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7 03화

7-3. 48시간과 55분의 차이

by moonrightsea

" 오빠 달려!"

미친 듯 연우는 여행 가방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는 연우가 들었던 내 가방을 도로 받아서 같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휴우.


가까스로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 몇 시지? "


" 응? 이제 47시간 40분"

" 응? 시간이 머그래?"


" 힛"


연우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 나를 휘둥그레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인상을 확! 쓰고는

" 야 너 무섭게 왜 그래?"

" 뭐가요?"


" 그런 시간 제발 세지마."

그런 연우를 바라보며 나는 '메롱'하며 혀를 날름 내밀고는,


" 시른데?"


" 아휴. 못 말려. 그래. 잘 지켜볼게. 그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이번에는 도망 못 간다?"

" 도전하시나요? "


" 싫어. 하지 마. 그딴 거."


그렇게 말하며 연우는 연신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 후아, 후아. 아씨 벌써 간이 녹을라 그래. 아직 제주도도 못 갔는데."




나만이 알 수 있는 규칙.

그는 알 수 없는 규칙. 그가 알아차리면 그는 떠나야 하기에 나는 절대 알려주지 않겠다. 히히. 연우는 내 거니까.


비행기는 어느새 공항에 도착해 사람들은 짐을 챙겨 들뜬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갔고 제일 마지막까지 죽어라 버티던 연우는 결국 내 손에 질질 끌려 나왔다.


" 아 왜. 그냥 돌아가자. 무섭다고. 제주도가.. 너어무 무서워. 이렇게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야."


" 아 가만히 좀 즐겨봐요. 편견을 깨부숴 버려~~!"


그렇게 투덜대던 연우는 이내 내가 손을 놓고 어둑해져 어느새 밤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는 공항을 그것도 달랑 배낭을 하나 들쳐 엎고 나서자 그제야 기겁을 하고 따라와서는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졸졸 따르며 연신 주변을 살폈다.


" 근데 왜 택시를 안 타고 너는 이렇게 그냥 가? 이 밤에?"

" 걷다 보면 나와요. "


" 응? 뭐가?"

" 우리가 머물 곳. 우리를 찾는 곳."


하지만 제주 공항을 정작 빠져나오고 보니 인근은 전부 주택가 거나 문 닫은 상점뿐이었다. 어느새 오징어처럼 늘어져가던 연우는 내게 자꾸,


" 그냥 우리 콜택시 부르자. 응? 내가 머릿속에 있던 그 숫자들 싹 잊어버릴게. 응?"

" 후훗. 앗 저기닷."




내가 손을 들어 가리키자 연우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바라봤고, 내 손길이 머문 곳에는 길가 간판에 불이 반짝반짝이며 곧 나갈듯한 낡은 모텔이 있었다. 나 또한 속으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걸은 거야 도대체. 휴우. 다행이다. 그래도 찾았네.'


간판을 보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우는 내 손을 잡고 뛰며 내 등에 있던 배낭을 그새 달랑 가져가 어깨에 짊어졌다. 그러더니 다시 달려 모텔입구에 도착하자마자,


" 여기 방요. 헉 헉 헉 헉."

" 헥헥헥헥헥... "


" 어서옵솨. 멀리서 왔는갑네. "

주인아저씨는 키를 탁 내놓더니 고개를 까딱하며 계단을 올려다 보셨다.


" 하아. 엘베도 있는데..."


이제는 내가 투덜대자, 갑자기 연우가 허리를 쭈욱 펴더니 아주 뿌듯한 얼굴로


" 가자. 이까짓 거."


그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두 계단 씩 3층까지 단번에 올라갔다. 덕분에 나는 총총총 민첩하게 달려 계단을 미친 듯 달려 올라갔고 후다닥. 소싯적 육상실력으로 먼저 뛰어가 방문을 잡았다.


" 아싸. 내가 먼저 씻어야지."




그저 화장실을 먼저 사용한다는 기쁨도 잠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연우는 그렇게 침대에 다리를 걸친 채 가방을 옆으로 돌려놓고 대자로 누어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휴우. 여전하시네. 하기야 여기 온다고 며칠을 나이트 근무를 대신 서더라니. 그의 팔에서 가방을 빼고 다시 그가 깔고 누운 이불을 질질 당겨 올려 그렇게 온몸의 힘을 다 빼고서야 나는 옆에 쭈그리듯 누어 잠이 들었다.


