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줌권에 대하여" 인터뷰 01. 이한결
저는 이한결이라고 하고요. 지금 서울에서 살면서 촬영이나 동영상 편집 같은 일을 하면서 프리랜서 혹은 백수로 살아가고 있어요. 보통은 이런 식으로 소개하고... 성 소수자 당사자이고 트랜스젠더 퀴어입니다. 트랜지션을 시작했고 사회의 기준으로는 트랜지션이 완료되지 않아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젠더퀴어입니다.
이십대인 지금에 와서 생각했을 때 화장실은 조금 번거롭고, 간혹 걱정스러운 곳이에요. 원래는 걱정스러움이 더 컸는데 너무 자주 느껴서 무뎌졌어요. 하지만 들어가는 과정에서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해야 하고 들어가서도 무언가를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게 여전히 스트레스죠. 그리고 화장실은 굉장히 프라이빗한 공간이잖아요. 근데 어릴 때는 그런 프라이빗함을 보장받지 못했어요. 보통가정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가 함께 있잖아요. 씻고 있는데 어른이 들어와서 용변을 보고 가는 등 사생활이 침해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성중립 화장실이나 1인 화장실같은 오롯이 혼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더 간절하게 원하게 됐어요.
저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인데요. 여성이나 남성 둘 중 하나로 분류되기를 원하지는 않고, 굳이 고르자면 남성 쪽이 훨씬 더 편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해요. 그래서 어릴 적에는 남성으로 분류되길 원했는데, 화장실에 갈 때 의문이 들긴 했죠. 초등학교 때쯤이었는데요. ‘어? 내가 왜 여기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지. 여자 화장실로 가라는 소리를 듣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조금 더 크면서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디스포리아가 온 거죠. 내가 어떤 공간에 가기를 원치 않는데 가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저 초등학교 때만 해도 화장실에 같이 가려고 하는 문화가 많다 보니까 더 힘들었어요. 여성 동성 사회에 편입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도 힘들었고요. 그게 화장실에서 많이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렇죠. 유치원 때부터 이상함을 느꼈는데. 너무 당연해서 이상한 줄 모르고 넘어갔다가 오히려 뒤늦게 알았던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분류되고 있으니 나는 여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구나. 사회적으로 여성 화장실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과 별개로 나는 여성 화장실에 가기를 원치 않는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간 가벼운 경우에는 이상한 사람, 실수한 사람 정도가 되겠지만 심각한 경우에는 그 안에서 성폭행을 당해도 내가 반박할 방법이 없겠구나. 이런 식으로 생각이 뻗어 나가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이지만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죠.
저는 10대 초중반부터 한 1, 2년을 제외하고는 지금 같은 짧은 머리 스타일을 했는데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다들 놀라고 완곡히 내보내려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저 여자예요”라고 말해야 했고, 사회적 여성성을 최대한 수행해야 했죠. 예를 들면, 평소보다 톤을 더 높여 말하는 식으로요. 사실 화장실에 가는 건 정말 기본권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생존의 요소일 텐데요. 제가 그때는 월경을 했었는데, 학교 성교육 시간이나 어머니께 월경하는 시기에 생리대를 얼마에 한 번 갈아줘야 한다고 배웠지만, 화장실에 가는 게 힘드니 생리대를 갈지 못했어요. 아침에 집에서 나가기 전에 한 번, 집에 돌아왔을 때 한 번 가는 식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원래 약 3시간에 한 번 갈아주는 걸 권장하는데요. 건강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방법을 통해 화장실을 기피했어요. 화장실 이용은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물을 잘 안 먹는 편이거든요.
네. 트랜지션 이후에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해서 화장실을 가는 게 편해지긴 했어요. 근데 저는 선천적으로 소화기가 약해서 배탈이 쉽게 나는 편이에요. 배탈이 자주 나면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잦아지고, 언제 화장실에 가야 될지 알 수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화장실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배탈이 나면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꺼려지기도 해요.
