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다양성연구소 Nov 04. 2022

N개의 화장실을 가로지르며

"나의 오줌권에 대하여" 인터뷰 02. 전윤선

안녕하세요, 전윤선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에서 대표로 활동하는 전윤선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단체는 비영리 NGO단체이고요. 장애인의 여행의 권리와 모두를 위한 여행을 위해 활동합니다.


접근성이라는 개념에 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접근성이라는 개념은 저희같은 장애인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접근성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처럼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물리적 접근성이 가장 문제가 돼요. 또 이제 감각 장애, 시각이나 청각장애인 분들한테는 정보 접근성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점자나 환경해설, 수어 통역 같은 게 필요하고요. 발달장애, 지적 장애, 정신장애인 분들의 경우 쉬운 언어나 비언어인 그림을 통한 정보 전달 또한 중요합니다. 서비스 접근성도 굉장히 중요한데요. 장애인에게 서비스 제공 전 먼저 “도와드려도 될까요?” 물어보고요. “네 감사합니다. 도와주시겠어요” 라고 답하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고 다시 묻는 게 중요합니다. 발달장애인이나 지적 장애인 분들께도 꼭 물어봐주시고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반말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발달장애인 중에 간혹 돌발 행동을 하실 때가 있는데요. 놀라지 말고 기다려 주는 것이 중요하고요. 섣부른 판단으로 ‘저 사람 왜 이러지?’ 하고 두려움을 갖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런 서비스 접근성까지 포함하는 게 모두를 위한 무장애 관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를 위한’이라는 가치가 연구소가 지향하는 가치와 맞닿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례집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 프로젝트기도 하고요.


‘Tourism for All’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해요. 노인분들도 나이가 들면 신체적 장애나 인지장애가 저절로 오게 되잖아요. 그리고 해외에서 오시는 분들은 언어가 안 통할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일시적 장애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노인, 아이들 데리고 가는 부모 또 임산부 등... 다양한 분들이 차별과 배제 없이 여행할 수 있게끔 환경, 제도, 인식 개선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나요?


어릴 때 화장실은 무서운 곳이었죠. 제가 이제 50대 중반인데요. 예전 화장실은 다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바닥 아래에 항아리나 똥통이 있고 볼일을 위에서 보는 형태였는데요. 다리처럼 구멍 위에 나무 두 개 놓고 거기서 볼일을 보는 거죠. 근데 아이니까 몸이 작잖아요. 구멍에 빠져서 똥통에 떨어질까 봐 두려웠어요. 그 다음에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으면 귀신이 나와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한다는 식의 무서운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밤에 가면 더 무서웠어요. 근데 꼭 밤에 쉬가 마렵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어릴 때는 동생이랑 꼭 같이 갔죠. 그다음에 좀 컸을 때, 제가 장애가 없을 때 화장실에 대한 기억은요.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화장실 사용하는걸 몰래 볼까요? 그게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꼭 있더라고요. 옛날에 화장실은 창문이 있는 곳들이 있잖아요. 창문 열고 보는 거죠. 볼 일 보고 있는데 느낌이 뭔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창문으로 보던 사람이 막 도망가는 거예요. 그런 게 지금은 불법 촬영의 형태가 되어서 단속도 하는 거죠.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이런 불법 촬영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혹시나 해서 한 번씩은 살펴보게 돼요.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나서부터 화장실은... 참아야 하느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먹고 싸고 자는 거잖아요. 먹는 거는 한두 끼는 굶을 수 있어요. 근데 화장실 참는 거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야 하느니라.


모두를 위한 관광, 무장애 여행에는 화장실이 중요한 요소일 것 같아요.


당연하죠. 모두를 위한 관광, 영어로 하면 ‘Tourism for All’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화장실이 너무 중요한 요소여서 저는 ‘Toursim + Toilet for All’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먹을 수 있는 장소는 주변에 널려 있지만, 이용 가능한 화장실은 너무나도 제한적인 거예요. 제가 휠체어를 사용하다 보니까 화장실이 일단 넓어야 하고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저를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요. 항상 같은 분이 케어를 해주는 게 아니에요. 남자가 케어할 때도 있고 여자가 케어할 때 도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 화장실은 이분법적으로, 남녀로만 구분이 되어 있어서 너무 불편하죠. 남성이 저를 케어해 줄 때는 케어자분이 화장실에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매번 고민하고 힘들어하세요. 그래서 성별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어요.


