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이 Oct 25. 2018

어린 날을 톺아보는 밤

울음에 대해



     

그때는 바닥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이것만 하면 괜찮아질 거야. 여기를 지나면 좋아질 거야. 처음에는 다독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콩알만 한 절망에도 다시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쿵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동안 스무몇 해 넘도록 쌓아온 나에 대한 믿음이 그 소리에 조금씩 금이 가다 산산조각이 났다. 여태껏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나약하고 형편없고 이기적이라고 나는 어둠 속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판결을 내리고 처벌을 내렸다.

   

 답을 찾지 못한 날 - 윤하

https://www.youtube.com/watch?v=VwrxHW9iH0U

고요한 밤하늘에

적막한 내 방안에

한 없이 무너지네


아침에 눈을 뜨면

뭐가 달라질까

밤잠을 설치다가

문득 생각이 나

이토록 약한 내가

무슨 쓸모일까

답을 찾지 못한 날


한 번은 이러다간

안될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 발 끝만

이토록 모자란 난

어떤 쓸모일까

답을 쫓지 못한 날


죽도록 간절히 했던 생각. 얇은 살얼음 같은 잠을 자려고 눈을 감고 누워서 아침이 되고 눈을 뜨면 조금이라도 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를, 편해져 있기를 기도했다. 그런 간절한 기도가 나를 여기까지 살게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통절하던 순간순간마다 더 차고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가늠할 수도 없는 바닥을 두려워하느라 처음엔 죽어서 해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기도들은 나에 대한 믿음과 함께 넝마처럼 조금씩 헤지고 흩어졌다. 이 더럽고 불안한 감정만 없어진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지만 뭐라도 한 것들은 효과가 형편없었고 확실한 최후의 방법 하나를 인지하고는 내가 두려워졌다. 따스한 봄날 해내야만 하는 것들을 향해 허위허위 걸어가는 동안 햇빛은 시린 속에 바늘처럼 촘촘히 꽂혔다. 스스로가 두려울 만큼 산산이 깨진 나에 대한 믿음도 빈 속에 유리조각처럼 아무렇게나 꽂혔다. 어디쯤 인지도 모르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내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죽어야 끝나겠구나. 다시는 그 전의 평안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 순간 내 등을 밀어주는 손이 있었다. 촘촘한 햇살을 막아주는 등이 있었다. 빽빽한 유리조각을 빼내 주고 다독여주는 팔이 있었다. 대신 울어주는 눈이 있었다. 그게 나를 여기까지 살게 했다. 그 등도 팔도 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나는 살짝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렇지만 그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 조금만 크게 울거나 몸서리를 쳐도 약하고 몇 번을 떨어진지도 모르는 깊은 곳으로 다시 또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거기 갇혀서 영원히 영원히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울 수도 없었다. 슬픈 일을 막기 위해서, 상처 받고 떨어질 일을 막기 위해서 먼저 보호막을 쳤다. 그게 필요했다. 그때는. 허물어진 난파선 밖으로 나와 널빤지 위에 올라앉은 사람 같았다.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바다로 풍덩 빠져서 영영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엄청 얕은 수심인 줄도 모르고 발을 내딛지 못하고 그 위에서 멀미를 해대고 덜덜 떨면서도 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를 울지 않게 관리해왔다. 모든 예상 가능한 슬픔으로부터 차단하는 무균실에 나를 집어넣었다. 슬프거나 무섭다는 음악, 영화, 드라마 다 보지 않았다. 옆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을 정리 못하고 잡고 있었다. 아무라도 필요할 것 같아서. 그 사람을 혹여나 보내고 내가 울게 될까 봐.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는 도전은 하지 않았다. 울고 있는 나를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모든 자극을 피했다. 그냥 숨 쉬고 살게 만드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나를 적당히 외면하면서 살아야 한다. 더 가면 넌 못 나온다. 너는 약하기 때문에 영영 거기 빠져 지내야 된다고 말했다. 울지 않는 것도 습관이라 습관을 들이니 관성처럼 쉬웠다. 


그렇지만 무균실에 들어있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상처 나고 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무감해지고 허약해져 갔다. 실체 없는 영혼처럼 세상에 한없이 투명하게 떠내려 갔다. 그 모습이 간절히 바라던 나였지만 그 자체가 결국 나를 슬프게 했다. 왜 나를 외면하냐고 이대로 볼 수 없냐고 울면 왜 안 되냐고 작지만 강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져 습관과 자주 부딪쳤고 또 울 일은 생겼다. 하지만 습관대로 이 일은 울만한 일이 아니다 금세 지나가니 잠시만 외면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살 만한지 참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떠내려가는지 한번 울어 보자 했다. 엉엉 울었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다 떠내려가라고 섧게 울었다. 요절한 가수의 노래가 나왔다. 눈물이 볼 사방으로 갈라져 흘러내렸다. 아이처럼 고개를 젖히고 울었다. 그 가수는 왜 죽었을까 왜 떠나고 싶었을까.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지루했을까 슬펐을까 버티기가 힘들었을까 외로웠을까 전부 다였을까.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나. 엉엉 울면서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너는 왜 살아있냐고. 대체 왜 그때를 버티고 살아있냐고. 



필요했다. 그때는 지금 이것들이, 안정감이 필요했다. 좁쌀만 한 절망에도 요동치던 내 정신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상황이 안정적 이기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찾아온 지점이 여기다. 살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지금 내 목을 다시 조른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친다고 시원해질 것 같지도 않아서 바짓단을 뜯으며 울었다.  네가 운다고 해결되는 것 하나도 없다. 그러니 제발 그만 울라고 해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가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버티기만 했나. 생각해보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 알 수가 없어서 더 황망했다. 알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왜 우는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까. 엉엉 우는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떠내려가라고 악을 쓰며 통곡을 해도 떠내려가지 않았다. 눈물 속에 떠내려가기엔 눈물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마음은 좀 더 강해져 있었다. 그렇구나 조금 더 괜찮아졌구나. 


그래도 여전히 두렵고 두려웠다. 내가 내 속에 빠져 죽을까 봐.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가라앉아 나오지도 못하고 거기서 울지도 못하고 숨 막힐까 봐. 사방불을 켜고 잠 못 들까 걱정하며 누운 것이 우습게 울음에 지친 몸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하루 종일 코에서는 눈물 냄새가 났다. 눈물이 코언저리에 있었다. 눈물샘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날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애처럼 우는 나를 떠올렸다. 어디서 그 많은 눈물이 나왔는지 그러고도 모자라 다음날까지 눈물 냄새를 맡게 하는지 신기했다. 집을 나서면서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넌 더 울어야 된다. 습관은 무의식에 가까운 것이라 그 문장을 나도 모르게 외면하려 했지만 그 문장은 하루 종일 눈물 냄새와 함께 따라다녔다. 집에 돌아오며 그 문장에 다음을 덧붙였다.

이제 미뤄 두었던 눈물들을 다 쏟아내야 한다. 넌 더 울어야 된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 아카이브로 향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