제가 주로 자주 가는 곳이 저의 직장 겸 학원인 곳인데요. 그 건물은 1층에 여자 화장실이 있고 한 층 반 정도 올라가면 남자 화장실이 있어요. 그 건물의 여자 화장실은 이용해 본 적이 없어요. 트랜지션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그곳에 다니게 되었거든요. 남자 화장실 같은 경우에는 오는 사람 자체가 워낙 드물어서 상대적으로 가기 편하고, 위험을 느낄 정도로 외진 느낌은 아닌데요. 양변기가 하나인데 가끔 양변기가 고장나있거나 양변기 이용이 불가하다고 쓰여 있어요. 그럴 때면 저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러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집까지 돌아오거나 지하철로 가야 하는데요. 사실 지하철 화장실은 화장실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편안한 장소가 아니잖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선호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지하철역과 학원 사이에 건물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곳의 화장실을 이용해 보려고 했어요. 근데 남자 화장실에 양변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할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경비원이 남성이라고 인식을 하고 신고해버리기 전에 나가라고, 거의 쌍욕을 하면서 쫓아내시더라고요. 이 얘기를 트위터에 푸념식으로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정말 악의 없이 저를 계몽시켜주려는 사람이 나타나서 “봉레오님(제 트위터 닉네임이에요)은 성별정정도 마쳤고 트랜지션도 했으니까 시스젠더 남성이나 다름없으니까 여성에게 위협이 아니겠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말에 타격이 없지는 않았는데... 좀 흥미로웠어요. 저는 트랜지션 과정에 대해서 얘기할 때 성기 재건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거를 이야기하는 편에요. 그에 대해 트위터에도 많이 썼고요. 그래야 제 삶의 범주나 패턴에 대해서 설명하기 편하거든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들이 말하는 생물학적 구조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왜 굳이 트위터에 와서 익명으로 그 말을 남길까.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 그분들에게는 포궁의 유무일까요? 사실 이건 놀리려고 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되게 답답한 거죠.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너 편할 대로 화장실 가겠다는 거냐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애초에 당신들 편할 대로 구분하는 것 아닌가요. 저의 신체 구조와 외향을 두고 어느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 따지면 의견이 분분할 거잖아요. 법적으로 남성이니 남자 화장실에 가야 한다. 남성으로 보이니 남자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반면 이 사람은 어쨌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어야 맞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아무도 명확한 하나의 답을 말하지 못할 거잖아요. 왜 나는 화장실을 못 가고 그냥 그들의 논쟁 속에 서 전전긍긍하면서 마려워야 하는 건지...
제 삶에서 이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이 얘기를 하면 화장실 얘기가 나오고 화장실 얘기를 하면 이 얘기가 나와요. 제가 받은 트랜지션은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 포궁을 적출하는 수술, 그리고 호르몬 투여까지 총 세 가지에요. 호르몬 투여를 했고 가슴을 절제했기 때문에 남성으로 분류되죠. 보통 옷을 입고 있으니까요. 그럼 포궁을 적출한 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논외로 치고, 제가 성기를 재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음경이 없어서 화장실을 서서 이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남성 화장실에 소변기를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나의 성기가 보일 일이 없는 양변기 칸이 없으면 화장실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설명해야 하는 때가 있잖아요. 누군가 저에게 화장실 왜 안 쓰냐고 물어보면 양변기가 없다고 대답하고, 그 사람은 다시 저에게 양변기가 없는게 뭐가 문제냐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정말 고된 과정이고 내가 어떻게 용변을 보는지 듣는 사람도 별로 궁금하지 않을 텐데 방금 했던 설명을 갑자기 해줄 수도 없는 거잖아요.
요즘도 가끔씩 하는데, 페니스가 있는 사람은 양변기 칸에 들어갔을 때 무엇부터 싸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동안 했었어요. 양변기가 있다고 한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양변기에 앉는 순간 그 생각을 해요. 바깥에선 분명히 변기 칸 안의 소리가 들리잖아요. 만약에 그들에게 일정한 패턴이나 룰이 있다면, 내가 그것과 다른 소리를 냈을 때 내가 페니스 없는 남성이라는 걸 이 사람들이 알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있어요. 페니스 없는 남성은 자격 없는 남성이라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남의 소리를 그렇게 자세히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되는 거죠. 페니스가 없다는 이유로 또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리고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제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 다 이용해 본 사람으로서 남자 화장실이 시설이 노후화를 넘어서 누군가 부순 것 같은 흔적이 많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위생 상태도 안 좋고 뭔가 설비 상태도 엉망이에요. 