" 번쩍! 아 잠들면 안 되는데... 데... 번쩍!"


그렇게 몇 번을 나와의 사투를 벌이고 눈을 떠보니 벌써 8시간이나 잠을 잔 것이 아닌가. 이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버리다니.


" 오빠 일어나요. 응?"

"..."

"일어나 보세요. 아잉?"

"..."

" 눈을 뜨라고 인마!"


아무리 깨워도 꿈쩍을 앉고 대자로 뻗어 자는 연우에게 결국에는 내 필살무기를 사용.


그의 배 위에 올라앉았다.


그러자 그가 용수철처럼 벌떡 앉더니 나를 안고 다시 쓰러졌다.

" 이게 무슨 만행이야. 기행도 아니고. 제발. 미소야."


" 이래도 안 일어나요? "

그의 바지에 손을 쓱 넣자 그가


" 흐음"

그리고 손을 빼서 다시 그의 귀가에 대고

" 오빠 그럼 잘 자요."




그렇게 말하고 신발을 들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와서 문을 쾅 닫자,

" 자 자잠시만... 나 양치라도 좀 하자. 1분만!"


이윽고 눈을 부비적 대며 나온 연우는 얼굴이 죽을 상이 되어 그렇게 툴툴 거리며 내 뒤를 따랐다.


" 모텔이 가성비가 완전 꽝이야. 꽝 모텔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나오는 게 말이나 돼? 이 아름다운 제주까지 와서 말이야. 낭만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어. 내가. 차라리 내가 나이트 근무를... 우와."


투덜거리는 그의 앞으로 일출이 장관을 이루며 연출되고 있었다.

" 오빠축하해."


" 응? 뭐뭘?"

" 늙었어."


" 쳇 그러는 너는 너도 축하한다."

" 뭘? "


그러자 연우가 달려와 내 목을 팔로 걸고는 꿀밤을 때린다.

" 뭐긴 뭐야. 나한테 잡힌 거지. 인제 올해로 너는 저 태양과 함께 나한테 코 꾀인 거야 인마."


" 어쭈? 이제 체력이 살아나나 봐? 잡을 수 있을까? 전직 육상선수를?"

" 도대체 그 육상은 언제 배워서 너를 그 지경으로 만든 거야? 응?"


" 훗. 잡아보시든가."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그렇게 말하고는 열심히 달렸는데... 연우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뒤돌아보자,


" 잡았다. 허억허억. 허억허억."

" 에잇"




그 겨울 그 새해 벽두대간 아침부터 우리는 미친 연놈이 되어 그렇게 둘레길을 달리고 잡히고 숨고르고를 그렇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결국 타협에 타협을 거듭해서 결국 버스에 올라 애월로 향했다. 부드러운 반짝이는 모레가 아름다운 애월읍. 그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차대란을 일으킬 만큼 곳곳에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그와 함께 그 길가를 버스에서 내려 조금 더 아래로 걸어 내려오자, 항구가 보인다.


붐비는 관광지를 조금만 지나면 그냥 평범한 마을. 어귀 항구. 하지만 이런 소소한 곳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한차례 배들이 드나들고 어느새 한산해진 포구. 막 아침이 시작되는 그곳에는 몇 안되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낡고 오래된 가게들도 줄줄이 나즈막하게 예쁜 풍경을 이루며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길을 따라 뉘엇뉘엇 걷기 시작하자 이윽고 현관앞 회색 대리석 기둥 사이 묵직한 나무 문이 달린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전통있고 지역을 대표하는 가게, 그리고 묵묵히 그자리를 지켜 온 맛집.


" 오빠 죠기 봐봐요. 저기 문 앞에 태극기 표지판이 붙어 있어. 멋지지 않아요?"

" 아니 하나도 안 멋져. 그냥 배고프다고 해."


" 칫. 아잉 오빠앙 배가 고파용. 밥 사주세용.오빠앙 넹?"

" 와. 너 안 어울리게 그 혀 꼬부라지는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냐?"


" 뭐. 다른 여자들이 할 때는 그렇게 실실 웃으며 좋아하더니 나 보고는 왜 못하게 하는데. 응?"

" 닭살 돋아. 밥이나 먹자."




연우는 입김을 호호 불며 춥다는 내색을 저딴식으로 하면서 나를 갈구고는 얼른 식당으로 들어갔다.


00 기사 식당.

