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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환 Oct 24. 2021

제자의 재능에 가릴 뻔했던 스승

- < 스승과 제자의 콜라보레이션 > # 1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 지도자 세례 요한(St. John the Baptist). 그는 소년 시절부터 요르단 지역을 중심으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는 유목민처럼 지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불렸던 세례 요한그는 요르단 강 주변 황무지에서 낙타 털옷을 걸치고벌꿀 등 야생 음식을 먹으며 고행하는 선지자였다.

베로키오의 스승 도나텔로(Donatello), <세례 요한 조각(John the Baptist Sculpture)>, 1438, 다색 장식 나무(wood), 141cm

30세가 되던 해부터 팔레스타인 지방요르단 강가에서 지냈다그리고 그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설교를 하며 살았다

또한 예수가 세상에 온다고 앞서 말한 예언자이기도 하다그러던 어느 날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에게 요르단 강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베로키오의 스승 도나텔로(Donatello)의 작품 <세례 요한 조각(John the Baptist Sculpture)>을 보자. 여러 색으로 장식된 나무 조각상(Polychrome wood)으로 제작되었다. 

세례 요한은 보통 십자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도상이 전통적으로 흔한 편인데, 도나텔로는 왼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베로키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례 받는 그리스도>, 1472~75 / 로렌초 디 크레디, <베로키오의 초상화>, 1485

이 작품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는 1475년경 이탈리아의 화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공방에서 작업한 결과물이다

베로키오는 이 작품을 1472년경에 시작했으나 중간에 멈추었다가 몇 년 뒤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완성했다


베로키오는 메디치가의 후원 아래피렌체에서 가장 번창하는 공방을 경영했다. 뿐만 아니라 베로키오의 공방(Verocchio's Workshop)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같은 르네상스 미술의 보물들을 배출시켰다. 


로렌초 디 크레디(Lorenzo di Credi)의 1485년 작품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초상화>를 보자. 그의 손을 보면 작업 도구로 추정되는 물건이 쥐어져 있다. 베로키오는 매우 부지런한 예술가로서 그는 쉬지 않고 작업을 했기에 늘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요하네스 스트라다누스 이후, <예술가의 작업장 또는 얀 반 에이크의 작업실>, c. 1590 / <스톤 테이블에서 색을 갈고 닦고 있는 견습생>, c. 1590, 판화

15세기 중엽, 르네상스 발원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공방이 있었다. 요하네스 스트라다누스 이후(Jan Baptist Collaert after Johannes Stradanus)의 <예술가의 작업장(Artist's workshop) 또는 얀 반 에이크의 작업실(Jan van Eyck's studio)>을 보자. 중앙에 있는 화가가 캔버스에 '세인트 조지와 용(Saint George and the Dragon)'을 그리고 있다. 


그 아래에서는 장인(master painter)의 그림 작업을 위해 유성 안료(oil pigments)를 준비하는 조수가 보인다. 좌측에는 한 남자가 모델을 보며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고, 우측에서는 두 남자가 스톤 테이블에서 색을 갈고(grinding colours) 있다.

티치아노(Tiziano), <세례자 성 요한 Saint John the Baptist >, 1540 / 엘 그레코 이후(after El Greco), <세례 요한>, c. 1610

세례 요한은 소년 시절부터 황무지 같은 빈들에서 먹고 지냈다그는 유목민의 자손답게 털가죽 옷과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자신의 조상들처럼 생활했고 한다


요한은 약대 털옷(camel's hair)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wild honey)이었더라. - 마태복음 3장.


티치아노(Tiziano Vecelli)와 엘 그레코 이후(after El Greco)의 유화 <세례자 성 요한(Saint John the Baptist)>을 감상해 보자. 아무렇게나 자란 두발과 텁수룩한 수염 그리고 약대 털(camel's hair)로 만든 옷으로 광야의 성인, 세례 요한의 개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성인 옆에는 십자가 모양의 지팡이 또는 어리고 흰 양 한 마리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양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예수를 상징 동물이기 때문이다.


낙타의 털로 짠 옷인지 낙타의 모피인지는 분명치 않지만이 같은 복장은 고대 근동 지역 기후 속에서 노숙 생활자들의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요긴한 의복이었다.