이런 생각은 저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고요. 이제 저희 가족 중에서 노인도 있고 이제 막 결혼해서 임신한 사람, 아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장애인 분도 있어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필요한 여러 사람이 그 가족 구성원 안에 다 있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를 예로 들면요. 어머니가 불편하실 때면 아들이 케어를 해 줘요. 근데 도대체 어느 화장실을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화장실 앞에서 둘이서 막 투닥투닥 해요. 어머니는 “나는 여자니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자”라고 하시고 아들은 “나는 여자 화장실에 도저히 못 들어가. 남자 화장실로 가자”라고 하다가 그냥 안 가는 식으로 얘기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4살, 5살 정도 된 여자아이를 아빠가 데리고 들어갈 때도 너무 난감하죠. 그래서 아빠가 그냥 힘이 세니까 아기 안고 남자 화장실에 데리고 가고 그래요. 근데 아기는 “나는 남자 화장실에 가기 싫은데 아빠가 나를 남자 화장실에 데리고 갔어”라고 하면서 울면서 나오는 거예요.


말을 할줄 알게 되면 그러더라고요.


그 나이가 되면 유치원에서 다 배우잖아요. 또 실랑이가 벌어지는 거죠. “나는 여자니까 남자 화장실에 못 들어가”라고 여자아이는 이야기를 하고 반대로 남자아이를 엄마가 데리고 들어갈 때는 “나는 남자인데 어떻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불편한 점들이 많아요. 그래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너

무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계속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곳이나 있더라도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밖에 나오면 물이나 음료도 안 먹고 밥도 잘 안 먹어요. 근데 여름 같은 경우에는 물을 너무 안 먹으니까는 탈수 증상이 오는 거죠. 그래서 너무 덥거나 화장실 가는 게 불안하다 싶을 때는 아예 기저귀를 차고 나와요. 두꺼운 걸로 두 개를 차고 나와요. 그러고 나와서도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건 아니고 최소한으로, 입만 축이는 정도로 마시면서 다니고 있어요. 화장실 갈 데가 없으면 참고 참다가 기저귀에다가 작은 볼일을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큰 거는 참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고, 쌌을 때 냄새가 너무 나잖아요.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롭죠. 그래서 밥을 조금 먹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찾다가 싸게 되는 일도 있어요. 화장실 찾다가 2km 3km, 어떨 때는 5km까지 가거든요. 휠체어 타고 공공기관이 있는 쪽으로 일단 가는 거예요. 근데 동사무소, 복지관이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잘 없잖아요. 그래서 10km까지 간 적도 있어요. 갔는데 화장실을 쓸 수 없거나 건물 입구, 화장실 입구가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러면 또 다른 데로 전동휠체어 최고속도로 뛰어가요. 그러다가 못 참고 싸버려서 엉망이 된 적 되게 많아요.


공공시설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꼭 설치돼야겠네요.


그렇죠. 보통 바깥에서 화장실을 찾는 비장애인은 상가 건물로 들어가지만, 저처럼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공공시설부터 찾아 들어가거든요. 상가건물은 장애인 화장실 없는 곳이 많아서요. 저도 여행지에서 화장실을 찾을 때는 일단 공공시설로 가요.


화장실 내부 이용에 불편한 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장애인 화장실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이 굉장히 불편하게 설계된 곳들이 많아요. 안전바, 세면대, 거울같이 기본적으로 설치돼야 할 도구들이 있잖아요. 그것들을 작은 화장실에 다 설치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 휠체어를 타고 이용하기가 어렵죠. 그리고 보행 장애가 있거나 목발을 짚는 분들을 위한 안전바가 있잖아요? 근데 그게 너무 튀어나오면 휠체어가 변기나 세면대까지 들어갈 수가 없어요. 안전 손잡이가 너무 높거나 낮게 설치되어 있는 경도 있고요. 그리고 변기가 너무 낮게 설치되어서 문제일 때도 있어요. 낮은 변기에 앉으면 다리에 힘이 없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막 왔다 갔다 하거든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변기 뒤의 등받이가 법적으로 설치하게 되어 있어요. 척수장애인 척수나 경추 장애인 같은 경우는 상체를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등받이에 기대고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근데 이 등받이가 너무 앞으로 튀어나와서 앞으로 떨어질 것 같은 거예요. 저처럼 휠체어 사용하시는 분들은 변기에 앉아서 옷을 벗고 입어야 하잖아요.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가장 황당한 경우가 있어요. 우리나라 화장실 대부분은 변기 뒤에 자동 센서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옷을 벗고 입을 때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럼 센서가 사람이 왔다 갔다 한다고 인식하니까 변기에서 물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번 볼일 보는데 물이 10번 이상 나온 적도 있었죠.



