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를 떠나기 전의 마음
시민우선 사람중심 군포, 책 읽는 도시 군포. 군포시에 거주한 지 13년이 넘어간다. 딱히 군포에 친구 하나 없어 운동복 차림으로 나가도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걸었던지 13년이랄까. 이사 가기 전 이곳에서의 지난 세월은 어떠했는지 되짚어 보기로 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가장 꼭대기인 23층에 있는 2301호.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내 방. 한 벽면이 큰 창으로 이루어져 '그림 그리는 방'이라고 가족 모두가 명명했던 내 방. 특이한 구조로 안방만큼 커서 많은 물건을 두어도 항상 큰 방 그 자체였던 방. 힘들 땐 누워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쉼을 청했던 내 방. 새소리를 들으며 깨고 차를 마시며 뒷산을 바라봤던 내 방.
군포는 그러하였다. 진정한 '여유'가 어떤 것인지 알려준 곳. 평화로운 마음을 불어넣어 주며 세상에서 만난 욕심을 덜어내고자 만들었던 곳. 서울에서의 수많은 두려움을 풀어헤치고 그저 지금의 순간에 머무르게 해주는 곳.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정돈된 삶을 추구하며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
여유로운 시간 속에 다양한 삶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고 정리하게 해주는 곳. 몸이 무겁고 힘들 땐 몇 번이고 동네 산책을 하며 건강을 다독였던 곳. 억지로 자연을 찾지 않아도, 억지로 여유를 찾지 않아도 절로 나오는 여유와 숨 쉴 공간들을 제공해줬던 곳.
특히 군포시에는 책 읽는 도시답게 정말 많은 도서관이 있다. 그 도서관들을 하나하나 경험해보고 싶어 그 도서관 가는 길을 걸어보자 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때론 공원을, 수리산을, 금정역을 거쳐야만 갈 수 있던 도서관들 그리고 책을 잔뜩 빌려 웃으며 책을 읽던 시간들. 특히나 사는 책 보다 빌리는 책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 나를 풍요롭게 해 줬는지 모른다.
이렇게 군포에서 지냈던 삶을 되돌아보니 요새 서울에 머무르면서 성취와 인정을 쥐어 잡고 어딘가에 올라가고 싶어 했던 내 모습에 종종 숨이 막힌다. 이런 행동들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다. 나에게 많은 것을 이루게 해 주었고 수 없이 많은 변화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잘못된 삶은 분명하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모양이 아니었지.'
왜 이렇게 아등바등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나를 무언가에 채우려 할까. 불안감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잘못된 일상을 정정해 나가려 한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영화만 보면서 마음을 치유하던 그런 날들. 멍을 때리며 가만히 누워있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던 그런 날들. 심심함으로 가득해 발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였던 그런 날들.
삶은 선택이 무궁무진하다. 늘 그렇게 추구해왔던 방향.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기고 고요함 속에 나를 던지며 걸어가는 것. 내 만족 안에서만 최선을 다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사는 삶. 그런 인생.
나는 삶의 충만함을 느끼기 위해 태어났지 무언가 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니까. 내가 삶을 즐길 수 있는 건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 자신의 만족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충분히 채워 넣고 바쁜 서울의 삶을 잠시 접어둔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삶의 평화다. 나에게 있어 이곳에 산다는 것은 바쁜 일상 속에 한줄기 빛임이 분명했다.
창을 열고 글을 쓰며 불어오는 낙엽의 냄새와 함께 나에게 사용하는 이 온전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떠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