베로키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  부분도, 1472 ~ 1475, oil and tempera on panel

그러나 베로키오는 <세례 받는 그리스도속 광야의 세례 요한에게 거칠고 투박한 유목민 옷 대신패셔너블한 의상을 입혔다

반팔 모직 상의는 목과 가슴을 세련되게 판 브이넥(V-neck) 티셔츠 스타일. 외투는 고급스러운 자수가 새겨진 황금빛 긴 가운으로 세례자 요한의 위상을 한껏 세웠다  

프란체스코 로셀리(Francesco Rosselli), <피렌체(Florence) 지도>,  부분도, 15세기

당시 아르노 강변에 위치한 피렌체(Firenze)는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섬유산업이 활발했던 도시 중 하나였었다. 그 시절 피렌체(Florence)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에게 최신 유행하는 피렌체 산 직물을 입히기도 했었다


피렌체에서 생산된 직물이나 의상이 묘사된 그림을 통해서 자기 지역 상품이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를 얻게 되자, 피렌체 상인들은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베로키오, <세례 받는 그리스도>,  부분도(천사와 예수), 1472 ~ 1475/

그 시절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은 섬유산업으로 부흥한 집안이었다. 한편 베로키오는 메디치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는 예술가였다. 


때문에 베로키오 공방은 메디치가의 주요 사업 품목 중 하나인 인기 수출 직물을 작품 화면에 자연스럽게 등장시켰다. 공방이 메디치가를 위해 간접 광고(PPL)를 도모한 것으로 추측된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부분도(봄의 여신 호라), 1486

메디치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던 산드로 보티첼리는 메디치의 발주로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을 제작했다. 이 작품에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직물이 등장한다. 


특히 '봄의 여신 호라(The Hora of Spring)'의 흰 드레스 원단의 목 부위에 새겨진 문양을 보면, 화가가 메디치 가문의 상징과 연관된 월계수(月桂樹, laurel) 잎사귀를 세밀하게 그려 넣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호라 뒤편에는 월계수 나무가 배경으로 배치되어 있다.

베로키오, <자화상(Self-Portraitc)>, 1468-1470 년경 / 베로키오,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 1472 ~1475

화가들은 보통 세례 요한을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강조하며 거칠게 묘사했다. 그러나 베로키오는 세례 요한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Self-Portraitc)로 대체하면서 이목구비가 수려한 남성으로 그려 넣었다


세밀하면서도 힘 있게 묘사된 세례 요한의 팔과 다리 근육 라인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를 외쳤던 선지자의 야성(野性)이 느껴진다.  

베로키오가 그린 <자화상(Self-Portraitc)>과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 부분도에서 화가의 자화상(세례 요한)을 함께 나란히 감상해 보자. 

도나텔로, <다윗>, c. 1440-1460, Bronze / 베로키오, <골리앗의 머리를 가진 다윗>, 1465 / 베로키오, <그리스도와 성 토마스>, 1467~1483

베로키오는 메디치 가문의 총애를 받았던 최고의 조각가 도나텔로(Donatello) 밑에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조각을 배웠다. 

그는 스승 도나텔로가 세상을 떠나자 자연스럽게 스승의 공방을 물려받았고 도나텔로의 후임이 된 베로키오는 메디치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도나텔로의 청동상 <다윗(David)>과 베로키오의 <골리앗의 머리를 가진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을 함께 감상해 보자. 베로키오는 <그리스도와 성 토마스(Christ and St. Thomas)> 등의 작품으로 당시 조각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날렸다.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세례 받는 그리스도>, 부분도, 1472~1475

조각처럼 명확하게 그려진 세례 요한의 손발과 얼굴 그리고 거대한 퇴적 암석에서 조각가 베로키오의 개성과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세밀하면서도 힘 있게 묘사된 세례 요한의 팔과 다리 근육 라인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를 외쳤던 선지자의 야성(野性)이 느껴진다.  

요르단 강에 잠긴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의 발. 베로키오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 부분도, 1472 ~ 1475

잔잔하고 투명한 요르단강(Jordan River)에 두 남자의 발이 발목까지 잠기자,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는 물 파장. 베로키오는 얕게 잠겨있는 예수와 세례 요한의 발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화가의 관찰력과 강한 인내심은 강물 바닥의 크고 작은 돌들이 물 위로 떠올라 보이는 굴절(꺾임현상을 놓치지 않았다

물속에서 투명하게 비치는 두 사람의 발에서 굴절된 시각적 현상을 표현하려고 애쓴 화가의 붓질이 역력하게 남아있다. 