심지어 변기가 막혀서 넘치는데 자동 센서 때문에 물이 계속 나왔다는 분도 있더라고요.


그게 저예요(웃음). 이런 적이 있었어요. 지하철역 화장실이었는데요. 겉보기에는 깨끗하니까 고장을 의심하지 않고 바로 변기에 앉았어요. 급하기도 했고요. 근데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려고 하는데 변기에서 보통 나는 시원한 소리가 아니라 힘없는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슈우우’하고.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어요. 알고 보니 제 앞에 분이 큰 볼일을 봤는데, 그게 막혀 있던 거예요. 그때는 물이 넘치지는 않았어요. 근데 내가 바지를 치켜올려야 하잖아요. 바지를 입으려고 움직일 때마다 물이 계속해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비상벨도 누르고 보조인한테 빨리 들어와 달라고 한 뒤에 가만히 있었죠. 근데 그렇게 몸을 멈추고 있는 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힘이 들어서 다시 몸을 움직이니까 물은 계속해서 나오고, 변기는 넘치고... 바닥이 완전히 오물 천지가 된 거예요. 너무 황당했죠.

이제 역무원이랑 보조인이랑 와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옷은 이미 다 젖은 상태고, 오물도 다 묻은 상태잖아요. 휠체어에 앉힐 수도 없으니까 너무 난감했어요. 그래서 역무실에서 의자를 가져와서 거기 위에 앉아서 씻었어요. 근데 또 문제가 있죠. 옷을 사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수건으로 가리고 옷 급하게 사갖고 와서 갈아입고, 더러워진 화장실 칸은 역무원분들이 청소해주시고요. 그런 적이 있어요.


다른 한 번은 서울역 화장실을 사용할 때였는데요. 보조인이 없었어요. 저 혼자 볼일 보다가 물이 넘친 거예요. 가까스로 휠체어에 몸을 옮기긴 했어요. 근데 옷이 다 젖었잖아요. 갈아입을 옷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무릎 담요로 가린 채 서울역 4호선 화장실에서 서울역 KTX 쪽 화장실까지 가서 씻었죠. 그리고 가는 도중에 이렇게 옷 파는 데 가서 옷 하나 사와서 입었고요. 이런 경우에 그런 오물이 피부에 묻어서 더러운 건 괜찮아요. 근데 생식기 속에 오물이 다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한 거예요. 어쨌든 그렇게 변기의 습격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화장실에 어떤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우선 넓어야 해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어야 하니까. 그다음에 화장실 중에서 이제 저희같이 지체 장애가 있는 분들은 이제 변기에 앉아서 다 옷 내리고 입고 벗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 변기 커버도 되게 중요해요. 변기 커버가 O자형이 있고 U자형이 있잖아요. U자형은 옷을 내렸다가 입을 때 바지가 커버에 끼어서 곤란할 때가 많아요. 아까 말했던 등받이도 중요하고요. 변기와 변기 커버를 연결하는 부위 있잖아요. 이 연결 부위가 독일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는 여기가 쇠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엄청 튼튼하고 따로 놀지 않아요. 근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플라스틱이잖아요. 이게 뚝 끊어져서 변기에 빠질 정도 있어요. 이런 것들은 다 디테일에서 오는 것 같아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워낙 체격이 큰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런 걸 튼튼하게 한 거고, 일본하고 독일 같은 경우에는 체격이 큰 사람들이 미국처럼 많지 않아도 안전을 고려해서 해 놓은 거죠.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경우에도 가족 화장실이 남녀로 나눠져 있잖아요. 가족도 꼭 이렇게 성별로 나눠야 하나. 너무 웃긴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이나 휴일, 명절 같은 때 사람들 엄청 많이 몰리잖아요. 근데 다목적 화장실, 가족 화장실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차례가 오기까지 오래 걸려요. 그래서 고속도로나 여행지 같은 데는 그런 다목적 화장실 모드로 화장실이 딱 한 개가 아니라 몇 개는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남성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비율이 똑같은 경우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여성들이 화장실 보는 데 더 오래 걸리잖아요.


