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빠 진정해. 그냥 진짜 마음 편하게 먹고 그냥 가서, 가~~ 마~안히 앉았다가 인사하고 그러고 바로 내가 신호보내면 나가면 돼 알았지?"
" 으응. 흠. 어흠. 아아아~~ 나 물 좀. "
" 여기. 자. 천천히 마셔. "
" 아~~ 아~~ 어흠."
연우는 연신 목을 풀고 입을 풀고 난리도 아니다.
" 도착했네. 가자."
" 자 잠시만. 아 심장 터질 거 같아. 후~~"
나는 순간 그런 연우가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그가 내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처음이기도 했고 저렇게 설레는지 걱정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음...
" 쪽 ~~ 가자. 늦었어. "
어떤 백 마디 말보다 그저 응원의 그 입맞춤이면 되는 것들. 귀여운 연우에게 볼에 입을 맞췄다.
차가 멈추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모네 첫딸의 결혼식. 본의 아니게 집안 어른들께 공식적인 데뷔 무대이자 아직 우리 집 상견례조차 하지 않은 자리다 보니 더 긴장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 어머 연수야. 결혼 축하해. 오늘 너무 이쁘다. 최고야. "
" 어머 천사가 따로 없다. 완전 드레스 멋지다."
신부대기실에서 하객들은 저마다 예쁜 신부에게 칭찬 일색이었다.
잠깐 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축하를 받는 신부의 모습이 부러웠던 것.
하지만 정작 부러운 것은 그녀의 하얀 드레스며 화려한 식장이 아닌 오늘로 누군가의 평생 반려자가 된다는 그 사실이 나는 더 가슴 설레고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곱게 차려입은 탑 드레스가 너무나 어울리는 어깨선을 지닌 연수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 어머 미소야. 진짜 오랜만이야. 이렇게 와줘서 너무 고마워. 옆에는 누구?"
" 축하해요. 연수언니. 진짜 언니 진짜 잘 살아야 해요. 행복할 거야. 부럽다. "
" 어머 미소야 고마워. 근데 옆에는 누구?"
" 아 안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저는 정연우라고 미소씨..."
연우가 인사를 하려는데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는
" 연수언니. 준비 잘해 나 내려가 있을게. 식장에서 봐요."
질질 끌려 나오며 연우는 연신 뚱해 보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는
" 오빠 너무 긴장하지 마요. 일일이 다 인사 안 해도 돼요. 파이팅!"
" 아니 난 그게 아니라 인사라도 제대로 해야지. 앞으로 자주 볼 사인데."
" 왜? 난 관심 없어. 자주 볼 사이 아니야.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 바쁜 서울 하늘아래 얼굴볼 새가 어딨어. 내가 서울에 와서도 제대로 밥 한번 못먹어 봤는데. 어렸을 때 말고는. 겨우 결혼식에서 본사이에. 뭐. 얼마나 자주 볼 거라고."
" 야. 그래도 사람이 그럼 안되지. 암.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그때, 어머니 외가 친척분 중에 누군가
" 어머 미소야. 이렇게 많이 변했네. 이제 아가씨가 다되었네. 너 시집가야 되겠어."
인사를 하시며 나를 불러 세웠다. 아 외숙모시구나.
" 아 숙모 잘 지냈어요? 요즘 외삼촌 건강은 어떠세요?"
" 그 사람이야. 늘 그렇지. 안 그래도 병원에..."
내가 말하려고 할때 때마침 이모도 다가와 반갑게 내게 인사를 건네셨다.
" 어머 이게 누구야. 잘 지냈어? 미소야?"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그때
" 미소 왔어? 안녕하세요. 숙모. 이모. 그동안 별일 없으셨어요? 오랜만에 너무 반가워요. 헤헤."
언니였다. 밀려드는 친척들 인사에 당황하며 내가 뒷걸음질 칠 때 언니가 어디선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친척분들의 관심을 돌리며 언니는 내게,
" 미소야. 너 저기 누가 너 찾던데 가봐야 하지 않아? 그렇지? 어서 가봐. "
나는 큰언니 곁에 다가가
" 언니 고마워. "
그러자 언니가 내게 윙크를 하며 턱으로 방향을 가리켰고, 어느새 새신랑 곁에 마치 하객인지 신랑 친구인지 표도 안 나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어깨를 쫙 펴고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연우가 보였다.
'후훗. 누가 보면 연우가 신랑이라도 되는지 알겠다. 이제 손잡고 튀어야지.'
그렇게 연우에게 몰래 다가가는 순간.
" 자네가 요즘 우리 미소랑 만난다는 사람인가?"
"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내가 놀라서 달려가 연우를 등뒤로 가린 채.
" 아 아빠. 언제 오셨어요? 전화 주시지. 마중 나갔을 텐데."
" 뭐 하러. 너 바쁜데. 안 그래도 연락도 잘 안 하면서."
" 아 아. 그게... 그러니까 엄마는요?"
" 아 네 엄마 저기 이모분들이랑 이야기하고 계시네. 아이고 내 정신 좀 잠시만. "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하시다 말고는 신부 측으로 가서 축의금을 접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계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쪽을 보시더니 손을 들어 까딱까딱 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갑자기 나를 의미하는지 알고 후다닥 달려가는데, 내 등뒤에서
" 네! 저 부르시는 겁니까?"
연우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 그래. 거기 자네 이리 와 보게. "
아직 아버지께 인사도 안 드렸고 그러기에는 내가 연우와 거리도 있어서 둘이 붙어 있지도 않았는데. 본 거라고는 좀 전에 잠시 마주쳐 인사하려던 정도인데... 어떻게 하지?
연우가 다가가자 아버지께서
" 자네는 우리 미소와 어떤 관계 인가?"
