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7 04화

7-4. 48시간과 55분의 차이 2

by moonrightsea

식사를 마친 연우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헤롱헤롱 거리며 내 뒤를 따랐다. 그런 그를 한번 휙 돌아보고 나는 쭐레쭐레 그에게 달려가 그의 패딩 주머니에 손을 스윽 너어 그의 바지를 더덤었다.


" 야.. 너... 지금 여기서... 이거 성추행 감이야. 암. 거기 안서? "

" 헤헤. 준비해. 단숨에 달릴거니까.이히힣히히히"


다다다다다닫다다닫다


" 헥헥헥헥헥헥..."

"허어억. 허억. 헉.헉헉."


사실 나도 아까부터 졸리고 진이 빠지려는 참이었지만 이런 연우를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 너무 신이 났다.


그래서 왠지 없던 힘마저 불끈 솟아서 달리면 달리는데 탄력이 붙어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더 미칠듯 달려졌다. 덕분에 그 추운 겨울 바람은 어느새 우리의 열기로 저만치 물러나 따스한 봄이 오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향긋한 바다향과 같이 마치 봄바람이나 되는 양 열기가 되어 그렇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 저 저기 아이스크림 가게 안해요?헥헥."


" 어머 어떻게 해요. 이 겨울에. 사먹는 사람이 있어야지. 한 4월은 되어야 하는데.. 아님 여기 따뜻한 커피라도... 근데 둘이 이겨울에 뭘 했길래 그리 땀을 흘려요?"


헥헥 거리며 아이스크림 가게가 쉰다는 소식에 울상이 된 우리를 연신 번갈아 보던 아이스크림가게 옆 커피가게 주인은,


" 이 겨울에 그렇게 땀흘리고 찬바람 맞으면 감기 들어요. 자 이리 여기 구석이라도 들어와 몸 좀 녺이시고들 다른 거라도 잡수시던가.."




컨테이너 귀퉁이 난로 옆 자리로 안내하셨다.

향긋한 감귤차를 두 손으로 받쳐서 움켜쥐고는 그렇게 호호 불어 가며 마시는데 어찌나 향이 향긋하고 온몸을 타고 내리며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지

"캬~~아"


감탄을 하며 마시는 연우를 바라보자 나름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 오빠. 제주도 4.3사건 알아요?"

" 그거야 뭐 역사시간에 배운 그 정도?"


" 아아아. 음 거기 가볼까 했는데 그분들 데모 중이라고 신문에 낫더라구요. 나도 급하게 읽어서 자세히는 못봤는데...역사 기념관이 있나?"


" 음 몇시간 남았어?"

" 뭘요?"

" 네가 말하던 시간."


" 응? 아... 힛. 잠시만... 음 그러니까 음 밥 먹고 애월에서 1시간 우와.. 시간이 벌써..흡."


연우는 내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얼굴을 바라보며,


" 이렇게 하면 연장이 되나?"


" 에이 설마. 가는 시간을 어떻게 되돌려요?"

그러자, 그는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이마에도.

" 이건?"




그때,

" 어머. 둘이 신혼부부구나. 어쩐지 티격태격 대더라니 잘어울리네요. 이건 서비스."


아까부터 우리를 보고 계셨는지 사장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테이블 위에 오메기떡 2개랑, 감귤 초콜렛 2개를 서비스로 올려두고는 가게 문밖으로 나가셨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며


" 풉."

" 크하하하"


그리고 이내 흐름이 끊긴 키스를 뜨겁게 마무리하고 나오며 사장님께 자리주셔서 감사하다며 오메기 2박스와 감귤초콜렛 2박스 세트를 사서 나왔다.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며 넣을 곳을 찾던 연우는 이내 내게


" 니 가방 줘봐. "

" 내가방은 왜요?"

" 니 가방은 비었잖아. "


그렇게 말하고는 가방을 휙 낚아채 갔다. 그리고 다시 이리저리 뒤지더니 오메기떡을 넣고 어깨에 둘러 메었다.


" 자 이제 준비 끝. 어디로 갈까요? 가이드님?"

" 음 버스? "


" 어디로 가는데 버스를 타?"

" 버스로 이동하는거죠. 풍경보면서. 수다 떨면서."


" 휴우. 그래 목적지 없이 온 여행 어딘 들 못가겠어?"


그렇게 다시 버스에 올라 중문으로 향했다.

차로 이동하면 고작 40분~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 하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그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가다 서다 마을로 들어갔다 다시 바닷길을 달리고 그렇게 끝이 없이 이어진 길을 바라보며 우리는 버스 뒷자석에 앉아 풍경도 구경하고 버스에 오르는 승객도 구경하며 제주 유명 관광지 근처를 그렇게 휭 하니 멀리 돌아 중간에 내려 간단히 토스트도 사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중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바닷길로 향해 내리막을 걷기 시작해 한참을 내려오니 보이는 리조트, 호텔들.