거주 공간을 구하거나 집 내부를 꾸밀 때 화장실과 관련해서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집은 제 동선에 맞게 세팅이 돼 있어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커피 엄청 많이 마시죠. 나오면 못 마시지만. 편의시설을 싹 바꿨어요. 저는 아파트에 사는데요. 집에 들어가는 입구에 경사로를 깔았어요. 화장실의 턱도 없앴고요. 내부에도 안전 손잡이를 달았죠. 그리고 화장실 갈 때 이용하는 리프트 휠체어가 있어요. 변기와 수평을 맞춰놓으면 사람이 저를 들지 않아도 제가 변기로 갔다가 휠체어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케어하기가 편하거든요.


불편함을 느끼는 다른 공간이 있나요?


화장실 이용하는 것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이 있어요. 우리는 먹어야 하잖아요. 많은 식당, 카페, 약국, 편의점이 1층에 있는데요.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너무 제한적이에요. 대부분 턱이 있잖아요.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야 해요. 그리고 개선하는 데 돈이 든다면 국가에서 지원해야죠. 세금을 왜 내요. 저 세금 열심히 내고 있거든요. 지금은 국가가 모든 국민을 존엄하게 대하지 않고 있어요.


여행이 인권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여행이 인권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우리가 인권과 여행의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요.


제가 30대 넘어서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을 했어요. 휠체어를 타기 전에는 여행을 되게 좋아했어요. 동적인 활동을 되게 좋아했어요. 자전거 타고 전국일주를 한다든가,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장애가 생기고 휠체어를 사용하면서부터 그런 활동들이 너무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나는 내가 장애가 있든 없든 똑같이 전윤선인데 왜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휠체어를 타고도 장애가 없을 때처럼 안전하고 재미있게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휠체어를 타고 여행한다는 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생각을 못 하고 있더라고요. 휠체어 타면 그냥 집에만 있어야 하고 여행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러 접근성이 굉장히 열약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라는 사람을 바꿀 수가 없으니까 주변 환경과 다른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장애가 있건 없건 여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잖아요. 근데 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거에 대해서 되게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까 말했듯이 저도 다른 국민처럼 세금을 내고 있거든요. 모든 국민이 차별받지 않고 여행하는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행은 권리라고 계속 외치면서 모두를 위한 관광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어요.


우리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 여행이 가능한 사회,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 임산부 등 다양한 정체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그 이유를 뉴욕에서 찾았어요. 뉴욕에서 열리는 장애인권리협약(UNCRPD) 당사국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간 적이 있는데요. 오래된 건물을 관광지화 시킨 첼시 마켓이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거기 지하에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가서 보니까 화장실 앞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줄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다가갔어요. 제가 가니까 거기에 줄 서 있던 분들이 모두 먼저 이용하라고 양보해주시더라고요. 화장실 표지에 장애인 마크 자체가 없었고, 그냥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형태였어요. 내부에는 장애인이 쓸 수 있게끔 안전바도 설치돼 있고, 영유아들 쓸 수 있는 변기도 있고,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곳도 있었고요. 장애인이든 아동이든 노인이든 성소수자든 누구든 그냥 다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그런 화장실이, 화장실 이용 문화가 필요하다는 걸 거기서 알게 된 거죠. 근데 이런 게 뉴욕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독일이나 일본 같은 곳에 가보면 지하철역 같은 데 있는 공공 화장실에 남녀 장애인 화장실 외에 이런 모두를 위한 화장실들이 하나씩 있어요. 식당도 그렇고요. 그래서 어디를 가도 내가 누구든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게 바로 정답이구나.

예전에는 남녀 구분 없이 장애인 화장실 하나만 딱 만들어놓고 이용하라고 했잖아요. 근데 그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아니라 장애인만 쓰라고 만든 화장실이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애 여성은 여성이 아니냐. 장애인을 왜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느냐. 다른 화장실처럼 남녀 화장실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통해서 장애계에서 쟁취했던 게 현재의 장애인 화장실인데요. 그때 사례를 해외 연수 가서 많이 찾았어요. 근데 근래에 다시 가서 보니 그 나라들이 이걸 이분법적으로만 사고하면 안 되고 ‘모두를 위한’ 공간을 사고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늘려가는 추세더라고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 법적으로 가족 화장실, 다목적 화장실 같은 것들이 의무 조항이 아직 아니에요. 이거를 아예 의무 조항을 만들어야 해요. 대형 쇼핑몰 같은 데 보면 잘 되어 있는 곳이 있어요. 여의도 IFC몰을 보니까 2층에 남녀 화장실 안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게 아니고 밖에 따로 화장실이 있더라고요.


