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대처법

아이와 장거리 고향길

by 유승희

리스트


리스트를 적고 체크를 한다. '이번엔 빠진 물건이 없어야 해. 지난번 그렇게 고생했잖아.' 나를 위한 리스트다. 리스트 작성을 꼼꼼하게 해야 한다. 준비를 좀 덜 하면 어때 하다가 큰코다친 뒤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모두 챙겨야 불안하지 않다.

[ ] 어린이 해열제, 소화제

[ ] 온도계

[ ] 속옷

[ ] 아이 잠옷

[ ] 아이 수저

[ ] 아이 물

[ ] 물티슈


지난 고향길은 고생스러웠다. '이번엔 대충 준비해서 가보자.'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출발 한 시간 전 갑자기 아이는 잔기침을 시작했다. 고향에 도착한 후 밤이 되자 아이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밤새 기침과 고열이 났다. 온도계, 해열제도 챙기지 않았다. 이제는 많이 컸노라 홀가분하게 떠난 고향길. 밤새 기침하는 아이는 흉통을 호소했다. 나 역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집에 두고 온 해열제. 네뷸라이저 기계가 아쉬웠다. 대충 준비한 나는 평소 완벽히 준비해 다니는 내가 맞구나 생각했다. 여태 살아온 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


다음날 기차를 알아보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달빛 병원이 고향 집 근처에도 있다. 하지만 왠지 자주 뵙는 의사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여행을 채 즐기지도 못하고 부모님과 저녁 한 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아프니 원래 내 집으로 와서 돌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기침을 완화 시켜주는 네뷸라이저(호흡기 치료기계)도 없었고, 평소 다니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도 없었다.


돌아오는 기차역 약국에서 해열제를 샀다. 아이는 약을 먹고 잠들었다. 자면서도 기침을 연신 했다. 기침 소리만큼 내 가슴이 찢어졌다. ‘내가 준비물을 잘 챙겼더라면…. 덜 아팠을 텐데. 미안해.’ 밤을 새운 나도 짧게 잠을 자며 계속 아이를 살폈다. ‘역에 남편이 있을 테니 바로 병원으로 가면 될 거야.’ 안도감을 향해서 집으로 돌아간 것 같다. 정해둔 틀 안에서 안정을 찾는 유형인가보다. ‘나는 왜 이렇지?’ 자책하지 않고 나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바꿔나가는 것은 천천히 하면 된다. 바꾸지 못해도 괜찮다. 이번 고향길은 아이 칫솔과 치약을 잊었다. 리스트에 추가한다. 나만의 고향길 방문 리스트에 한 칸이 늘어났다.

[ ] 아이 칫솔 치약


이른 출발


기차는 저녁 8시 20분. 리스트 체크를 잊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엉기적거린다. 가방에 여러 가지 챙기면서 종이를 가위로 오리는 여유를 부린다. 불안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늦겠다. 빨리 준비해. 이제 나가야 한다고." 퉁명스러운 말투에 아이가 답한다. "알겠다고요!" 뒤에서 멈춰서 바라보니 뒤통수가 따가운지 슬쩍 내 눈치를 살핀다. 잔소리를 더는 길게 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다. 잔소리할 만큼 해봤다. 그때마다 몸에서 독이 나오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계속 화내면 나만 손해야.'


금요일 퇴근 시간. 거기다 비까지 내린다. 역까지 가는 거리는 평소 20분 정도지만 40분이 걸렸다. 기사님이 꽉 막힌 도로에서 다른 길을 제안해 주셨다. ‘Lionfish(쏠배감펭)’를 물어보는 아들 질문에 기사님이 스킨스쿠버를 해서 아신다며 설명해 주셨다.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불안했을 시간이 유순히 지나갔다. 아빠는 늘 출발 1시간 전에는 기차역에 도착하라고 하셨다. 커피 한잔하며 여유를 부리는 것이 늦어 마음 졸이기보다 낫다 하셨다. 20분 전에 역에 도착하는 남자와 살면서 불안에 떨었다. 이번 여행은 나와 아이 둘뿐이니 내가 하고픈 대로 일찍 출발했다. 일찍 도착한 나와 아이는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스틱을 사서 나눠 먹었다. 나는 커피도 한잔했다.

역에서 먹는 치즈스틱은 유난히 맛있다.


안전한 옷


아이를 데리고 길을 가거나 멀리 떠날 때 긴장한다. 긴장해서 뻣뻣해진 목과 눈이 매섭게 떠진다. 무술이라도 배워두었다면 나았을까. 불안한 마음이 요동친다. 아이 가방에 남편이 주문한 위치추적기를 넣어두었다. 평소 유치원 가방에 두는 것인데 꺼내 넣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아이 팔찌도 확인한다.


언젠가부터 아이에게 비싸 보이는 옷은 입히지 않는다. 아이가 걷고 뛰고 반경이 넓어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걱정하면 끝이 없다지만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 사람들 속에서 튀지 않고 무난해 보이는 옷은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빠와 함께라면 이 정도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뭐든 내 마음이 편한 게 최고다. 불안을 자주 느끼는 나를 내가 사랑해 주자. 더나아지기 위해 스스로 다그치고 혼내는 건 오히려 힘든 시간을 갖게 하더라. 언제나 그렇듯 고된 시간이 흐르면 평온한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제 좀 지나갔으려나? 그냥 기대하지 말자. “물 흐르듯 살아내.” 상하이에서 온 언니가 23년 12월 7일 만났을 때 해준 말이다. 그 말이 잔잔한 위로가 되어 일기장에 써두었다. 물 흐르듯 살아내자. 물 흐르듯 살아보자. 그러자.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생기는 불안감에 대처하는 글을 적어보았다. 나를 다시 한번 탐구하고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내가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글을 쓸수록 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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