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떠나던 날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연탄의 검은빛이 허공 속 연기로 사라지듯 우리 청춘의 꽃잎은 그렇게 한 조각 한 조각 져버렸고 봄빛이 깎이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이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김연수 작가는 소설 당선금으로 집을 구해 달동네를 떠나던 그 날 청춘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나는 언제 청춘이 끝나는 걸 알았을까. 나도 학교 주변에서 살지 않고 이사를 갔다면 그때 내 청춘이 끝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 주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해 본 적이 있기는 한 지 꽤 오랜 시간 지난 몇 년간을 곱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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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 산 건 아니었지만 서울에 와서 처음 내가 살았던 곳은 오래된 학교 기숙사였다. 한 방에는 4~6명이 자고 화장실과 공동 세면대는 한 층에 2개씩 샤워하는 곳은 목욕탕처럼 건물 지하에 하나가 있던 그런 곳. 샤워하는 곳에 수건을 깜빡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마를 때까지 목욕탕에 있는 거대한 선풍기 앞에 서 있기도 했던 곳. 통금은 12시였던 곳. 여러 가지 불편한 건 많았지만 제일 필요한 건 나 혼자만의 공간이 없다는 거였다. 이건 지나고 그때를 돌아보니 정말 불편했구나 생각한 거고 그때는 단지 씻으러 갈 때마다 목욕바구니를 챙겨 다니는 게 정말 귀찮아서 다른 애들처럼 자취를 하고 싶었다. 본가에서 자취를 못 하게 해서 2년 가까이 고시원에 산 끝에 하숙집으로 갔다가 휴학을 하고 보증금을 겨우 모아 친구와 같이 살았다.


처음 살았던 하숙집은 주인집의 방 한 칸을 얻어 쓰는 곳이었는데 고시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짐도 좁아터진 고시원 덕분에 얼마 없어서 리어카를 빌려와 날랐다. 그래도 리어카가 제법 무거워서 친한 선배를 불러 셋이서 끌고 밀며 하숙집으로 가는데 가는 길이 아주 번화한 곳이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힘만 쓰면 될 줄 알았지 정신적인 노동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미처 하지 못 했던 선배는 집에 도착하자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다신 못 할 짓이라고 나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나는 선배에게 김치찌개 집에서 저녁을 대접하며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달걀말이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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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목욕바구니를 안 들고 다니는 게 소원이었지만 3년 동안 그 소원은 이뤄질 수 없었다. 방만 우리 방이고 화장실은 주인집 화장실을 같이 써야 했기 때문에 술이라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은 조용히 방으로 직행해 자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는 푸드코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드디어 보증금으로 쓸 돈이 어느 정도 모여서 겨울과 봄 사이 어느 날 근처의 오래된 빌라 1층으로 이사를 갔다. 마침내 목욕바구니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 간 것이다. 옆집과 너무 딱 붙어 있어 창문이 크게 나 있어도 낮에 불을 켜야 했던 집. 끝나고 오면 항상 집에 와서 상도 없어서 바닥에다 밥과 반찬을 깔고 먹거나 친구가 진열기한이 지난 케이크를 싸오면 그걸 굶주린 사람 마냥 먹으면서도 눈만 마주쳐도 재밌었다. 연애하는 얘기, 괴롭히는 점장님 얘기 그런 걸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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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춘은 그 당사자에게는 버거운 것이고 이제 감당할 만하겠다 싶으면 사라지고 없는 그런 것인가 보다. 우리는 그 시절 빨리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 돈 계산을 하지 않고 먹을 것을 사고 햇볕이 잘 드는 창문을 열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배낭여행을 가고, 친구는 다시 복학하면서 각자 살게 되었고 우리는 멀어진 거리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간간히 만나서 현실에 대한 고민을 나누던 어느 날 우리는 그때를 돌아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서로 선명하게 기억하는 부분도 꽤 달랐고. 그때 어렴풋이 느꼈나 보다. 그 날들이 추억이 되었구나. 그때가 우리의 청춘이었음을 그때는 몰랐구나. 우리의 청춘이 이제 끝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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