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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D Oct 09. 2019

06. 나부랭이가 신입사원에게

막 취업한 후배에게 감히 건넨 조언

선배, 이번 주에 시간 되세요?


보름 전, 대학시절 동아리 후배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에 취업했는데 회사와 일이 생소해서 조언을 좀 얻고 싶다고 말이다.


스타트업에서 나름 몇 년 굴러봤지만 내 앞가림 겨우 하는지라 남을 가르칠 수준은 못된다. 그래서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말해주자 싶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리 속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글을 남긴다.


카페가 디게 이쁘더라구여..(from 장미맨숀 인스타그램 @rose_mansion)



1. 문제 해결의 기본 프레임 : Why So/So What


후배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일에 대한 고민. 기획자라는 포지션으로 입사는 했는데 그 '기획'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기획도 그렇고 모든 일이 결국은 '문제 해결'이다. 문제 해결이란 바로 As-is와 To-be 사이의 갭을 줄이는 것. 쉽게 말하면 지금 요 모양, 요 꼴을 미래에 되고 싶은 긍정적인 상태로 바꾸기 위한 모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문제 정의'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인지'가 명확하게 정의된다면, 그다음은 계획과 실행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 정의를 잘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간단한 프레임이 있다. 바로 Why So/ So What이다.


Why So는 문제의식의 기본이 되는 생각이다. 일을 하면서 그 속에서 사람과 사물, 상황을 바라볼 때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시키는 것만 하는 인간이 된다. 그러다 보면 일의 전체 맥락과 그 속에서 스스로 배워갈 수 있는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사사건건 의문만 제기하는 것도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니다. 일을 하는 이상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비판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So What, 즉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는 단순 의문 제기를 넘어 대안과 가설의 도출에 도움을 준다. 


Why So/So What을 통해서 도출되어야 하는 문장은 바로 'OO이 문제인 것 같은데, 아마 XX 하면 되지 않을까?'이다. 즉, 문제정의와 해결에 대한 기본적인 가설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설을 실행하고 검증하며 As-is에서 To-be로 도달하게 된다.


혹여나 가설이 틀렸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다. 프레임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 자체가 경험치가 될 테니까. 같은 삽질이라도 누군가가 시켜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과는 내가 주도적으로 답을 찾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2. 커뮤니케이션 : 두괄식, 그리고 피라미드


후배가 상담한 두 번째 고민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 문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수의 문서를 봐도 성에 안 찬다는 이야기였다. (후배네 팀장과 사수는 그 회사의 초기 멤버지만 후배와는 또래이고 그곳이 첫 직장이라고 했다.) 이 부분은 나도 가지고 있던 고민이었고 신입시절 내 사수에게, 그리고 지금 회사 대표님께도 배운 적이 있어서 그나마 자신 있게 조언해줄 수 있었다.



1) 듣는 사람을 고려합시다 : 두괄식


어떤 사안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가설을 세웠다면 이를 문서(e.g. 보고서, 이메일 등)와 말로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직장인은 독고다이 프리랜서가 아니며, 조직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듣는 사람을 고려해야 만한다.


조직 내에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두괄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두괄식 커뮤니케이션은 듣는 이(주로 상사)에게 선택지를 준다. 다음 두 가지를 비교해보자.


A : 팀장님, 일단 강남역 쪽을 먼저 찾아보긴 했는데 역시나 너무 비싸더라구요. 그래서 저기 서울역이나 시청 쪽도 한 번 봤어요. 근데 대관할 수 있는 장소 자체가 마땅치가 않더라구요. 대관료도 강남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비싸서 예산도 쫌 빠듯하고.

왠지 서울 말고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지방에서 SRT 타고 오는 분들 생각해서 수서역 쪽은 어떠세요?

A의 화법은 전형적인 미괄식이다. 팀장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A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결론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A의 발화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녀야 하는 것이다.


