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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Apr 08. 2023

띠로리,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남편의 가슴 속 깊이 숨겨있던 꿈

오랜 기간 나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깊게 사랑할 수 있는 아내를 만나 신뢰를 기반으로 부부 관계를 구축하고 둘을 닮은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것. 일로 성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따져야만 한다면 주변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굳이 가족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꼭 결혼을 하거나 직계가족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족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에는 가족이라는 개념도 바뀌었다고 한다. 혈통이 같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곧 가족과도 같다는 말씀.


그렇다면 왜 함께해야 하는가? 함께 하면 인생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색칠되기 때문이랄까, 또 혼자만 살기에는 너무 각박하고 힘든 세상 아닌가. 혼자는 처음에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고 재미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체로 행복감을 지속하기 힘들다. 관객 없이 홀로 혼을 태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큰 의미가 있을까? 자기만족 혹은 자기 행복 추구는 처음에는 효과가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효과가 미미해진다.


평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아내가 며칠 전부터 심기가 불편하다며 입이 나와 있었다. 그 이유는 그날이 오지 않는다는 것. 마법의 주기가 정확한 아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거였다. 그러기를 며칠 후, 22년 6월의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라왔던 2세였기에, 축하한다고 아내에게 말해주었고 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말로 형용 하기 힘든 감정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났다. 나와 아내를 닮은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온다니.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신비로운 일이 아닐까?


나와 다르게  아내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올해 오픈한 필라테스 센터는? 출산 후 그녀의 커리어 패스와 육아는? 등 기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일단 내가 잘하겠다고 아내를 달래준 후 잠깐 산책을 하자고 밖으로 이끌었다. 토요일 새벽 산책이라,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운동이고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고 나발이고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아내의 손을 잡고 집 근처 공원을 걷는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오랜만에 여유롭고 충만한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 시간이라 문을 연 카페가 없어, 편의점에서 원두커피를 사서 마셨다. 24시간 이렇게 훌륭한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새삼 우리나라가 좋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특별히)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한 모 사서,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우리는 함께 산부인과로 갔다.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5주 차라 했지만, 이는 단순히 마지막 월경일로부터 계산한 수치여서 실제 태아의 주 수와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월경 주기가 20 일대에서 40 일대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현 상태가 수정 후 2주~4주까지 다양할 수 있다). 초음파 검사를 했으나 아기집이 잘 보이지 않아 임신이 맞는지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아기집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는지 이것저것 찾아보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주었다.(단순히 아직 일정이 안되었을 뿐이었고, 며칠 후 임신이 맞다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산부인과에서 스타벅스로 이동해서 임신에 대해 각자 조금씩 알아보고, 하와이 여행 계획을 짰다. 당장 다음 주 금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 하와이 여행을 찾아보니 어떤 의사 선생님은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했다는 글도 있었다. (ps. 우리 선생님은 휴양이면 되고 여행이면 안된다는 해답을 주셨다. 엄마는 차에 타고 아빠가 무거운 건 다 들어야 한다고. 아빠라니, 이젠 익숙해지겠지.)


집으로 돌아와서는 들기름막국수를 먹었다. 푸파인 아내는 최근 며칠 도통 입맛이 없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밥을 먹은 아내는 잠깐 훌라춤을 추었고, 즐거워 보여서 좋았다. 새벽부터 다이내믹했던 토요일이라, 낮잠을 한숨 푹 잤다.


자고 일어나서는 다시 한번 산책을 나갔다. 약간 덥고 습한 날씨이긴 하지만, 초여름인 이 시기는 산책하기 좋은 날인 것 같다. 아내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에게 기념비적인 이 날을 기념하고 싶어 나는 우연인 척 맛집 골목으로 산책로를 설정했다. 자연스러운 발걸음 중 신상 솥밥집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몇 개월 전 연남동 데이트 당시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뭔 솥밥을 먹으려고 저렇게 열심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내는 눈이 빛났다. "나 솥밥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어." 그래, 한식 푸파 아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민물장어를, 나는 스테이크 솥밥을 시켰다. 직원 분이 밥 1/3을 먹은 후 뭐는 어디에 덜어놓고 그다음 누룽지를 넣고 육수를 부어 먹으라며 설명해 주었는데, 밥을 먹다 보니 다 까먹었다. 그래서 먹던 밥에 누룽지를 넣어 육수를 넣는 등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한바탕 크게 웃었다. 두둑해진 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서재방에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틀었다. 문어 아저씨와 물고기 아저씨가 나오는 영화의 내용도 엉망진창이었다.ㅋㅋㅋㅋㅋ그래도 확실히 요즘 세상에는 보기 힘든 감성과 여유가 충만한 영화여서 그 잡채로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어이! 빠가야로! 를 수없이 외치는 기쿠지로 아저씨처럼 살면 인생 편안할 것 같은데 이번 생은 그럴 팔자는 아님에 분명하다. 아들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빠가 잘할게! 그래도 내 1순위는 네 엄마란다. 그래야 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사랑한다 아들(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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