이름이나 표지가 어떻게 돼 있나요?


거기도 이름은 그냥 화장실이고, 다목적 마크가 그려져 있었어요. 장애인, 노인, 누구든 다 쓸 수 있게끔 한 거죠. 거기를 저도 평소에 쓰는데요. 이런 적이 있어요. 화장실을 이용하려는데 문이 잠겨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10분이 지나도 나오고 30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장애인분들이 좀 오래 걸리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을 했어요. 근데 한 시간이 다 되도 나오는 거예요. 궁금해서 문을 두드렸어요. 근데 말이 없어요. 또 두들겼어요. 화장실 급한데 왜 안 나오시냐고 물었더니 안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시더라고요. 제가 성소수자인데 화장실에 밖에 누가 있으면 부끄러워서 못 나간다. 그러니 잠깐 자리를 비켜달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생각을 못 했던 거예요. 그래서 얼른 딴 데에 한참 있다가 다시 와서 보니까 그분이 나가셨더라고요. 그 화장실 아니었으면 그런 분들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공공건물, 모두가 사용하는 건물에는 다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화장실 문제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어요. 우리나라가 반려견 인구가 천만이 넘잖아요. 그리고 시각장애인 분 중에서 안내견을 동반하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데 안내견, 반려견을 위한 공공 화장실은 없는 거예요. 이와 관련된 사례는 일본에서 찾았는데요. 지하철역이라든지 공항이라든지 보면 개들을 위한 화장실이 따로 있더라고요. 개나 다른 동물들도 장기간 비행기를 타게 되면 오게 되면 볼일 보고 싶잖아요. 안내견, 반려동물을 위한 화장실도 공공장소에는 드물더라도 꼭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화장실이 우리나라에는 딱 한 군데가 있어요.


장애인 단체가 많이 입주해 있는 이룸센터에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제가 일본에 연수 갔다 와서 이룸 센터에서 가서 안내견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까 바로 만들어주시더라고요.


제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진데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예전에는 장애인들이 밖에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도 쓰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왜 장애인 화장실 없냐고 하면 쓰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죠. 근데 지금은 장애인들이든 노인들이든 나와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잖아요. 그리고 예전에는 아기를 업거나 안고 다녔는데 요즘에 유아차 끌고 다니고, 아빠들이 아기를 보는 일들도 많이 늘어났죠. 오죽하면 유모차가 유아차로 바뀌었겠어요. 유아차라는 표현이 맞는 거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화장실의 문제점은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장애계에서도 그거에 대해서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아요. 보조인, 보조사가 필요 없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그래요. 그러니 화장실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해요. 인식의 변화는 혁명보다 어렵다고 하긴 하지만... 이 세상에 얼굴 하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까만 사람도 있고 키 큰 사람도 있고 키 작은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폭력의 시대, 혐오의 시대도 올 수도 있잖아요.

저도 화장실 문제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고 다니지만, 이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 좋겠어요. 그렇기 위해 가장 빠른 수단은 공중파 같은 미디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거를 특별히 다큐나 대담 같은 게 아니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이라든지 아니면 드라마라든지 이런 데서 그런 것들을 살짝 보여주거나 얘기를 해 줄 수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게끔.

내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전윤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성 정체성이 소수자라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정체성이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얘기예요. 그리고 화장실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존엄이나 똑같은 거잖아요. 어떤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누구랑 화장실에 가든 당연한 권리로서 당당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해요.


전윤선님 인터뷰 영상 '여행이 인권이 된 이유' ⓒ 한국다양성연구소


키워드 :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모두를위한여행 #휠체어이용장애인 #다양한사례 #접근성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이 궁금하다면!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에 함께 하세요! 

한국다양성연구소 유튜브 바로가기

다양성 웹진 <까끌까끌> 보러가기

이전 03화 더 많은 걸 사랑하기 위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