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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Oct 26. 2020

아! 콩쉬엘로여~   

                                                                                                                    


'장미의 기억'을 읽으며 내 마음은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어요.


바람처럼 왔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몇 달씩 혹은 몇 년, 소식도 없으며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대를 잊은 셍 떽쥐베리가 어찌나 밉던지요.



그리고 사랑스러운 그대를 두고 그대의 친한 친구와 함께 생활하며 그대를 버려두다니...


기다림에 지쳐 그대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과 떠나려 하면 쫓아와 잡기를 몇 번이었던가요?


그에 비해 작은 새처럼 작고 소녀 같으면서도 그대의 헌신적인 사랑, 돌봄, 기다림... 또한 글을 쓰게 한 원동력. 물론 인기 작가인 데다가 비행 종사였던 그대의 남편, 백작인 그에게 반하는 여인들이 많았지요.


친구들도 많았으며 시대적 상황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그를 잊으려 발버둥 치듯 도망치듯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간다고 하면


다시와 울며 매달리는 그대의 남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가, 비행사, 백작.


사막을 비행하고, 검은 바다 위를 비행하며 별을 사랑했던 남자.


유일하게 안식을 주며 그의 가슴속에 일어나는 열망을, 사랑하는 비행을, '야간비행'으로


탄생하게 하고 결국에는 그 유명한 '어린 왕자'에 이르는 책을 집필하게 했지요.


그대는 영원한 셍 떽쥐베리의 소녀,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라면서요.


마지막 비행을 나가던 날 당신의 사랑으로 총알도 막을 수 있는 코트를 짜서 입혀달라고 말한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비행기 조종사인 당신의 남편이 항상 사랑했다고 말해주어서 기뻤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중한 사람의 소식을 몇 날, 몇 달을 소리 없이 기다리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매일 저녁 전화를 하고, 멀리서 전보도 보내던 당신의 남편, 물론 전쟁이 터지고 피난생활


2년 가까이 소식 주지 않고 만나려도 않았던 부분에서 화가 났지만 결국 부서졌던 몸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생사를 헤맬 때는 당신을 찾더군요.


결국 긴 항해와 우여곡절 끝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며 다른 여인과 사는


남편을 이해하기 힘든데도 몰아치는 질투심을 다스리며 당신은 참아내더군요.


대단한 콩쉬엘로여~


당신이 살던 시대는 전화, 전보, 긴 문장의 연애편지가 있었지요?


한 세기 뒤인 지금의 시대에는 인터넷이라는 통신 수단이 발달해서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알 수가 있게 되었어요.


인터넷으로 보내는 편지 이메일도 있고요,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문자메시지도 있답니다.


당신이 살던 세상에서의 아나 글로그가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부럽기만 합니다.


왜냐고요? 그 사람은 몇 초만에 볼 수 있는 인터넷 편지를 보내면 뭐하나요? 읽지도 않고 답도 없어요.


달포가 훨씬 지나서 문자메시지 두 줄. 스마트폰이 있으면 뭐하나요? 전화로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외국에 나가면 한 두어 달은 소식이 없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해요.


같은 나라에 있어도 연락 없기 일쑤였는데 먼 지중해에 가 있으니 더욱 보기 힘드네요.


하루에도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몇 번씩 합니다.


작업하는데 방해될까 봐 버튼을 누르지 못합니다. 한 번은 버튼을 눌렀어요. 명절 잘 보내라는 문자메시지가 왔길래 답문자 보내기 전에 목소리를 들어보고픈 마음에 버튼을 눌렀어요. 그런데 아직도 외국에 있는 로밍 안내 멘트에 기가 질려 바로 끊어버렸어요. 왜냐면 받는 사람에게 요금이 부과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시차가 예닐곱 시간이 되기 때문에 상황이 어떤지 모르거든요.


그대의 남편이 음악가, 화가, 작가들에 둘러 쌓여 있었듯이 그 사람도 늘 주변에 소리하는 사람, 기타, 피아노, 북치는 사람, 시인들과 어울렸지요. 늘 바빠요. 하는 일이 많아서. 지금은 당신이 밟았던 땅 남불 니스에서 친구들과 바닷속을 누비며 해저 탐사라도 하고 있을지 몰라요. 작년 여름에도 산소통을 짊어지고 매일 바닷속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작가의 아내는 성직이라고 표현한 당신.


 그대도 시인이며 작가, 또한 조각가. 여러 나라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줄도 알았고, 인테리어에도 상당한 실력이 있었지요. 유명한 친구들도 많았죠. 아쉬웠던 점은 당신과 남편을 사람들이 많이 시기하고 질투했나 봐요. 그림같이 예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이 꾸며준 안락한 스튜디오에서 한 장 한 장 원고를 써서 콩쉬엘로 당신에게 읽어 주던 키가 큰 셍 떽쥐베리가 그려집니다. 그럴 때 참 많이도 행복해했지요.


그 사람도 새로 쓴 작품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낭독하게 하기도 하고, 예전의 작품에서 몇 페이지를 찾아봐, 거기를 읽어 봐. 하면서 특별한 장면의 비유를 들어 얘기해주기를 좋아했지요.


제가 쓴 시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엄청 좋아해 주고, 어느 시문학지 주간에게 갖다 줘야겠다며 좋아했어요. 제대로 썼냐고 물으면 용기를 북돋아주며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해줬지요.


   오늘같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당신의 '장미의 기억'을 읽는 동안 줄곧 콩쉬엘로 당신의 심정을 가장 가슴 아프게 젖어들고, 함께 울었다고 해야 하나요. 심장이 오그라 붙을 듯 하기도 한, 그래서 자주 쓰러져 기절했던 당신의 연약한 몸,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참 많이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콩쉬엘로 - 셍떽쥐베리와 결혼하여 13년 동안 이별과 재회를 거듭하며 애증의 세월을 보낸 장미의 여인.(2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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