 남편분하고 계약을 했는데 그날 전화가 온 거예요. 남편 분께서 ‘정말 죄송하다. 우리 마누라가 곧 있으면 딸내미 결혼시키는데 거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없었던 걸로 해야 되겠다고 해서 취소가 됐죠. 이렇듯 우리가 계약할 수 있는 건물만 찾아다녔던 게 2006년도의 상황이었어요. 몇 년 후터는 화장실을 들어갈 때 턱이 없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폭이 나오는 곳을 찾아서 다녔죠. 그러다 이곳까지 이제 오게 됐죠. 제가 장애인 당사자니까 일단은 장애인들이 안에서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건물이었으면 좋겠고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먼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장애인 분들 중에서 기저귀를 차고 계시는 분들이 계세요. 근데 가족 화장실에 가면은 거의 아이들만 기저귀를 착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성인 분들은 기저귀를 교체하려면요. 바닥에 자리를 깔고 해야 해요, 근데 그런 공간이 없잖아요. 이거는 법적으로 의무화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화장실을 의무적으로 설치를 안 해도 되는 시절이 있긴 했죠. 앞으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설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분이 지정성별은 남성인데 성정체성이 여성이세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어요. 일단은 여기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좀 불편하지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니까 일단은 여성 장애인 화장실이라도 이용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가 제안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기 입장을 위주로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아요. 저는 장애인으로서 당당함을 가지고 저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어디에서든 장애인 관련된 거에는 막 소리를 지르는 사람인데 다른 일에는 내가 얼마나 그 소리를 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만약에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을 때, 내가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아직도 다양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까 더 미안하네요.


저희가 지금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다 연결돼서 언젠가 변화를 만들지 않을까요? 어떤 계기로 민들레 장애인 야학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지도 궁금해요.


저는 제가 세상 밖으로 처음 나왔을 때 뭔가를 설치하고 운영을 할 거라고는 생각은 안 했어요. 단지 제가 저도 사람이니 그동안 살아왔던 그 삶들을 비록 몸이 바꼈지만 그래도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나왔는데 나와서 제가 제일 먼저 부딪힌 게 장애인의 교육 현실이었어요. 왜 장애인이 학교에 가지 못했지. 꼭 학교에 가야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왜 장애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았지. 그리고 왜 장애인들을 가두고 살지. 그런 것들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가두고 살았지만.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내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서 불편함을 겪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고요. 지금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상민 활동가가 장애인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 굉장히 열변을 토했어요. 그러면서 야학을 한번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고, 시작을 했죠. 그 때는 제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는데요. 제가 아는 다섯, 여섯 분이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고 그중에서 네 분이 한글을 몰랐어요. 어떻게 공간 하나 얻어서 한번 야학을 해보려고 했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2006년도에 노점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부끄러웠어요. 활동 열정도 없었고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나는 이러려고 나온 게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함께했던 분들의 애절한, 절실함이 묻어 있는 눈빛을 제가 피할 수가 없었어요. 상자를 몇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밤을 새서 포장을 해놓은 사탕을 올려놓기도 했고, 이제 껌을 팔기도 하는 노점을 했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는데, 한 번 두 번 하니까 또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시작을 했었죠.


민들레 장애인 야학에서는 탈시설, 재가 장애인 분들이 임시거주공간을 통해 자립 생활에 대한 용기를 갖게 하는 체험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잖아요.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감옥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한 분이 시설에서 살았던 삶을 이야기를 하는데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가더라고요. 사육당하다시피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분들이 절실하게 요청했을 때 그곳에서 나오는 걸 지원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간이 비록 작고 월세지만, 거기보다 낫다는 생각이었죠. 자유가 있다는 것, 이 하나가 너무나 컸어요. 당시에는 제도적으로 체험홈이라는 곳을 지원하는 곳이 없어서 민들레에는 탈시설의 메카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지원하는 과정에서는 그 시설에 있는 관계자들하고 엄청 싸워야 됐어요. 근데 관계자들이 “너 나가면 한 명 채우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한 명 채운다는 건 뭡니까. 자기들이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에 대한 생계비, 관리비 같은 것들이 돈이 안 들어오니까 그 돈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한 명 넣으면 된다는 거예요. 삼시 세끼 밥을 다 주고 신변 처리를 해주고 저녁 시간대 야간 시간에 건물을 사는 사람이 있는 시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유가 없었고 그 안에서 학대, 인권 침해, 폭력이 이루어졌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연락이 오면 우리는 곧바로 뛰었어요. 왜냐면은 한 시간 아니 단 10분을 버티는 게 고문이니까. 힘드니까. 단 10분이라도 우리는 해방을 해줘야 되는 거다고 생각했거든요. 중앙에서 이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보상을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거기에서 우리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있었고 산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분노와 깡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토대로 해서 우리는 힘차게 활동을 해나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서 체험홈, 자립 주택이라는 곳이 생겼고요. 지금은 시설 제로와 탈시설법을 이야기 하는 상황이죠.


