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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Oct 10. 2019

'의심'이 특기인 당신을 위한 영화, <메기>

영화추천, <메기> 인간은 의심으로 타인을 만난다.

메기 Maggie , 2018 제작  

한국 |  미스터리 외 |  2019.09.26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88분

감독: 이옥섭




'의심'이 특기인 당신을 위한 영화, <메기>




인간관계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것은 '의심'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서 '의심'이란 단어를 언급하는데 인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인과 눈 맞춤을 한 순간부터 우린 각자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이 행한 모든 행동 요소를 평가해야만 한다. 설령 좋은 의도가 아닐지라도 자체평가 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나아가 이미 맺어진 인연을 끊어낼 수 있는 힘도 '심도 있는 의심'에서 나온다. 인간관계는 '믿음'과 '신뢰', '배신' 등으로 활발하게 작용하며, 의심은 반드시 행해야 할 선행조건 중 하나니까.
물론 "왜?"와 "그럴 줄 알았어."의 합작이 매번 따뜻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건 인간을 향한 합리적 의심이 불가능한 까닭과 같다. 세상에 내가 아닌 다른 이를 판단하는 데 매번 합리적일 수 있나, 각자의 신념이 그의 신념과 잃어버린 조각처럼 딱 맞을 확률은 극히 드물지 않은가.  

그러나 영화 <메기>는 친절하다. 아니 친절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섬세하게 인간의 의심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진 의심의 시작과 끝을 정반대의 사건들로 엮어 보여주는데, 그 진행이 아주 맛깔스럽다. 병원을 발칵 뒤집은 엑스레이 한 장이 영화의 긴 여정을 상징하는 깃발일 줄 누가 알았을까.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의 출발선을 그려놓고,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색하지도 우습지도 않다. 오히려 신선한 발상에 본 영화의 정체성이 얼마나 단단하고 깊은지 짐작하게 한다.

출처: 영화 <메기> 스틸컷

<메기>의 주인공은 등장인물 누구나 될 수 있다.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의심병을 담은 에피소드가 촘촘하게, 거대한 하나의 주제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린 등장인물 누구에게나 감정이입 할 수 있다. 그들은 죄다 타인을 의심해봤던 '나'를 연기하고 있으니까. 


시작은 이러하다. 병원 초음파실에서 간호사 한 명이 애인과 정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엑스레이로 그 순간을 찍히고 만다. 병원 정문 앞 성모 마리아상에 장렬하게 걸린 그 엑스레이 한 장으로 인해 인간의 의심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다.


첫 번째 주인공, 간호사 윤영의 의심과 믿음 역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펼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굳게 믿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신뢰의 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

윤영은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과 남자친구라 믿는다. 보고 또 봐도 자신들의 한 장면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자, 최후의 방법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간절하게 그들이 아니라는 내레이션(메기)의 만류에도 그녀는 당당하게 이경진 부원장에게 사직서를 건네기 위해 마지막 출근길에 오른다. 그런데 이를 어째, 부원장은 윤영에게 휴일을 주며 운영인들의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근신을 명한다. 윤영이 민망한 사진을 가져간 범인임을 이미 알고 있다면서.

출처: 영화 <메기> 스틸컷

윤영은 사직서를 곧바로 회수한다. 사생활이 사전 동의 없이 무턱대고 병원에 다 퍼져버린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아니 섹스가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그래서 그녀는 계속 병원에서 근무할 것을 선포한다. "아니 그 엑스레이가 뭐 어때서?"라고 되뇌며!  그런데 그다음 날 출근한 윤영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병원에 홀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부원장을 만난다. '신뢰의 성'을 다루는 <메기>의 메인 사건은 병가를 낸 직원들로 인해 빠르게 진행된다.


두 번째 주인공 이경진 부원장은 직원들이 전부 아프다는 핑계를 대자, 분노한다.

"아니 엑스레이 실에서 섹스를 할 수도 있는데, 뭘 그래? 거짓말! 세상에서 구라가 제일 싫어!"

그녀는 어렸을 적 살인미수란 별명을 오해임에도 품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얻은 진리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사실뿐이었다. 이에 부원장은 철저하게 외톨이로 자랐고, 운영은 그녀를 위해 믿음 교육을 실시한다. 그것도 매우 웃기고도 일방적인 방식으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가면서. 병원에 병가를 낸 사람 중 2명을 찾아가 정말 그들이 아픈지를 확인하는 방법이었고, 첫 번째 대상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한 둘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믿자'라고 약속한다.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비웃을 수는 없었다. 윤영과 부원장의 친절한 거짓 판별 방법은, 그렇게라도 해서 믿지 않으면 수많은 군중 속에서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할 '우리'를 위한 좋은 방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메기> 스틸컷

세 번째 주인공, 윤영의 남자친구는 동료의 발가락에서 윤영이 사준 반지를 발견한다. 동료의 태연한 거짓말과 여자친구가 사랑의 증표로 준 반지의 행방이 맞물리자, 그는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또 다른 사건을 저지른다. 자신을 의심하는 윤영의 마음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윤영은 그의 전 여자친구와 만나 남자친구의 충격적인 과거를 듣고 줄곧 복잡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메기>가 보여주는 사건들은 당사자에게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사람들의 밀접했던 관계를 끊임없이 위태롭게 만든다. 윤영의 '믿음 교육'이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교육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게 믿음이 쌓이고 깨지는지, 또 어떻게 다시 조합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감독이 말했듯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겪는 심리적 고통을 세밀한 행동과 언어로 표현한다. 다 이렇게 겪어가며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린 관계의 맺고 끊음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잔뜩 부풀려진 의심 풍선을 바늘로 찌를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니다. 무조건 인간을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메기>와 같이 상대방을 신뢰하고자 하는 선택의 주체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의심을 장려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이가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몇몇 사람은 자신의 손에 쥔 열쇠를 깊은 어둠 속에 묻어 둔 채 누군가 대신 상자를 열어주길 바란다. 양쪽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고 이타적인 결정을 대신 내려주길 원하면서, 직접 사건을 해결해서 얻는 비참함을 느끼기 싫어한다. 정말 그게 우리의 관계 형성에 끝까지 도움이 될까?

출처: 영화 <메기> 스틸컷

그래서 메기의 등장은 반갑다. 몇 번째 주인공인지 모를 '메기'의 존재가 걸어 다니는 인간이 아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보다 더 명확한 점은 우린 메기처럼 완벽한 제삼자가 될 수 없다. 아무런 의심 없이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는 <메기>의 '메기' 뿐이다. 그러니 간절한 메기의 외침은 우리에게 들릴 리가 만무하고, 우린 상대방과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관찰해야 한다. 그 시작은 대화이고, 대화의 질은 얼마나 진실을 얘기하고 있느냐보다 그 답에 자신이 믿음을 얼마큼 베팅하고자 하느냐에 달려있다. 결과 역시 개인의 몫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메기는 구원자가 될 수도, 파괴자가 될 수도 있다. 친절한 생선이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메기>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높이 물 밖으로 튀어 올랐을 때, 하필 지진이 났고, 전국적으로 싱크홀이 생겼으며, 그 자리에 누가 있었을 줄 알았겠는가. 뭐, 부원장이 남긴 노란 쪽지를 발견한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다.   


우린 단순히 의심이 특기였을 뿐인데-.


확실한 건, 필자는 <메기>를 통해 적잖게 위로받았다.








글_관객 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전주 독립영화관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으로 개봉작(무료)을 본 후 리뷰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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