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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Dec 13. 2019

주는 기쁨, 받는 기쁨

고르고 포장하고 떠올리는





제주에서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짧디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시간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그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선물을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구에게 무엇을 줄까 생각을 하다 보니 꼭 여행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더라도 돌아가서 바로 만날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그저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도 떠올라 어디까지 선물을 줘야 할지 알 수 없어 소품샵을 멍하니 둘러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이런 고민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돈을 벌어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선물을 고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향수 매장에 있었다. 친구에게 뭔가 근사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 향수 매장에 들어왔지만 브랜드도 어떤 향수가 좋은 건지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도 얕은 브랜드 지식과 가격, 그리고 향수병 모양만 보고 고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샤넬 향수와 분홍색의 분사장치가 붙어있는 예쁜 용기에 담긴 내가 잘 모르는 브랜드의 향수 두 개를 최종 후보로 골랐다. 샤넬 향수는 한 끼 먹고 죽도록 걸어 다니던 그 당시 내 상황으로는 조금 무리였고 예쁜 케이스에 담긴 향수는 가격이 더 저렴했다. 그렇다면 케이스도 예쁘고 더 싼 향수를 사면 되는데 내가 아는 한 가장 유명한 브랜드였던 샤넬을 사주고 싶어서 진열대 앞에서 한참 동안 그 두 개의 향수를 바라봤다. 결국 예쁜 케이스에 담긴 향수를 사면서도 아쉬웠다. 얼마나 오래 보고 있었는지 찍어 놓은 사진도 없고 꽤 오래전 일인데도 그 진열장에 있던 향수들과 빛나던 조명이 다 기억난다. 몇 년 뒤에 보니 그 예쁜 케이스에 담겨 있던 향수의 브랜드는 입생 로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름 괜찮은 브랜드였는데 그걸 몰랐던 나는 끝내 아쉬워하며 몇 주를 배낭에 향수를 넣고 다닌 끝에 친구에게 전했다. 조그마한 일에도 기뻐해 주고 나를 아껴주는 친구라 그 선물에 크게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사실 매번 선물을 고를 때마다 그렇게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선물을 주려는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하나부터 누군가에게는 어떤 선물이 맞을지 고민하고 또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공항으로 가면서 괜히 산 걸까 여행 다녀왔다고 선물 사 오는 건 촌스러운 일인 것 같다고 이제는 선물을 사 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막상 돌아와서 선물들을 다시 정리하고 포장을 하고 가끔은 카드도 써서 지인들을 만나러 가면 조금씩 즐거워졌다. 그리고 선물을 줄 때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 조금씩 옅어지던 그 다짐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이에게 선물을 받기도 하니 보답을 하려 생각하다 보면 선물의 순환을 멈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받은 선물 중에 최근 기억에 남는 선물은 가오나시가 앉아 있는 귀여운 무드등이었다. 내가 선물을 사서 가지고 오는 과정에 대입해 보니 크기가 작지 않고 조명도 들어 있어 여행 중에 번거로웠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를 생각해서 조명을 골라서 사고 또 꽁꽁 싸매서 가지고 돌아와 나에게 전해 준 수고로움이 너무 고마웠다. 조명을 켜면 가오나시가 너무 무섭게 변해버려 피귀어처럼 책상 앞에 두고 종종 선물을 내 앞에 꺼내 놓던 순간의 친구를 떠올린다.      


이번에는 선물을 고를 때 조금 미리 받는 사람들의 기쁨을 떠올리며 예전보다는 덜 골치 아파하고 조금 더 설레 하면서 선물 줄 사람들을 정하고 선물을 골랐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말을 사랑에서는 믿지 않는 편이지만 선물만큼은 이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공항에 지고 올 때는 잠깐 후회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니 금세 뿌듯해졌다. 그래서 나는 또 아마 1분 1초가 아까운 여행을 가서 또 멍 때리며 길을 걸을 것이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공항에서 후회를 할 것이고 도착해서 포장을 하며 받을 사람들의 환한 표정을 떠올리며 흐뭇해할 것이고 선물을 받는 순간 지인의 표정을 보며 나도 같이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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