화장실을 제외하고, 어떤 공간에서 불편함을 느끼나요?


너무 많지만, 여기서는 건강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저는 먹는 만큼 제 몸이 자꾸 불어나요. 장애 특성상 지체 장애인들은 가성비가 굉장히 좋아서 먹은 그대로 몸이 그것을 축적하거든요. TV를 보면 건강하기 위해서, 장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된다고 하나요? 걸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수 없잖아요. 건강에 대해서 장애인은 여전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보건소에 인바디를 해보고 싶어서 갔는데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없더라고요. 근데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연하다고. 이게 너무 화가 나잖아요. 근데 여기뿐만 아니라.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사회보험 요구안을 가지고서 장애인의 건강권 관련해서 인천시하고 정책 협의를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놀라더라고요. 특정하게 장애인을 위한 곳이 별도로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죠. 지금 우리가 가서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 보니 별도의 장소라도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제가 작년까지는 의료보험 1종으로서의 기초생활 수급권자로서의 생활을 했어요. 그러면 의료보험이 1종이기 때문에 제가 병원을 갈 때 응급실에 가는 경우가 아니면 1차 병원 다음에 2차 병원을 가야 해요. 근데 1차 병원을 가다 보면 계단인 곳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그 길을 못 가니까 그냥 참고 견딜 때가 또 많아요. 이게 현실이에요. 그리고 제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MRI를 찍어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다리가 펼쳐지지 않으니까 MRI 통 속에 제가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검진을 못 한 경우도 있었죠. 이게 현실입니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장소가 장애인들에게 물리적으로 친화적이지 않게 구성이 되어 있네요.


그렇죠. 그리고 예전에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집단적 린치가 있었잖아요. 우리 문상민 동지가 당시에 생긴, 손톱으로 할퀸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요. 그때 휠체어를 타고 이동을 하고 있는데 젊은 분이 바퀴에다가 발을 딱 걸더니 못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성 한 분이 제 앞을 가로막더라고요. 제가 길을 비키라고 그분을 밀었더니 제가 휠체어로 자기를 들이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당하게 이야기했죠. 내가 휠체어를 당신을 들이받은 게 아니다. 휠체어는 내 몸의 일부고 내가 이동을 하는 데 대해서 필요한 보장구다. 당신이 내가 가는 길을 막지 않았냐. 그랬더니 자리를 비키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누군가 길을 막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휠체어로 받은 것인지 정확하게 확인하자고 말하면서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했더니 화면 속으로 아무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이제 비장애인 활동가들 보고 불쌍한 장애인들, 아무것도 모르는 장애인들을 왜 동원했냐고 하길래 제가 따라가서 물었습니다. 저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저한테 좀 가르쳐 주시겠냐고. 왜 퀴어 축제를 못 하게 하는지 저한테 가르쳐 주시겠냐고. 따라가면서 제가 괴롭혔던 기억도 나네요.


화장실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면서 변화된 점들을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게 의무가 돼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건물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건물 소유주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이걸 법적으로 정해놔야지 그나마 바뀔 수 있어요. 물론 그만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고 알려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장애인분들이 그전에는 길거리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 번씩 지나가면 시선이 다 꽂혔잖아요. 근데 지금은 장애인을 어떤 때는 서운할 정도로 관심 없어요. 잘 안 봐요. 사람들의 인식,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조금 변화가 되긴 한 것 같아요. 그거는 그만큼 많이 보이게 하고 알려냈기 때문이죠.

그리고 화장실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앞으로는 장애인에게는 뭘 줘야 하고 노인이나 아이에게 무엇을 줘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누구나’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로 접근하면 모두가 포함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활동해야 해요. 답이 있습니까.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활동해온 것들이 쌓여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거잖아요. 바로 그 변화를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얘기가 있으신가요?


법이나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조치도 필요하겠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다 같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생기면 나의 건강을, 또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러면 모두의 생명이 연장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저도 지금보다 노력하는 활동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계속될 변화, 그 속에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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