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익숙해서 편안하다. 그 상대와 꽤 친하다면 더없이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성격도 가치관도 입맛도 변해서 많은 사람 관계들이 정리된다. 수많은 중, 고등학교 친구들과 30대가 되어서도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지금은 한 명만이 친한 친구로 남아있다. 점점 만남이 소홀해지고 오래간만에 만나면 옛날이야기만 하는 사이가 된다. 어색해지고 멀어진다. 조금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생각한다. 떠나는 만큼 또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이나 생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깐.
천안에 살고 있는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추석이라 대구로 내려온 친구의 본가는 우리가 다닌 중학교가 있는 동네다. 나도 그곳에서 쭉 살았다가 20대 중반에 자취를 하며 동네를 옮겼다. 그래도 비교적 잘 만났는데, 친구가 천안으로 가면서 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모처럼 친구와 밥을 먹기로 했다. 추석에 문 여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다들 영업을 하는 것 같다. 친구와 식당을 고르다가 20대 초반에 갔던 식당들이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아, 여기다! 하고 추억을 맛을 찾으러 갔다.
우리의 대화는 변치 않게 술술 나왔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님에 감사했다. 파스타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쩌면 별 것 없는 이 만남이 이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이 조금 외롭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새롭게 도전을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친구는 언제나처럼 덤덤히 응원을 해 주었다. 큰 관심에서 비롯된 질문보다 묵묵히 공감과 이해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예의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가게를 나와 트럭에 파는 꽃을 사서 선물로 주었다. 친구는 자신과 어울리는 하얀 소국을 골랐다. 소국이라니,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우리는 밥을 먹고 항상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코스를 밟아갔다. 이젠 그때처럼 되게 많이 못 먹는 나약한 30대가 되었지만, 우리의 귀엽고 소중한 만남이 40대, 50대가 되어서도 쭉 이어지길 바란다. 모처럼 참 편하고 설레는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