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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Aug 24. 2022

숲으로

걸어서 자유 속으로

 난 종종 걷는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도서관에 갈 때도 걸어서 한 시간 내의 거리는 자주 걸어 다닌다. 대학생 시절, 학교가 굉장히 멀었는데 굳이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살던 본가 옆으로 큰 강이 있고 산책로가 잘 조성이 되어 있는데, 그곳은 동네 주민들에게 운동을 하거나 만남의 장소였다. 그런 곳이 있기 때문에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취업을 하고 직장 근처로 자취를 시작하면서 걷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것도 빠듯한데 일부러 걷는 시간을 만들 순 없었고 퇴근 후엔 피곤함에 거의 누워 지내기가 일상이었다. 그렇게 일이 년 정도 지나자 몸이 굳었다. 꽤 유연하다고 생각했던 몸은 뻣뻣했고 스트레칭을 하면 몸에서 소리도 났다. 서 있거나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것 외에 몸을 움직이지 않은 탓일까.

 그때부터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시간상 다른 운동을 배우기도 어렵고, 배우고 싶은 운동도 없었다. 간단하고 언제든 시작할 수 있으며, 대학생 때까지 걷는 것을 좋아했던 그때가 떠올라 걷기가 나에겐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날이 되면 근처 공원이나 산으로 가서 짧은 트레킹 코스를 걷거나 집 근처의 강가를 따라 걸었다. 시간이 없을 땐 새벽이나 아침에 한적한 동네 산책을 하거나 퇴근길에 집에서 좀 멀리 있는 마트를 가는 등 가벼운 걷기도 종종 했다. 그러자 확실히 몸이 조금 가벼워지고 근육이 유연해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걷는 것이 더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난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라 종종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며 지낸다. 가끔은 일을 하다가 안 좋은 일을 되뇌기도 하고, 안 하던 고민과 걱정이 꼬리를 물고 줄줄 길어지기도 한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 일터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걷기 시작한다.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계속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부정적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교체된다. 걷기를 할 땐 보통 좋은 생각이나 재미있는 계획이 떠오르는데 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을 눌러버리는 것이다. 때론 고민이나 걱정이 많을 때에도 걷기도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고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방향에서 생각을 하게 되고, 오히려 단순 명료한 해결책이 나온다. 이래서 걷는 것은 나를 구원해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얼마 전 쉬는 날 집에서 버스로 30분을 이동해 ‘만보 걷는 길’이라는 곳으로 갔다. 여름이 끝나는 이 무렵, 아직 여름을 보내기 아쉬워 여름의 울창한 숲과 그곳에서 활동을 하여 더움을 더 느끼고 싶었다.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역시나 빠르게 숨이 찼다. 처음부터 나타난 완만란 노르막 길을 걸어 올라가자 작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숲을 둘러싼 저수지는 숲을 비추어 초록색 물결을 보여 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영롱하여 한참을 구경하였고, 마침 부는 바람에 땀이 식으며 시원함을 느껴졌다. 저수지를 지나자 낮은 산길이 나타나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들어서면서 이어폰을 빼고 걸었다. 봄의 산에선 들리지 않았던 매미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고, 그 소리 사이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도 들렸다. 자박자박 흙과 돌 밟는 소리가 좋아 천천히 땅을 지르밟으며 올랐다. 목적지에 반 정도 올랐을 때 챙겨간 얼음을 담은 텀블러에 캔 콜라를 마셨다. 후끈 열이 오른 몸에 차갑고 달콤한 탄산음료가 목구멍을 타고 몸 안으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름은 이렇게 작은 것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잠시 쉬다 다시 걷기 시작해 작은 절에 도착하고 잠시 둘러본 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하산했다.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와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산 새들을 구경하며, 작고 날아다니는 벌레들과 싸우며 그 길을 돌아왔다. 짧은 산 걷기로 몸의 영양을 채우고, 마음의 짐을 그곳에 두고 왔다.


 최근 책을 읽다 발견한 한 구절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 걷기의 즐거움을 너 스스로 잃어버렸을 때, 너는 이제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이 너에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간다는, 단지 그뿐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을 때.’ 이 문장을 읽고 사람들에게 걷기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엔 어딘가로 간다는 행위가 하나의 모험이었다. 한 발짝 내딛는 것은 오늘의 여행을 시작하는 설렘과 긴장이었다. 그런 두근거림이 오늘날엔 그저 목적지로 간다는 의미로만 남겨진 듯하다. 어른이 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어른이 되어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형식적인 자유일 뿐 진정한 자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요즘이 더 자유를 잃은 것 같다. 걷는 순간, 해야 할 일들을 내려놓고,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의 끈을 잘라 버리고, 넘어지지 않게 두 다리와 발에 집중하는 순간이 내가 가장 활기차고 자유로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자주 걸었으며 좋겠다. 어린 아이였을 때 처럼 활기차게, 그래서 다들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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