어둑해져가는 하늘 아래 반짝이는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는 리조트와 호텔의 정원은 너무나 아름다운 야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연덕스럽게 호텔 정원으로 들어가 호텔 둘레로 난 작은 산책로 불빛을 따라 넓은 정원을 20분 쯤 걷자 바다 방향으로 난 계단 길이 나왔다.


그 게단을 보자마자 나는 다다다다 내려가 계단 제일 아래칸에 가방을 탁 집어 던지고 바로 두팔을 벌려 바다를 향해,


"아아아아앙아~~"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들었고 놀란 연우도 가방을 그자리에 벗어둔채 냉큼 내뒤를 달려왔다.


나는 그런 그를 아랑곳 않고 신발을 벗어 던진 채 바다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갔다. 여전히 소리를 지른 채. 그러자 이내 신발을 신고 그대로 뛰어든 연우가 내입을 막았다.

" 야. 이러다 경찰 온다. 소리좀 ... "




" 깔깔깔깔"

나는 웃으며 그를 한번 힐끔 보고 그에게 차가운 바닷물을 뿌렸고,


" 크흡. 미쳤네. 아주. 미쳤어 단단히 미쳤어."

이렇게 말한 연우가 물을 두손 가득 담아 내머리에 붓고는


" 크흡. 푸하하하하 "


질세라 나도 두손에 바닷물을 받아 그에게 달려들자, 그제야 그는 다시 모레사장을 지나 게단으로 내 신발을 들고 내달리며,


" 안돼. 절대 양보 못해. 안된다. 가까이 오면 이 신발 던진다."


그렇게 말하며 연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웃으며 계단을 올라 다시 리조트 산책로.


" 휴우. 아 오늘 완전 에너지 방전되겠는데? 여기서 잘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리조트 건물을 올려다 봤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나하고는 안맞아요. 따라와요. "


그렇게 말하고는 그의 손을 이끌고 다시 오르막길을 연신 올랐다. 한참을 걷자, 교차로가 나오고 나즈막한 시내 풍경이 이어지나 싶더니 주택가를 몇걸음 더 걷자, 이윽고 민박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였다.


" 여기? "

" 응"


그러자 연우가 들어가며

" 안녕하세요. 저기 혹시 빈방있나요?"


" 네. 어서옵서예. 둘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연신 우리를 위아래로 보시던 주인 아주머니는

" 밥은 먹었수까?"


그러자 연우가 넉살좋게

" 주시면 감사하지요. 계산은 선불로 같이 하겠습니다. 헤헤."


그렇게 우리는 인심좋게 차려진 몸국에 산채 나물에 갈치 구이에 한상을 뚝딱하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왔다. 가방을 탁 내려 놓은 연우는 이불을 들어 바닥에 정성스레 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 자 . 애기야. 자자."

" 응? 안잘건데? "


" 아 왜 또~~ 오. 피곤해 죽겠는데. 응?"


그렇게 말하며 내게 애교섞인 표정으로 와 어느새 내 팔을 흔들며 가방을 내려놓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내 패딩의 지퍼를 스르륵 내렸다. 그런 그의 손을 곱게 잡아 내려놓고 다시 패딩 지퍼를 올린 뒤


" 별보러 가야지. 나가자."

" 와이씨. 밥먹은 거 방금 다올라 올라 그랬어. "


연우는 연신 투덜대며 나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민박집에 짐을 두고 다시 중문 도로길을 따라 걷자,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다시 내리막길 입구로 들어서니 눈앞에 어느새 반짝이는 서귀포시가 보인다.


" 여긴 밤이 되어야 보이는 구나. "

내가 이렇게 말하자 연우는


" 제주도 처음 온거 아냐?"


" 나? 음. 고등학교때 한번, 대학교때 한번. 음.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졸업하고 그해에 한번 이번까지 4 번째네요? 오빠는?"

" 나? 난 뭐 대학때 음... 그니까.. 음... 뭐 되써."


" 뭐야. 다 애인이랑 온거지?"

" 아.. 아냐. 그런거. 에험. 그럼 뭐 넌? 제주도 왜 왔는데?"


" 나? 수학여행, 졸업여행, 친구랑 자유여행?"

" 으음. 별이 이쁘네. 그래. 별보러 온거라. 으흐. 별이 아주 아름다워. 역시 제주하면 밤바다야. "




" 흥. 뭐래. 여기 바다가 어디보인다고."

" 응? 안보여 저어기 보이잖아. 저어기."


이렇게 말하며 손을 쭉 뻣어 하늘이 닿는 끝지점쯤 어둠이 내려 앉아 어느새 밤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경계를 향해 가르키고 있었다.