같은 건물에서도 그랬던 걸 보면 청소하시는 분들 간의 차이는 아닌 것 같아요. 사용자들이 해 놓은 짓이겠죠. 어쨌든, 그러다 보니까 양변기 칸에 들어가 있을 때 문이 고장나있거나 자물쇠가 없는 상황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문을 붙잡고 사용해야 했어요. 그게 단순히 민망함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인 거죠. 이 문을 잡고 있어야 내가 이 공간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으며 살아갈 수 있다. 생리적 현상으로 그렇게 투쟁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투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설명들을 하다 보면요. 제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시스젠더 여성인데요.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화장실 이슈는 분명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특히 안전에 대해서. 저의 이런 경험들이 또 다른 종류의 안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계기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의 계기로 인생이 사용되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큼 이 사람들한테 충격적인 일이구나 싶긴 했어요. 저는 계속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게 충격적일 줄 몰랐거든요. 그분들은 본인들이 경험했던 그 폭력에 더 얹어진 게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한 거죠. 사실 복합적인 소수자성을 갖고 있으면 이 폭력도 겪고, 저 폭력도 겪고. 둘 다 겪는 거잖아요. 예를 들자면, 저는 화장실의 불법 촬영이라든지 아니면 화장실에 침입해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사건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공감해요. 왜냐하면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비슷한 위협을 느꼈으니까요. 한편 제가 트랜스 젠더로서 느꼈던 불편함, 공포감, 위협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것이라 비슷할 수는 있어도 다른 거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일종의 충격이 됐던 것 같아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내 몸이 아닌 몸에 갇혀 있는 기분이라는 표현이잖아요? 그 표현도 물론 와 닿을 때가 있죠. 근데 제가 체감하는 거는 조금 달라요. ‘여기에 내가 있으면 안 되는 건가?’라는 느낌이 더 세요. 어차피 이 몸으로 태어나는 건 맞고, 난 그냥 이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화장실이든 혹은 뭐 여자애들 이쪽 한 줄, 남자애들 저쪽 한 줄 이런 식으로 단순히 가르는 순간에 또 디스포리아가 느껴지죠.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분류된 게 당연한 세상에 나는 소속되어 있지 않은 건가? 그러니까 이 사회의 시민이 아닌 건가? 랑 비슷한 말인 거죠. 내가 여기에 속할 자격 없는 사람인 건가. 살아갈 자격 없는 사람인가. 이런 식의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다른 나라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성별이라는 게 한국에서 되게 중요한 요소잖아요. 차별하기 위한 근거이기도 하면서 최근에는 페미니즘 운동에 서로 동일성을 확인하는 조건이기도 했고요. 근데 그런 조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기준점이 몸이라면 나는 1차 자격 하나는 갖췄지만 다른 자격은 갖추지 못한 거죠. 근데 사실 자격은 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중 하나만 충족해도 될 때도 있지만, 모두 갖추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도 있잖아요.
비슷하죠. 예전에 저는 이제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출입국을 자주 하시는 분한테 들어봤을 때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는 들었어요. 뭔가 이 사회에 정말 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과정이 유사한 것 같다.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도 안전한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과정이랑 비슷하겠구나. 그것을 저는 성별 정정할 때 판사분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좀 느꼈어요. “이 사회에 흠결 없는 사람으로, 흠결 없는 남성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했거든요. 되게 이상한 말 같네요. 흠결 없는 남자라고 하니까.
“흠결 없는 남성으로,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저는 비록 트랜스젠더라는 흠결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티 나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잘 숨겨보겠습니다”. 이렇게 어필하는 게 성별 정정의 주된 과제였어요. 디스포리아는 이처럼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혹은 무너지는 자존감 같은 걸 통칭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잘못됐다. 내 몸이 잘못됐다. 내가 이 몸에 있는 게 잘못됐다는 생각까지 가는 거죠.
화장실이랑 되게 비슷한 곳인데요. 탈의실과 목욕탕이 불편하죠. 물론 목욕탕은 코로나가 있어서 모든 사람이 못 갔죠. 저는 코로나 터지기 약 1년 반 전에 법적 성별 정정이 끝나서 그런 곳을 가지 않은 지 한 3, 4년 됐네요. 친구들이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 수영장 못 가서 아쉽다고 할 때 너희들도 나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농담했던 게 생각나네요.
