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문제들을 나로부터 찾는 이야기
그 조그마한 애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혼자서.
그리고 얘기했다.
'이 아픔에 대해서 나보다 아픈 사람은 없다.'
'이 아픔에 대해선 내가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고'
'이 아픔은 내 것이다.'
'내 아픔에 대해서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아는 척이냐.'
그 조그만 아이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숨긴 체
누구라도 자신을 드러내려 했을 때는
언제든지 공격할 태세로
홀로 외로이
감정을 차단하고 있었다.
단지 느끼지 못했을 뿐
여전히 그 아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다 커버렸다 생각했던 나는
사실 그 어린아이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다 나은 것 마냥
과거에 미련도 없는 듯이.
과거와 상관도 없는 듯이.
그러나,
내가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한
결핍과 부족함을 느끼는 그 패턴이
어린 시절의 그 아이를
마주하며 보듬어 주지 못한 곳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서른이 넘어서
그 아이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아직 움츠리고 있고, 깊은 곳에서
두 손을 불끈 쥐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지 않을 적을 경계하며
있는 모습을 느껴버리고 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이타적인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무슨 TV 속 심리치료의 한 장면처럼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제삼자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관념이 바뀌었을 때
너무나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과 행동에 있어 유지하고 있던 각도가
단 5도 정도 바뀐 것 같은데,
이 5도가 가지고 오는 나의 변화가
너무나 다른 종류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좋은 것인지 임시방편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더 나아진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일이라는 점이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이유라기보다는
생각나는 몇몇 사람이 있어서이다.
친하다 생각하지만, 조심스럽다.
누군가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이런 생각의 전개가 있었고,
이런 생각이 들 때
그 친구들이 머릿속에서 불현듯 생각이 났었다.
그런 고민의 무개를 혼자 들고 가기란
여간 무겁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런 방법을 써보니 그 무개가 좀
덜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오지랖인데...
알아도 쓰게 되는 건 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