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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Sep 18. 2018

어느 술 취한 이의 주정

서늘함과 따뜻함 사이에서




“뭐해? 자?”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 어디야?”


“아버지가 일이 있어서 잠깐 오셨거든. 아버지하고 술 한 잔 하고 집 가는 길이야.”


“술 꽤 마신 목소린데? 웬일이야?”


“쓸쓸한 주제로 얘기를 해서 그런가? 아버지가 지금 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거든. 그 기수가 대략 700명이 졸업을 했는데 벌써 200명 정도가 죽었대. 아직 채 60이 안 된 나이를 감안하면 내 추측보다 죽은 사람이 많더라. 그리고 또 남은 500명도 동창회에 나오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지. 일단 죽지 않고, 아프지 않아야 하며 최소 3만 원 정도의 금액을 부담 없이 낼 수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요새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부담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이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250명 정도. 나머지 연락이 되지 않는 250여 명 중에 동창회의 필요성 자체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니까 생을 달리한 사람은 더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당시 중동에 건설 붐이 일었을 때라 인문 계열보다 훨씬 인기 많았던 학교에 치열하게 진학해서 다들 잘 살아보겠다고 30년 넘는 시간 동안 각자 이리저리 애쓰며 살았을 텐데 죽음도 너무 가까이 있고 동창회 한 번 나올 여력조차 없는 어려움 속에 살 확률도 높더라구. 뭐랄까 아찔하더라. 


언젠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아버지를 보더니 이름을 부르더라는 거야. 고개를 들어 보니 그 택시기사는 학교 다닐 당시에 동기들 사이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잣집에 살던 친구였다네. 30여 년 전 사업이 힘들다고 돈을 빌려가고 연락이 끊긴 뒤로 처음 봤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대. 빌려간 돈이 아주 큰 액수도 아니라 아버지도 잊고 지낸 터라 얼굴을 보니 그저 반갑기만 했다고 하시더라. 동창회장의 의무감으로 그 술 취한 와중에도 요새 뭘 하고 사느냐고 물으며 연락하고 지내자고 동창회도 나오라 했더니 그동안 사업했던 것들이 잘 안 되고 지금은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동창회는 나가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대. 친구는 택시비를 받지 않았고 전화번호를 주며 택시 탈 일이 있으면 언제든 공짜로 태워주겠다며 연락하라고 그랬대. 취기 가득한 몸으로 휘청거리며 택시에서 내려 찬 공기를 맞으며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면서 아버지는 세상사는 게 한 발짝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임을 또 한 번 절절하게 느꼈다고 하시더라. 그 옛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맛있는 것들을 얻어먹고 그랬다는데 먼 훗날 이렇게 만날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얼마 뒤에는 동창회에 갑자기 잘 나오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 전 항암치료 중이라 했고 또 그 얼마 후에는 갑자기 자다가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대. 나는 그저 책이나 영화로만 이해하는 인생무상을 아버지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나 봐. 그 해 학교를 졸업하며 얼마나 많은 꿈과 이상과 희망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겠어. 그런데 87년 6월 항쟁 때 위험하다고 그런 일한다고 세상이 바뀌느냐고 말리는 아버지에게 어찌 그렇게 이기적이고 어리석으냐고 말하며 연락을 끊은 친구가 있었고 97년 외환위기 때 아버지는 자살한 친구의 장례식장에도 가야 했지. 많은 꿈과 희망들이 시대의 잔인함 또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꺾이고 사그라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봐 온 거지. 아버지의 이상과 꿈들 또한 어그러지고 쪼그라들어 상처가 되어 버렸고.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 이런 날 문득 총탄 쏟아지는 전쟁터 같은 인생에 운 좋게 덜 다치고 덜 아프게 살고 있다 생각하니 등 뒤가 서늘해지네. 사는 게 무섭다. “    


“그치만 전쟁터 같이 휑한 곳에 우리 같이 걷고 있잖아. 네가 내가 좌절하고 슬퍼하는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옆에서 지켜봐 주잖아. 그 자체가 등 뒤에 오싹함을 조금 털어주지 않을까? 가다가 내가 조금 살만하고 네가 조금 힘들면 부축해 줄 수 있고 그 반대인 날도 있고. 웃기게 넘어지면 옆에서 실컷 웃어주고, 삽질하면 욕해주고, 나는 못난이라고 헛짓거리한다고 잉잉 울면 그 짓거리하는 것 다 지켜봐 주고, 누가 갑자기 괴롭히면 같이 화내 주고 그리고 술 한 잔 마시고 같이 취하고. 같이 취해야지 혼자 취했냐. 치사하게. 혼자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네 흑역사 생성 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거니까. 우리 같이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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