'그래 그의 손끝 어딘가에 망망대해가 있겠지. 그곳 어디끝자락 보이지도 않는 곳에 부산이 있을지 여수가 있을지 알수는 없지만 그길을 따라 쭉 고속도로를 달리면 내가 있던 서울로 가겠구나. 고향도 아닌 그곳에서 나는 참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나혼자 많은 일들을 겪었네. 그리고 이 손끝을 만났구나.'


그의 손끝을 그렇게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그가 점점 다가와 자신의 손끝 앞으로 와서는 몸을 내게 돌려 막아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 오 또하나 발견."

" 응? 뭘? "


" 니 눈깔."

" 눈깔이 뭐야. 오빠는"


" 새로운 눈빛 접수."

그러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며 두손을 들어 내 볼을 감싸쥐고는 키스를 했다.


" 하아"




콧등으로 전해지는 그의 뜨거운 입김.

그 입김에 화답하듯 그에게 먼저 키스를 건네자 그는 연신 나를 탐하듯 그렇게 뜨겁게 키스로 사랑을 전해왔다. 그리고


" 더 있음 우리 감기 걸리겠는데?"


이렇게 말하며 그는 신이난 모양으로 내 손을 잡은 팔을 막 흔들며 콧노래까지 부르며 그렇게 나를 가끔씩 힐긋힐긋 보며 민박으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그와 보낸 제주도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6시.


" 오빠 일어나요. 가자."


버티다 버티다 안되서 벌떡 일어나 앉은 연우에게 야구모자를 푹 눌러 씌워서는 그렇게 그를 끌고 아침 새벽 버스에 올랐다.


성산일출봉행. 버스는 어둑한 새벽이 어느새 밝아지며 하늘을 비추는 그 해안 길을 따라 그렇게 달려 붉게 물드나 싶더니 이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내 달려 어느새 일출봉에 도착했다.


또다시 시작된 산행길. 연초라 밀려든 인파로 빽빽한 산책로를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한계단씩 한게단씩 올라 중간에 조금 한숨을 후~~하고 쉬어가며 또 오르고 오르자 드넓은 바다가 장관을 이루는 정상에 다다랗다.


" 이제야 네 체력이 조금 보이네. "




연신 호흡을 조절하는 나를 보던 연우는 훗하고 웃더니,

" 여기 전망의 소감은?"

" 음 해가 내 품안으로 스윽 하고 들어온 느낌?"


그렇게 말하며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러자 그가,


" 잡았다. 요놈. 제발 제발 시간 좀 붙잡았으면 좋겠네. 이대로 멈춰버리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내 허리를 와락 껴 안았다.

달콤한 뽀뽀도.

그의 따스한 품도 너무나 좋은 이곳. 차가운 바람에 서둘러 내려가는 등산객들, 관광객들 그들의 그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하며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며 웃으며 서 있었다.


" 내려오는건 금방이네. 올라간 거에 비하면 조금 아쉽네."


이렇게 내가 말하자 연우는 갑자기 내리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아냐. 아냐. 그건 아냐. 절대 내시간을 되돌리려 하지마. 절대 안돼"


그렇게 외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익숙하게 그를 따라 달려가며


" 오빠 잠시만. 배고파. 나 배고프다고용"




그러자 그가 가던 길을 멈추고는 갑자기 휙 하고 뒤돌아보며

" 진짜? 오예. 가자. 작전 성공!"


그렇게 말하며 그 의도를 알 수없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 자. 이번에는 뭘로 채워볼까?"


이렇게 말하며 다가와 내 배를 툭툭 두드렸다.


" 오빠는?"

" 나? 난 저거"


그가 가리킨 곳은 간판에 크게 오분자기 뚝배기 해장국이라 적혀있었다.


숫가락을 들자 숫가락위에 딱 그 크기로 올라오는 새끼전복. 한입에 쏙들어가는 그 오분자기가 꽤나 푸짐히 들어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코끝을 자극하고 여느 여행지 식당들 처럼 밑반찬은 푸짐하게 한상 차려 나왔다.


"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고 반찬도 다양하구나."




밑반찬으로 나온 새우 껍질을 까서 접시에 놓자 낼름 연우는 입에 가져다 댔다. 나는 다시 하나 더 껍질을 까서 서둘러 입에 넣으려 하자, 그것조차 낼름 뺏어 먹었다.


" 왜 이래요. 내가 곱게 벗긴 새우를."

그러자 연우가 고개를 연신 절레절레 저으며,


" 안돼. 그런 야한말. 매우 위험해. 특히 이런 스테미나 음식을 말이야. 눈앞에 두고."


" 훗."

" 왜 웃어. 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잘 견디고 있다구."


" 자자. 이거나 많이 먹어요. "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바다향이 물씬 나는 해초를 그의 밥위에 초장을 듬뿍 찍어서 올려주었다. 그러자,


" 아냐. 아냐. 난 고기가 필요해. 단백질."

