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추운 겨울이 왔어. 그동안 잘 지냈니?
편지가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실 그동안 나는 발목에 금이 하나 그어졌어.
그 부위가 덧나거나 감염되지 않도록 열심히 소독하고
무릎 밑까지 오는 깁스를 6주 동안 했어.
입원을 두 번하고 지금은 재활치료를 위해
도수치료를 받고 있지.
첫 입원 동안 발목 부위는 핏자국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발등은 부풀어올라 부어 있었어.
발목 양 옆과 뒤는 물론 종아리뼈도 하나 부러졌는데
그중 안쪽 복사뼈만 피부를 갈라 쇠로 된 핀을 두 개
집어넣어서 고정하는 수술을 했단다.
처음에 그 부위는 갈라서 넓어진 공간을 의료용 실로
촘촘히 바느질해서 좁게 만든 모습이었고,
붓기가 심한 탓에 금이 그어진 부위 아래에
핏물이 고인 고름까지 생겼었어.
그 고름 때문에 퇴원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얘기할 정도였지.
나는 의료진을 믿었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어.
처음부터 이랬나? 뭔가 잘못된 건가? 계속 이대로이면
어떡하지? 하고 티는 안 내면서 여러 생각을 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주 말끔하게 딱 새살이 돋은
금만 하나 그어져 있어.
나는 그 금을 보면서 생각해.
매일매일 내 발목에 정성스레 소독을 해줬던
소독담당 선생님, 붓지 말라고 아이스팩을 수시로
갈아줬던 간호조무사님들 덕분에 회복될 수
있었다고. 특히 세심하게 약품을 하나씩 바르고
상처보호용 패드를 붙이고 붕대를 감아준
소독선생님께 새삼 고맙더라고.
물론 해야 할 일을 했을 테지만 막상 내가
환자 입장이 되어보니까 마음이 다른 거지.
이처럼 상처는 가만 놔두면 썩고 곪아서
연관된 부위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깨끗하게
나을 수 있어.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첫 입원 후 퇴원해서 휠체어를 타고
약을 처방받았던 게 추석 전인데
난 아직도 약이 약 십몇 일분이 남아있어.
아침에 먹는 걸로 바꾼 이후로 까먹거나
귀찮아서 안 먹게 되면서 격일 혹은 삼일에
한 번 먹었더라고.
남은 약 더미를 보며 애인은
"너무 많이 남은 거 아닌가요?
이제 안 드셔도 되겠는데요?"
하면서 놀리곤 해.
애인은 내가 이렇게까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 단 한 사람뿐인데도
나는 많이 안정되고 밝아진 거야.
사람을 못 믿고 경계하고 말을 가려하고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며 힘들어도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가 있었어.
어차피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으니까.
괜히 말했다가 더 마음이 상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 방구석에서조차
사라지고 싶을 때마저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어. 가장 친한 친구나
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조금 후회가 돼.
그럼에도 말이라도 한 번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고. 그 사람들은 내가 도움 요청하기를,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속마음을 듣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벽을 만든 게 아닌가 싶어서.
물론 나는 벽을 만들었다기보다 좀 미안했던 것 같아.
이런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평소에 자주 톡을
주고받거나 전화통화 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꺼내면 불편해할 것 같아서 배려하느라
혼자 감내했던 거지.
근데 말이야, 그래도 말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나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오라고 만들어진
곳에 가서 겨우 입을 떼고 울며 위에서 오물을
쏟아내듯 감정을 뱉기를 택한 거야.
나는 정말 그 방법을 추천하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힘들고 혹은 상담을 받는다는 게
의미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럴 땐 아는 사람 한 명에게만이라도 용기 내어
털어놓기를 바라. 그 사람은 굳이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거나 가족이 아니어도 돼.
의외로 옛날에 잠깐 알았던 사람 또는 연락을
안 한 기간이 오래되었긴 하지만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어도 괜찮아. 오히려 그 사람이
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사실 나는 병원만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최근에는 그 생각이 또 바뀐 거야.
애인이 건강검진을 했는데 중등도 우울증이
의심되니 병원에 가보라고 결과가 나왔대서
"병원 가서 상담받아 보자."
했더니 "나는 그런 거 싫어. 내 치부를 내 입으로
까고 하는 그런 거. 그리고 상담한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잖아."라고 하더라고.
그때 깨달았어.
나도 처음엔 그랬다는 걸.
의사에게 말은 해야 하는데 내 입으로
내 상처를 이야기하기가 무척 힘든 일이었어.
스스로 심장에 화살 꽂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병원을 다닌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진료가 끝나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막 울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병원을 가기가 정말 힘들다면,
누구에게라도 말해봐.
심지어 여기 댓글도 괜찮아.
내가 답을 못 해줄 수도 있지만 적어두는 것만으로
후련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우리는 멀리 있지만, 이 글자 하나로 소통할 수 있잖아.
말보다 글의 힘이 대단할 때가 있거든.
그럴 때 있잖아. 모르는 사람이니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그런 때.
어차피 다시 볼 사람 아니니깐.
갈라지고 피가 나고 벌어진 상처라도 누구든 있으면
작은 흉터만 남기고 치료가 될 수 있다고 믿어.
마치 회복이 먼 일만 같았던 내 발목에 그어진 금처럼 말이야.
일요일이 지나간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오늘 밤만은 고운 밤이 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