지금처럼 분위기가 심각하지 않았던 코로나 초기에 헬스장이 하루 끊어서 간 적이 있어요. 저는 땀이 워낙 많은 편이라 가능하면 거기서 씻고 오고 싶었거든요. 당연히 남자 운동복을 받았고, 남자 샤워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혼자 쓰는 탈의실이 아니라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심지어 완전히 탈의해야 하는, 내 나체도 보일 수 있는 상황은 처음이었어요. 옷을 갈아입는 건 일단 성공했죠. 그러고 나니 처음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찝찝하니 그냥 샤워까지 하려고 했죠. 한여름이었고 망원에서 사당까지 오고 싶지 않았거든요. 사람이 없을 때를 조금 기다렸죠. 탈의실 한쪽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으면 흔한 스마트폰 좀비처럼 보이잖아요. 그러다 사람이 없을 때 들어갔죠. 샤워실 안에 샤워부스가 있고 샤워부스의 가운데는 불투명하고 아래에 발만 보이는 그런 구조였어요. 보통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지만, 속옷 차림으로 샤워부스에서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패커를 하지 않았지만, ‘누가 남의 다리 사이를 그렇게 열심히 보려고 하겠어, 그냥 자기들 벗고 말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나왔어요. 크게 가리려고 하는 것보다 그게 나을 것 같더라고요. 운이 좋은 걸 수도 있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넘어갔어요. 그때 느꼈던 기분이 좀 신기했죠. 처음으로 남자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거니까요. 그리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이게 바로 노멀한 삶이구나. 우리 모두 뉴노멀의 시대를 맞이해 버렸지만. 내가 겪어야 했던 게 부당한 일이라는 거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돼서 불쾌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는 재밌고 좋았어요. 어쨌든 안전한 경험을 한 번 해본 거잖아요. 탈의실을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이용할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좀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100% 안전하다고 생각하진 않죠. 분명히 위험해질 수 있다. 자주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히 있지만 급하면 못 갈 것도 없을 것 같아요. 뭐든 초기 경험이 중요한가 봐요.
있죠. 트랜지션 초기에는 남자 화장실을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요. 목소리도 지금만큼 남성으로 패싱되지 않았고, 전반적인 이미지도 패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애매한 상태였어요. 그 상태에서 시스젠더 남성인 친구들이 제가 고민하는 걸 알고 같이 화장실에 가줬어요. 그게 좀 도움이 됐었고 몇 번의 경험 후에는 혼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자전거 뒤에서 잡아주는 것과 비슷했어요. 몇 번 해 보니까 혼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도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아니까 다녀와 보라고 해서 혼자 갔다 왔고, 다행히 별일이 없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어서 갈 수는 있게 된 거죠. 반대로 트랜지션 전에는 화장실에 갈 때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디스포리아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내가 여성으로 묶인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 같으니까요. 어차피 혼자 가면 ‘저 여자예요!’ 라고 말해야 해서 비슷한 타격감을 느끼긴 하지만, 차라리 그게 편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지인이 아니라 그 누구든 있으면 다를 것 같긴 한데요. 근데 그런 적은 있어요. 트랜지션 전에 여성 패싱이 되는 젠더퀴어인 친구와는 여자 화장실에 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했죠. 약간 화장실을 전유해버린 느낌이 들긴 했지만. 평소에는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게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다쳤을 때에는 화장실에 갈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잖아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만큼 뭔가 불편한 상황에 처해 있어야만 느껴지는 것들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서 저는 목발을 짚을 만큼 다쳤던 적이 좀 잦아요. 거의 1년에 한 번은 목발을 짚어야 할 만큼 다쳤는데요. 제대로 청소되지 않은 화장실의 물웅덩이도 너무 위험하고, 문을 여는 과정도 불안했어요. 손을 씻는 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고요. 제 고향이 군산인데요. 군산하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휴게소 화장실 같은 데 가면 깨끗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아요. 조잡하고 사람이 많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느릿하게 목발을 했거나 발을 절뚝거리는 내가 화장실을 안전하게 들어가서 용변을 보고 처리를 하고 나와서 기다리는 줄에 서서 손을 씻고 속도에 맞춰서 나오는, 심지어 그걸 버스가 보통 주는 쉬는 시간인 15분 안에 수행하는 게 정말 어려운 거죠. 평소에는 횡단보도에 초록 불이 얼마나 긴지 짧은지 모르다가 다치거나 아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는 평소보다 힘든 것과 비슷해요. 그리고 이제 거기에 성별에 대한 고민을 더하면 결론이 깔끔하게 나죠. 안 마시고 안 간다.
지하철 역사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지하철 역사에 있던 화장실인 것 같아요. 근데 한쪽 벽에 이제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너무 미관상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입구 쪽에 가벽 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거든요. 제가 이 안으로 들어가도 이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제가 어느 화장실에 들어가는지 적어도 볼 수 없다는 거. 그게 설계자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되게 기억에 남을 만큼 마음이 편했어요.
