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바나나 토스트
날이 좋다는 핑계로 일을 손에서 놓고 있는 요즘이다. 날씨는 좋고 바람은 선선하니 돗자리 하나 챙겨 강가로 소풍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는 계절이다. 항상 봄, 가을은 마음잡기가 어렵다. 이 아름다운 세상, 그저 쉬고 휴양을 하며 보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2023년이 끝나 간다는 뒤숭숭함도 한몫을 하고 이래저래 변화되는 주변 환경도 내가 마음을 못 잡는데 한 역할을 한다.
좋은 날씨에 비해, 하루는 재미가 없으니 오늘은 작게나마 변화를 주고 싶어 마트로 향했다. 이날의 목적은 슬라이스 치즈이다. 빵과 치즈의 조합이야 당연히 맛있고 특별할 것 없는 조합이지만, 평소 즐겨 넣는 야채나 햄 같은 재료가 아닌 바나나를 넣어 달콤한 토스트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어제는 늦은 퇴근으로 인해 저녁에 먹을 예정이었던 치킨을 포기하고 바나나를 선택했다. 이성이 이겼다. 그 바나나는 잘 익어 달콤했고 예상외로 치킨과는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었던 바나나지만, 특별함 한 스푼 넣어 사랑스러운 나의 점심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간단하게 맛있게 만드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한 점이다. 먼저 오븐을 예열한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180도로 맞추었다. 식빵과 통밀 빵 중 고민을 했지만 부드러운 식빵보단 거친 통밀의 식감이 부드러운 치즈와 바나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통밀 빵으로 선택했다. 빵 위에 좋아하는 치즈를 얹고 아몬드 슬라이스와 바나나를 얹는다. 바나나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린다. 그대로 예열된 오븐에 넣어 10분-15분 정도 굽는다.
오븐 속에서 빵은 바삭하게 구워지고 치즈는 녹는다. 바나나는 물렁해지며 더 강한 단맛을 뿜어낸다. 슬라이스 아몬드는 바삭해지고, 설탕도 살짝 녹으며 더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10-15분 정도 구운 다음, 그 위에 시나몬과 아주 소량의 꿀을 뿌렸다.
뜨겁게 익어 더욱 달콤해진 바나나와 짭조름한 녹은 치즈, 식감을 더해주는 아몬드와 코를 자극하는 시나몬과 단 향, 그 모두를 어우르는 바삭하고 거친 통밀빵. 바나나 치즈 토스트는 상상이 가능한 맛이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만든 보람이 있었다. 만든 과정에 비해 과할 정도의 맛을 보여준다. 쌀쌀한 요즘 날씨에 치즈와 달콤함이 주는 음식은 어쩌면 최고로 궁합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되면서 마음도 뒤숭숭하고 의욕도 조금 떨어졌다. 가을 타나..? 싶은 마음이지만 뭐든 해야 하는 게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기 싫어 하늘만 보고 있던 요 며칠, 스스로가 한심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요즘,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여 만든 것이 이 토스트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있어 보이는 토스트를 만들어 내며 오랜만에 뿌듯함과 성공함을 맛보았다. 음, 역시 뭔가 만들어내는 이 재미에 우리는 뭔가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없다면 어서 움직이고, 나아가자. 무기력쯤이야 바나나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