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는 길, 네 번째 이야기
낡은 것들은 언제나 청초하게 빛나지
오래될수록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지
너의 빛깔은 무엇이니?
너의 손끝은 어디에 있니?
시간이 지난 네가 좋아
살짝 흐린 냄새를 가진 네가 좋아
내 버린 것들을 담아주는 네가 좋아
낡은 것들은 언제나 은은하게 빛나지
오래될수록 우리의 색을 가지고 있지
우리의 빛깔은 무엇이니
우리의 손끝은 어디에 있니?
시간이 지난 우리가 좋아
짙게 피는 두 눈을 가진 우리가 좋아
지울 수 없는 것들을 간직하는 우리가 좋아
우리는 모두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아주 오래되고 낡은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여전히 종이책의 오래된 냄새가 좋아 중고책을 고집하고, 그림을 그릴 때도 색연필이 스케치북에 닿는다는 느낌을 가장 선호하고, 요리도 배달보다는 직접 만든 음식 등등.. 가공되지 않은 것, 날 것의 것들이 좋다.
4번째 찬드라반 마을에 갔을 때는 둘째 이모가 20년 전 사용하던 아주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하나와 필름 두 통을 들고 갔다.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과정도 결과도 필름으로 인화한 후에야 사진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결과물을 상상할 수 없다는 건 망상의 세계를 사랑하는 나에게 너무 큰 매력이었다.
내가 찬드라반 마을에 가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없는 것과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일맥상통하는 게 많았다. 그래서 한 장 한 장이 소중했고 귀하다 여겨졌다.
사진에 담긴 찬드라반은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빛과 그림자를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흙먼지와 풀이 가득한 이곳의 풍경을 어느 순간보다 잘 나타내 보였다.
잘못 찍히더라도 지울 수 없다는 점이 참 특별했다. 보통 사진을 찍다가 흔들리거나 초점이 안 맞으면 지우곤 하는데 필름 카메라는 그런 의식적인 활동을 모두 정지시켜버렸다. 모든 것을 카메라와 나의 호흡에 맡겨야만 하는 시간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기보다 사진의 대상들과 하나가 되어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겨우 두통의 필름을 가져갔으니 매번 찍을 때마다 몇 방이 남았는지 필름을 확인했다.
어두울 때나 밝을 때나 빛과 그림자를 소중히 여기는 렌즈가 참 좋았다. 아이들의 움직임 속에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듯하였다.
낡고 오래됐지만 빛바랜 사진들은 더욱더 따뜻함을 안겨준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날로그는 여전히 눈부시고,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