그렇게 말하며 연신 오분자기 껍질을 벗겨 한입에 털어넣었다.


" 그거 여자한테 좋은거 아닌가?"

" 그런게 어딨어. 지금 에너지 충전하러 와서 방전될 판인데. 아주 기가 쪽쪽 빨려. 누구때문에."




" 어련하시겠어요. 그렇게 나를 놀리고 도망다니는데."

" 어쭈. 놀리긴 누가 놀렸냐? 애간장은 애간장은 다 녹이려 든게 누군데?"


" 어쭈. 그래서 그 애간장은 다 녹아 없어지셨고?"

" 아 아니. 아주 튼튼하게 잘 붙어 있어. 어디 열어봐줘?"


그러며 그는 갑자기 숫가락을 놓터니 스웨터를 단숨에 들어올리려 들었다. 그런 그의 손을 탁 잡고,


" 왜이래요. 식당에서. 그건 차차 확인해볼게요. 잘 붙어 있는지 없는지."

" 또? "


그렇게 말하더니 연우는 숫가락을 들고 투덜투덜대며 밥을 떠 먹다가 뚝베기에 나머지를 탁 털어넣더니,


" 에라이. 그래. 빼가라 빼가. 남의 애간장에 간과 쓸개까지 아주 탈탈 털어봐. 그런다고 내가 물러나나."

" 풉"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그와 함께 손을 잡고 길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내려와 큰 도로가로 나오자 바다가 바로 옆에 붙은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를 천천히 그와 함께 걸으며 오가는 대화 속에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이 꽤나 많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 자 그래서 이제 얼마나 남았어?"

" 이제 음... 12시간도 안남았네요? 한 9시간?"


" 뭐? 벌써? 아 뭐야. 안돼겠다. "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는


" 택시! 택시!"


그와 함께 내린 곳은 제주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모텔.


아무말 없이 서로 붉어진 얼굴을 마주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뜨겁게 또다시 한몸이 되었다 짧은 잠이 들었다 깨서 밖으로 나왔다.


그가 이끈 곳은 근처 대형마트 옷코너. 그곳에서 그는 흰색 스웨터 한쌍을 고르더니 내게 스윽 대어보고는

" 괜찮아?"

내가 고개를 갸웃하다 끄덕이자,

" 그럼 입구나와. "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탈의실로 밀어넣었다. 내가 패딩을 벗고 그에게 받은 스웨터를 다시 바꿔입고 나오자 그는 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매장 그 옷가게 통로에서 막 스웨터를 갈아입고 바로 패팅을 걸치고 있었다.


" 어머 두 분 잘 어울리시네요."

" 여기 계산. 감사합니다. 히힛."


그렇게 계산을 하고 내 어깨에 손을 척하니 올리더니,

" 잘어울리죠?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뒤돌며,

" 가자. 내 오분자기"


" 풉. 오분자기는 또 뭐야. 자기면 자기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씨익 웃어보이더니,

" 왜 내 품에 쏙 들어오구만. 그럼 오분자기지."


그렇게 매장을 나와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느리게 천천히. 공항을 향해.




그가 문득 물었다.

" 근데 나 전부터 궁금했거든. 그 1시간 20분 다 썼어?"


" 아니?"

" 흐음. 어떻게 다썼는지는 차마 못물어보겠는데... 얼마나 남았어?"


" 55분?"

" 뭐?!!! "

순간 연우는 벌헉 화를 내며 물었다. 동공이 흔들리며 분노에 찬 얼굴로.


" 뭘그래 놀라 놀라기는."


나는 천연덕스럽게 그를 돌려 다시 잡고 있던 손을 그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연우는

" 그... 그 그러니까 그 55분도 마저 쓸거야?"


" 응? 응. 이미 사용하고 있지."

" 어? 어떻게? 그자식 만날 시간도 없는데?"


연우가 그렇게 놀라 물을 때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만날일 없어. 그딴 자식 만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그러자 연우는

" 그냥 그 55분 버리면 안돼? 없는 시간으로?"


" 그건 안돼. 내가 버리고 싶어도 이미 지난 시간이라 말이야. 시간은 자꾸 흘러가거든. 그래서 가끔 가끔 말야."


그런 연우를 바라보며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 여기에 들어 있던 그자식과의 그 날들, 때로는 그자식의 말들이 문득 떠오를때 그시간도 같이 사라져. 그리고"


나는 연우를 다시 돌려 올려다 보며 말했다.


" 내 시간은 48시간 연우와의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 째각째각."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와 마주하며 그의 등뒤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제는 연우와 함께한 시간으로 되돌릴 수 없이 채워져 버린 나의 과거 기억이 저렇게 하늘 높이 날아가버린 것을 바라보며. 더이상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고 기억조차 지워져 버린 재우의 얼굴과 내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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