B : 팀장님, 말씀 주신 컨퍼런스 장소는 서울권보다는 수서역 쪽을 다시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의 접근성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 서울권이 대관료나 장소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찾아본 강남 쪽은 교통도 편리하고 대관 장소도 많았지만 단가가 너무 높았습니다. 차선책으로 찾아본 서울역 및 시청역은 강남에 비해 저렴하긴 했지만 기대한 수준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대관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B의 이야기는 결론으로 시작되어 그 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경우 팀장은 얘기를 끝까지 들어볼지, 아니면 결론에 즉각 동의한 후 다른 의제로 신속하게 넘어갈지를 선택할 수 있다.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추가적인 의문을 적절하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즉, B는 두괄식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듣는 이에게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2) 문서로 표현해봐요 : 피라미드


문서 커뮤니케이션 또한 마찬가지다. 두괄식으로 결론이나 의견을 먼저 쓰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형식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Bullet point와 적절한 들여 쓰기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 포스트잇이 바로 문서 커뮤니케이션 이야기 (Feat. 신입시절 사수님의 가르침)


하지만 아무리 두괄식과 Bullet point로 표현했다 해도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거나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위 포스트잇의 내용이다. 즉, 1) 상위 결론과 하위 근거는 서로 인과관계를 가져야 하며 2) 하위 근거들은 MECE*하게 구성해야 허점이 없다는 말이다.**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 전체를 포함하되 서로 중복되지 않게. '미씨'라고 읽는다.

**MECE는 사실 글로벌 컨설팅펌에서 유래된 방법론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컨설턴트가 아니기에 MECE의 완벽성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아야겠다. 주화입마 주의!


이런 부분 구조들이 모여서 전체 문서를 이루고, 전체 문서 또한 이런 구조를 띄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론을 피라미드 원칙(Pyramid Principle)이라고 한다.


전체 구조의 도식화. 이래서 '피라미드 원칙'이라고 하는 것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 후배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대견하기도 해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히 조언하는 게 처음인지라 횡설수설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입일 때는

1. '왜'라는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2. 나름대로 의견을 가진 후
3. 커뮤니케이션만 잘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P.S. 1] 참, 후배가 조언을 요청했던 것 중에는 직장인 교육/모임에 대한 추천도 있었다.


다들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라 얘기하기가 조심스럽기는 한데 그런 거 가지 말라고 했다. 특히 '브랜드/브랜딩', '아이덴티티', '인사이트', ‘본질’ 등의 단어로 어필하는 곳은 더욱.


지적 허영심 충족과 인스타용 사진 말고는 얻을 것이 전혀 없는 탓이 크지만 모임보다는 하루하루 업무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성장에 훨씬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원활한 실무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업무 툴(e.g. 엑셀, ppt 등등)을 배우거나 그냥 책을 읽으라고 했다. 




[P.S. 2] 혹시나 내 조언이 부족할까 싶어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아래는 그 리스트.


1. 논리의 기술 / 바바라 민토 저

문제 해결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바이블이라고 해도 무방한 책.

앞서 언급한 두괄식이나 피라미드 또한 이 책의 일부분에 불과함.

굉장히 지겹고 재미없는 책이지만 일단 읽고 나면  Logical thinking에 관한 감을 잡을 수 있음.


2. 지적 자본론 :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 / 마스다 무네아키 저

''왜?'라는 시각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이런 결과물을 만들 수 있구나'라는 게 느껴져서 추천.

두께도 얇아서 오며 가며 읽기에 부담 없다는 점도 추천 포인트.

저자인 마스다 무네아키, 그리고 그가 만든 츠타야가 지나치게 신격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주의할 .

과몰입 금지. 교양서적으로 가볍게 읽을 .


3.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 / 알렉산더 오스왈터, 예스 피그누어 저

눈 앞의 업무에서 벗어나서 조직과 기업이 운영되는 맥락을 파악하는 시각을 길러줌.

이 책을 통해 업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커리어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조금은 해결할 수 있음.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 읽으면 효과 만점.

쑥스럽지만 독서 감상 겸 시사점을 정리해보았습니다 ▶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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