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교직 생활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한 학생이 있다. 남들과 비슷하지만 다소 주변 환경에 예민한 아이. 유독 불평과 불만이 많고, 항상 주변 학생들을 선생님께 이르는 아이.
"선생님, 저희 반 애들은 너무 시끄러워요."
"선생님, 친구들이 너무 별로에요."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킬 때가 있다. 학생들에게 조금 어렵거나, 난해한 질문을 하면 항상 그 학생이 먼저 나서며 대답을 하고는 했다. 또, 가끔은 대답하지 못한 친구들이 무색하게 잘난 체를 하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에 '저렇게 행동하면 주변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텐데.' 걱정이 됐다. 나의 걱정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주변 아이들은 하나 둘씩 그 아이를 피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나랑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도 혼자 있는 그 아이가 신경쓰여 우리는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선생님, 배가 너무 아파요. 복통이 심해요."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는 자주 복통을 호소하며 조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놀라서 빨리 조퇴하도록 했지만, 계속해서 같은 증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학생에게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 '별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며 말을 피했다. 부모님께 연락도 드려보고, 학생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봤지만 항상 결론은 '스트레스성인 것 같으니 학교에서, 또 가정에서 함께 신경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유독 많이 받았던 그 아이는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였고, 이제는 그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어느날 출근을 하는데, 학생의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애 이제 학교 안 다닙니다. 자퇴 처리해주세요."
건너편에서는 그 아이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기도 전에 전화는 뚝 끊겼다. 당황한 나는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고 계속해서 학생과 아버지께 번갈아 전화를 했다. 몇시간 후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갑자기 왜 자퇴를 원하시냐고 여쭤보니, 돌아온 건 감정적인 대답뿐이었다.
"저는 이렇게 자기 말에 책임도 지지 않고, 학업도 소홀히 하는 아이라면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늘 불평 불만에, 본인이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원 숙제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 것 같았다. 항상 미루기만 하고 성실히 해내지는 않는 모습에 부모님은 홧김에 학교로 전화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자퇴를 시켜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씩씩거리는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평소 그 아이가 학교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지냈는지, 또 반장 선거에 나가는 등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차근차근 말씀드렸다. 물론 학생이기에 미성숙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조금은 화가 누그러진 것 같은 아버님은 오후에 학생과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날 아이와 대화를 해보니, 그동안 부모님의 학업에 대한 열정과 압박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부모님 두 분 다 좋은 대학에 나왔고, 형도 공부를 잘 해 항상 많은 기대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는 싶지만, 가끔은 그게 벅차다는 이야기를 하며 엉엉 울었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인데, 이 아이가 짊어 온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울컥했다. 이렇게 작고, 어린 아이가 벌써부터 철이 다 든 것처럼 행동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성숙한 나, 어른스러운 나, 노력하는 나'가 곧 부모님이 기대하는 바였기 때문에, 그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여러가지 모둠 활동을 하기도 하고, 두 명씩 짝지어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웬만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짝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소외되는 학생들이 한 두명씩 있어 내가 짝을 정해주곤 했다. 특별히 혼자 소외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를 포용해줄 수 있을만한 학생을 옆에 붙여주었다. 우리 반에는 그 학생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기에, 평소 조용하고 그래도 그 친구와 잘 어울릴 수 있을만한 학생 A를 짝으로 정해주었다. 짝 발표가 나자,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과 환호성.
"야, A 큰일났다~"
"A는 배정 완전 망했네"
아이들은 A를 놀리며 서로 깔깔대며 웃었다. 평소 조용했던 A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온몸으로 싫다는 뜻을 내비쳤. 평소 조용하고, 순진해보였던 학생들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아,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물론 아이들이고, 뭘 몰라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변 학생들의 소리를 고스란히 들은 그 아이는 조용히 엎드려 얼굴을 파묻었다.
이후 아이들을 불러, 마음이 맞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지만 너희가 한 행동은 크게 잘못됐다며 혼을 냈다. 교직을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까지 정색하면서 화를 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 아이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되돌리기 어려웠다.
"아무도 저랑 짝을 하고 싶지 않아 해요"
울먹이면서 내게 말했던 그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며칠 뒤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부모님께서는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좀 다른 환경에 가면 더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학을 결정하셨다고 한다. 아이가 학교에 나온 마지막 날, 아이는 책상 위에 작은 쪽지를 남겨두고 갔다.
많은 일을 안겨드려서 죄송하다니.
'그동안 감사했다'라던지, '이러저러해서 전학을 가게 되었다'라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친구들에 대한 원망의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기대가 무색하게, 아이는 담담하게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차라리 나에게 짐을 안겨주고 마음이라도 가벼워지면 좋을텐데. 말은 그렇게 해놓고 자기가 모든 짐을 그대로 안고 떠나간 것 같아 계속 마음에 걸렸다. 몇년 뒤 요즘은 어떻냐는 나의 안부 문자에 밝게 '이제는 괜찮아요'라고 하기 전까지는.
시인 정현종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한 사람이 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로,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 아이의 아픈 과거와, 우울했던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미래까지 나에게 다가왔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은 그 아이가 감싸안고 온 아픈 과거와 현재를 바라봐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어른을 하나둘 만나다보면, 아팠던 과거와 현재를 딛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