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야

by 세성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었다. 친구와 여행을 가서 소품샵에 들를 때면, 친구는 아기자기한 물건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걸 사서 뭐하겠나. 의미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갔을 때, 고양이 소품샵에서 나는 고양이 피규어와 반지를 샀다. 그냥 예뻐서, 귀여워서 샀다.

먹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아무 쓸모 없어 보여도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이란 게 있다는 걸.


살다 보니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도 가보고, 돈을 받으면서도 마음 편히 쉬는 날도 왔다. 실업급여와 발목 골절이라는 두 사건이 절묘하게 맞물려, 아무 걱정 없이 '한량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게다가 그 시기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을이라니.


삶을 포기했더라면 결코 마주하지 못했을 풍경들이 있다. 느릿하게 흐르는 오후,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웃는 일상, 옆에서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잠든 고양이의 따스한 온기. 이 모든 게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맞닥뜨린 행복이었다.


발목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다시 일을 구해야 하고, 통장은 자꾸 얇아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다. 병원비는 그동안의 보험료로 돌려받았고, 재취업의 기회도 다시 찾아왔다. 돈이 바닥나도 다시 벌면 그만이라는 마음. 불행과 행복이 이렇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요즈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연애도 했고, 직장에서 인정도 받았고, 취미도 즐겼고, 일과 삶의 균형이란 것도 도누려봤다. 심지어 최근에는 묵은 트라우마까지 풀리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죽음조차 두렵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멈추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온 게 기적 같아서, 더 오래 살고 싶다.


죽지 못해 살던 내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온다.

'나의 시기'가.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