어떤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운영하는 일일 주점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모든 화장실을 성중립 화장실로 쓰고 대신 기존의 남자 화장실이던 곳에 소변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해 놓았어요. 어떤 것들이 성중립 화장실에 필요한지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 같아 좋았어요. 단순히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푯말을 붙이는 게 끝이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의 안정감, 어느 정도의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되죠. 소변기를 이용하는 건 이러이러한 점에서 성중립 화장실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이 있어도 좋겠네요. 어쨌든 이런 구체적인 장치들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성중립 화장실과 남녀 공용 화장실이 다르지 않다고, 과거의 화장실로 다시 퇴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5년 넘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사소해 보이지만 되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그 건물, 학원 겸 직장에서 코로나 이전에 행사를 열었을 때가 있었어요. 거기서 저희 사장님이자 행사의 주최자이신 분이 “저희가 돈이 없어 성중립 화장실을 꾸리지 못 했습니다. 돈을 벌어 꼭 성중립 화장실이 있는 건물을 사든지, 이사를 가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당장 화장실에 가는 선택지는 달라진 게 없어도 그 말은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직장으로 따지자면, 남자 화장실에도 양변기가 있는 곳이어야 해요. 그리고 전체 동네로 봤을 때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 역 근처에 살지 않으면 좀 편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이곳은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고 화장실 이용자도 너무 많아요. 평소에 다니는 은평구 쪽에 있는 병원은 여기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적어서 좋더라고요. 그냥 기존의 여성 화장실, 남성 화장실로 분류되어 있어도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들어가는 거랑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을 때 들어가는 건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좀 없애든가. 아니면 한 명만 쓸 수 있게 하든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원, 살림의료공동체에요. 성중립 화장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종류의 화장실을 만들었거든요. 트랜스젠더들이 워낙 많이 가는 곳이라 아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상수 쪽에 있는 헤이주드라는 곳이 있는데 지금도 잘 운영되나 모르겠다. 안 간 지 너무 오래됐네요. 거기는 화장실이 일인 화장실인데요. 2층이라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서 휠체어 접근성은 좋지 않지만 제 입장에서는 되게 만족스러웠어요. 성중립화장실이고 정말 잘 만들어진 1인 화장실이거든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와서 그 자리에서 손을 씻고 손을 페이퍼 타월로 닦고 버리는 과정의 동선을 완벽하게 설계해 놓았어요. 그런 디테일들을 신경 쓰는 것도 좋더라고요.
덜 복잡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원래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던 저에게 서울은 사람이든 뭐든 너무 많은 게 오고 가니까 정신이 없어요. 화장실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말 공간 자체가 사람을 벅차게 만드는, 긍정적인 의미로 차오르는 게 아니라 그냥 힘에 겨운 감이 느껴질 때가 너무 많아요. 조금 더 숨 쉴 틈이 있고,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람이 몰리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가 갈 수 있는 병원이라든가, 저는 비건인데 비건 식당이나 카페라든지 이런 것들이 주변에 많으면 멀리 가지 않아도 되잖아요. 멀리 가지 않으면 피곤하지 않거나 사람에 휩쓸리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조금 덜 피곤해지니까 더 많은 걸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죠. 병원만 있으면 되겠네요. 사람은 좀 없어지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예전에 되게 좋아하는 웹툰, 생활툰의 작가님이 제가 알고 있기로는 비퀴어 여성분이신데 바깥에서 화장실을 쓰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장이 엄청나게 안 좋으셔서 배탈이 자주 나시고 어떤 화장실은 너무 지저분해서 쓰기 싫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갖는 폭력에 대한 취약함이 있잖아요. 그래서 배탈이 날 것 같을 때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그냥 캔슬하는 이야기를 만화에서 보면서 이게 정말 다양한 사람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저는 화장실 문제가 제 발등의 불같은 느낌이라 나한테만 뜨겁다고 생각했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거죠. 꼭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화장실에 가야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인데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별로 없는 거죠. 그래서 이걸 더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보통 일상적인 대화에서 화장실 얘기는 민망하고 약간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게 좀 이상한 거죠. 딱히 우습거나 민망하거나 혹은 더러운 게 아니라 그냥 먹고 싸는 일이잖아요. 아기들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된다고 하잖아요. 바로 그 세 가지 중 하나, 살아 있으려면 필요한 것 중 하나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내가 소수자라서 가지고 있는 취약점 혹은 소수자라서 받는 차별 같은 걸 이야기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문을 닫게 하잖아요. 그래서 역으로 이게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별로 중요한 줄도 몰랐는데 자꾸 그렇게 말을 못 하게 하는 거 보니까 중요한 게 맞구나. 화장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경험을 혼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사람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당신이 하는 경험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게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건 단순히 살아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사람으로서, 혹은 사회의 구성원, 시민으로서 어떤 증명 없이도 기본적인 권리를 갖고 살아가는 걸 의미하잖아요. 그걸 말하고 싶어요. 단순히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된 거 아니냐는 말은 더 이상 듣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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