항구 배가 들어오는 선박장 바로 입구에 자리 잡은 식당. 식당 안은 벌써 한창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선원들. 00 택시 명찰이 붙은 기사님들. 제법 연세 있으신 어른 들로 가득차 자리는 몇 안 남고 그 늦은 아침에도 다 차 있었다.


" 저희 여기 갈치 정식 2개요. "

바쁘게 움직이시는 아주머니께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주문한 연우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는 물을 꺼내며,


" 물 가져 갑니다."

그러고는 아주머니와 고개인사를 살짝 하고는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자리로 와서는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나는 그런 그의 팔을 딱 잡고는 고대로 내려놨다.


" 왜에. 목말라 죽겠는데."

" 밥 먹기 전에 그렇게 물 많이 마시면 소화 안돼요. 잘 알면서."


" 아휴. 알았다. "

그러더니 수저를 챙겨 내게 줬다. 나는 씩 웃으며


" 이제 이런 건 잔소리 안 해도 알아서 잘하네요?"


늘 혼자 생활이 익숙했던 그였기에 언제나 밥을 먹으러 가면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당연히 자신의 수저만 들어 밥을 먹기에 급급했고 어느 날부터 시작된 내 잔소리가 귀딱지가 안는다고 투덜대던 연우는 어느새 이것마저 익숙해졌나 보다.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부글부글 끓는 갈치찌개가 테이블 위에 세팅이 되자 마자 그는 연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가 밥공기 밥 반을 덜어 그의 밥 위에 올려두자,


" 너도 어서 먹어. 정말 맛있어. 꿀맛이야."

그렇게 말하며 미친 듯 한 그릇을 뚝딱 먹었다. 그리고 연신

" 여기 밥 한 공기 추가요."


손을 번쩍 들어 외치더니 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반찬을 하나하나 그의 밥 위에 올려주며 내 흰밥 위에도 척척 올려가며 그 맛을 음미했다.

향긋한 미역향이 나는 미역줄기에 손수 담은 깍두기, 깊게 우려진 젓갈맛이 골고루 베인 묵은 김치, 짜지도 싱겁지도 않지만 왠지 모를 약간의 멸치향이 나는 듯한 콩나물 무침, 그 바쁜 아침에 모양을 이쁘게 낸 계란말이, 그리고 통으로 멸치가 그대로 있는 멸치젓갈과 같이 나온 다시마, 겨울 쌈배추.


별다른 구색이 아님에도 그 반찬들은 하나 가득 정성이 들어 그런지 여느 집과 달리 손맛이 느껴진다.

혼자

'음~~'


하면서 먹고 연우에게 올려주고 하는데 갑자기 연우가,


" 야. 너 무섭게 왜 그래? 그냥. 얌전히 먹어. 오늘 약간 너 맛이 간 거 같아."


그렇게 말하더니 두 세 숟가락을 마저 입에 더 털어 넣고는 이제는 턱에 손을 괜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그렇게 맛있어?"

" 네! 오빠. 너어무 맛있어요!"


" 아 어색하다. 저 진짜 지 입맛에만 맞으면 나오는 높임말에 감탄사. 아휴. 음식 보는 눈만 높아가지고."

그러며 내 볼을 잡고 흔든다.




" 어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내가 숟가락을 들어 연우의 손을 탁치자, 젓가락을 들고는


" 맛있게 먹으면서 잘 막아보시든가."

그러면서 연신 시비를 걸었고 반찬을 들고 곁을 지나던 아주머니께서 그런 우리를 보며 웃으시고는

" 밥 더 줄까?"


그러자 그제야 연우는 배에 손바닥을 대고 쓱 쓱 문지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충분히 많이 먹었습니다. 진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그런 그를 보며 내가 방긋 웃자,

" 자 가이드님 이제 어디 가실지 브리핑 한번 해보시지요"


" 응? 그딴 거 없는데요?"

" 뭐? 제주도 와서 계획이 없다고?"


" 응. 음 아이스 크림이나 먹으로 갈까?"

" 어디로? "

" 아까 거기."


" 거기가 어딘데?"

" 사람 많은 곳."


" 애월리?"

" 응"


" 다시 되돌아가는데?"

" 그럼 안되나요? 오빠?"

" 에휴. 그래. 가잣. 가도 되지머. 밥도 인제 먹었겠다. 가자. 가. 아 근데 왜 이렇게 나는 졸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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