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력 탈출에 성공한 춘자

춘자 전성시대

by 우연의 음악

올림픽 주경기장 공사가 마무리되자 바바킴은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의 위치는 세계에서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1988년 올림픽이 한국의 서울이란 도시에서 열리기로 결정되었다며 사마란치 위원장이 혀 짧은 소리로 ‘쎄울’이라 했을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졌지만, 사실 세계 사람들은 ‘쎄울’은 고사하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나마 미국 사람들은 6.25와 관련해 조금 알고 있는 축에 속했지만, 문제는 안다는 수준이 6.25 전쟁 당시의 이미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으니 굶주린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동냥 그릇을 놓고 불쌍하게 구걸하는 모습을 자동으로 떠올리는 정도였다.


한국에 대해 좀 제대로 알고 있는 미국인이라 해도 휴가철에 타고 가서 휴가지에 버리고 온다는 싸구려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 신발공장이 많은 나라, 싸구려 옷을 만드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다. 반대로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국이란 지상 천국과 거의 엇비슷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 재미교포라고 하면 부자란 말과 동급을 이루었고, 미국에 간다고 하면 곧바로 성공했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춘자의 미국행을 놓고 춘자 자신이 가졌던 기대감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은 상상을 초월했다. 춘자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바킴이 그런 식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변명과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창피를 덜 당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력 탈출 프로젝트를 가동하는데 바바킴과의 관계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설정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과 잔머리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춘자는 바바킴이 결혼 준비를 위해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고, 조만간 초청장을 보내면 미국으로 가서 결혼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두 달 뒤 거짓말처럼 바바킴이 춘자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춘자, 내가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 중에서 춘자가 최고였어.”


그날 고개를 처박고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고 있던 춘자의 정수리에 대고 바바킴이 한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춘자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미국에 있는 마누라와 헤어지고, 자식새끼들을 버리면서까지 춘자와 결혼을 할 만큼 모질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 바바킴이 차선책으로 내놓은 제안이 있었다.


“춘자, 무대 뒤의 여자로 살 수 있다면 초청장을 보내 줄게”


두 달을 고민한 끝에 춘자는 바바킴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물론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 춘자는 최선을 다해 제 2의 타력 탈출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예전보다 더 멋을 부렸고, 바바킴을 만나는 동안 발길을 끊었던 아침 미용실 출입도 다시 시작했다.


춘자가 기다리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당신같이 전형적인 한국형 미녀를 노랑머리 오랑캐에게 시집보낼 순 없다’며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젊고, 잘 생기고, 돈 많은 민족주의자의 등장이었다. 다른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애국심만큼은 쉽사리 변질되지 않는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춘자가 애국심에 바탕을 둔 강한 민족의식 때문에 바바킴을 사랑하지만 민족과 조국을 배신할 수 없어 미국행 대신 토종 한국인인 ‘당신’을 선택하겠다는 애국 선언을 할 수 있는 사내를 만나기만 한다면, 그동안 춘자가 바바킴과 어깨를 부비고 다니며 뿌리고 다녔을 숱한 염문의 흔적을 아주 말끔히 지워 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춘자의 자기 가치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춘자의 바람이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찢어진 작은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를 가지고는 젊고 잘생기고 돈도 많은 데다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민족주의자를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국심이고 나발이고 나이가 심하게 많고, 잘 생기고 돈도 많고, 거기에다 딸린 애까지 많은 남자는 수두룩했다. 젊고, 잘 생기고 돈은 지지리도 없으면서 쓰잘데기 없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민족주의자도 가능했다.


답은 뻔했다. 이 땅에서 돈 많고, 잘 생기고, 젊은 누군가의 세컨드가 되면 타력 탈출에는 성공할 수 있겠지만 온갖 구설수도 각오해야 한다. 그것은 멸시와 비아냥거림, 측은함 따위로 뒤범벅된 구설수였고, 그 구설수의 종착역은 불행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천국 같은 나라인 데다, 천국만큼이나 아득한 미국에서 누군가의 세컨드로 사는 것은 달랐다. 자신만 입을 다물면 가족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혹시 모를 일이었다. 본마누라가 내일이라도 비명횡사하면 순식간에 무대 위의 주인공도 될 수 있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주변 사람들은 미국에서 초청장이 왔다는 사실에 당장 춘자가 미국 부자의 사모님이 된 양 부러워했다. 거기에 애국심이니 민족주의니, 불변하는 고유한 가치니, 노린내 나는 노랑머리 오랑캐니 하는 것들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두 오빠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등 교육을 받은 춘자가 마침내 큰일을 해냈다며 국위선양이라도 한 듯 만세를 불렀다. 다만 언니만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동생을 그 먼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우울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춘자는 바바킴이 초청장과 함께 보낸 제법 많은 돈 가운데 얼마를 떼어 오빠와 언니에게 나눠 주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도착해 자리를 잡은 춘자는 자기 마음대로 바바킴의 이름에서 앞글자 두 자를 따서 자신의 미국 이름으로 삼고 바바킴의 무대 뒤의 여자로 살기 시작했다.


내용으로 보면 춘자는 불행해야 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행복했다기보다 만족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바바킴은 여전히 세계 여러 나라를 싸돌아다녔고, 그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사다주는 명품으로 춘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고 다녔다, 헬스클럽에서 하루를 시작해 쇼핑센터에서 하루를 무르익히다가 마시지 숍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은 춘자가 어릴 때부터 그토록 갈망했던 가난한 집구석에서의 완벽한 탈출을 의미했다.


돈에 여유가 많았으니 춘자는 한국에도 자주 나왔고, 가족들도 미국에 여러 번 초대했다. 그럴 때마다 바바킴은 춘자의 남편 역할을 재주껏 했다. 바바킴이 업무상 외국 출장이 잦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춘자의 가족들은 공항에서 잠깐 얼굴을 보여준 바바킴이 그날 이후 콧구멍도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끔 출장길에 들렀다며 춘자도 없는 ‘처갓집’에 혼자 나타나기도 했으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그렇게 춘자의 타력 탈출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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