요르단 강에 잠긴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의 발. 베로키오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 부분도, 1472 ~ 1475

유명한 조각가·화가·건축가였던 베로키오. 그의 피렌체 공방으로 많은 예술 지망생들이 최고의 장인에게 도제(徒弟) 수업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공방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7년에서 12년간 지냈다. 그는 공방 생활을 하면서 미술 기본 기법은 물론, 제도·회화·석고·조각·모델링·야금·목공 그리고 다양한 과학적 탐구 방법을 익히는 기회를 얻었다. 

베로키오의 공방, <토비아스와 천사(Tobias and the Angel)>, 1470~75, 템페라

베로키오는 예술적 재능이 많아서 폭넓은 장르에서 활동을 했다. 특히 청동제 미술품을 제작하는 기술이 탁월했던 그는 조각 작업에 집중했다. 그 대신 회화(painting)는 공방의 제자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의 세례>는 <토비아스와 천사(Tobias and the Angel)>와 함께 현재까지 남아있는 베로키오의 몇 안 되는 회화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옥스퍼드 미술사학자 마틴 켐프(Martin Kemp)와 워싱턴 국립 갤러리의 데이비드 앨런 브라운(David Alan Brown) 등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솜털 같은 작은 개' '물고기' 등 <토비아스와 천사>의 일부 도상을 베로키오의 제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고 한다. 

베로키오의 공방, <토비아스와 천사(Tobias and the Angel)>,부분도, 1470~75/ Andrea Ricciardi di Gaudesi, <베로키오의 공방 작업실>

<토비아스와 천사>에서 왼쪽의 대천사 라파엘(Archangel Raphael) 옆에 토비아스(Tobias)라는 한 소년이 손에 물고기를 들고 천사를 따라가고 있다. 베로키오는 이 미소년을 그릴 때, 당시 10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세웠다고 한다.


몇 년 후, 베로키오는 회화 작업이 진행되다 멈춰있던 <그리스도의 세례>의 마무리 작업을 레오나르도에게 지시했다. 이때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 공방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화 기법을 썼다. 


이처럼 제자들의 모험적인 시도를 흔쾌히 수용했던 베로키오의 리더십은 그의 공방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공방에서 자란 제자들은 자신의 재능을 스승과 기꺼이 협력해 공방과 베로키오를 더욱 빛나게 했다.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소년 레오나르도>, c. 1845 / <세례 받는 그리스도>, 부분도 / 귀스타브 모로, <세례 받는 예수 곁의 천사>, 레오나르도의 천사 모사작, 1858

안지올로 트리카(Angiolo Tricca)의 1845년 경 작품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소년 레오나르도(Leonardo as a Boy in Verrocchio's Workshop)를 보자. 


탁월한 제자의 결과물을 본 스승 베로키오는 매우 놀라워하며 만족해했다. 특히 레오나르도가 그린 왼쪽 천사를 본 스승은 제자의 잠재력이 시각화된 것을 보고 감탄했다. 


1858년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가 레오나르도의 왼쪽 천사를 모사(copy)해 그린 작품과 비교하며 감상해 보자. 

<세례 받는 그리스도(The Baptism of Christ)> 작업을 계기로 레오나르도는 조수가 아닌 화가로 대우받았고 이후로 공방의 회화(繪畵) 작업은 그에게 맡겨졌다. 덕분에 베로키오는 조각과 공방 경영에 전념할 수 있었다.

베로키오의 조각상들 <줄리아노 메디치 흉상>, c. 1475 /  <골리앗의 머리를 가진 다윗>, c. 1465 / <로렌초 메디치>, c. 1513 :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

다윗이 적장과의 전투 후, 골리앗의 잘린 머리 앞에서 칼을 들고 서있는 청동 조각상 <골리앗의 머리를 가진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그리고 <줄리아노 메디치(Giuliano de’Medici) 흉상>와 <로렌초 메디치(Lorenzo de’Medici) 흉상> 등 베로키오는 조각가로서 탁월한 걸작을 남겼다.


2편, '스승은 그의 제자로 평가받는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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