헉. 이 많은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남의 결혼식장에서 밑도 끝도 없이 아버지께서 처음 보는 연우에게 하시는 질문이... 나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막 달려가니,
" 나이도 어리지 않아 보이는데 뭐 연애만 할 것같으면 다음에는 이런 자리 굳이 안 와도 되네."
그렇게 말씀하시며 휙 돌아서 식장으로 들어가시려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좌절했다. 아 아침 내 긴장해서 목을 풀고 그렇게 떨려하던 연우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연우를 아버지께 진작 소개해드리지 못한 게 또 너무 후회도 되었지만 고작 연우를 소개하기에는 우리의 연얘기간은 아직... 1년도 안되었는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무수히 지나가며 나를 온통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 타이밍에 식장 앞 그 넓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소리.
" 안녕하십니까.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장인어른. 정연우라고 합니다. 미소는 제가... 흡"
나는 기어이 달려가 그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그를 끌고 질질 식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우... 오빠 더 아무 말도 말고 그냥 차로 가요. 어서."
연우는 연신 투 댈 댔다.
" 아니 기껏 장인어른 앞에서 용기 내 말하는데 말이야.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 체면도 안 서게 모양 빠지게 그렇게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끌고 나오면 어떻게 해. 어른들이 얼마나 당황하셨겠어. 그렇다고 소개를 시켜주기를 하나 인사하는 사람들 오면 뚝 떨어져 근처도 못 오게 하고 말이야. "
나는 되려 화를 냈다.
" 오빠! 우리 만난 지 고작 1년도 안되었는데 어떻게 부모님께도 소개 안 시켜 드렸는데 친척분들께 오빠를 뭐라고 소개해 드려?"
" 왜! 내 남자친구입니다. 얼마나 좋아. 떳떳하게. 우리가 불륜커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응? 아버님 말씀대로 그냥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 그게 뭐든 우리가 겨우 1년도 안된 커플이 6년도 만나다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거 다 아는 친척들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라고. "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 아까 봤잖아. 그리고 들었잖아. 아버지 말씀. 꼭 오늘 같이 그때도 친척들 결혼식장에서 인사드렸는데 다른 사람한테 시집갔다고. 그 연수언니가."
나는 너무 화도 나고 왜 내가 민망한지 모르겠지만 미친 듯 민망해서 말을 더 못 하겠는데
연우는 아주 가소롭다는 듯
" 칫 난 또 뭐라고. 겨우 그 정도 만나거 가지고 뭘 얼마나 만났다고는. 뭐 얼마 만나지도 않았구먼. "
" 오빠 자그마치 6년이야. 다들 결혼할 줄 알았고 그때 결혼식장에서 그렇게 인사해서..."
" 뭐. 우리보다 훨씬 만난 지 짧구먼. "
" 뭐가 짧아 우린 고작해야 1년도 안된 커플인데? 어디다 비교야?"
" 넌 역시 숫자에 약해. 풉."
" 뭐라는 거야? "
나는 의문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 풉. 풉. 크하하하하 "
" 으응?"
" 잘 생각해 봐. 우리가 만난 지가 뭐가 고작 1년도 안 되냐?"
" 오빠가 잘못 알고 있는 거지. 8월이 되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
" 야 8월이면 응? 우리 한참이야. 너 기억나? 작년에 너 8월에 도서관!"
" 도서관? 응? 칫. 여기서 이 타이밍에 도서관이 왜?"
" 이 바보 멍청이야. 그날이 우리 만난 지 3000일이었어. 내가 그날만 생각해도 아직도 이가 갈려. "
" 응? 이건 뭐 뚱딴지같은 소리야?"
" 휴~~ 우.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말이야. 어떤 양아치 같은 놈이 나타나 너를 낚아 채서는 이벤트를 망쳐 놓지 않나. 경윤이가 연락 와서 아주 대 놓고 공작질을 하지를 않나. "
" 그날이 우리가 만난 지 3000일 째였어?"
그는 내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 그래. 이 멍청이야. 우리가 니 20살 때 만나고 그날이 3000일째인데 그 기쁜 날에 말이야. 응? 고작 복수했다고 그렇게 기뻐하고... 암튼 내가 그날 예약한 레스토랑에 이벤트 다 취소 급히 시키고 미치는 줄 알았다고. "
아. 난 미처 몰랐다.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근데 그때는 오빠랑 사귀는 것도 아니었는데?
" 오빠 근데 그때는 우리 사귀지도 않았었잖아?"
" 뭐 그게 뭐가 중요한데 난 계속 너 하나만 바라봤는데...?"
" 거짓말. 나 20살 이후로도 오빠는 여자 친구도 있었잖아?"
" 그러는 넌 너도 남자 친구새끼 있었잖아?"
" 아이참. 에잇."
나는 잔뜩 뿔이 나서 딱 내 말투를 흉내 내며 그렇게 마구 쏟아 붙는 연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입으로. 그러자,
" 야... 그래서 응? 내가... 잘하려고... 응?"
" 아냐. 오빠 내가 그런 줄 모르고 있어서 미안해. 나 오빠 말대로 진짜 바보였나 봐. "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아 너는 왜 나만 보면 바보처럼 우냐. 미안하게. "
그러며 연우가 내 볼의 눈물을 닦으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 전화.
' 아 이건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찰나, 갑자기 연우가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내 전화를
" 예. 장인어른. 저 정연우입니다. 아까는 그렇게 나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아직 있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그리로 찾아뵙겠습니다. "
" 아버지 셔? 아 근데 왜 오빠가 전화를 받아?" 뭐라셔?"
" 응 그리로 오래. 너 데리고. 당장."
" 응? 그리가 어딘데?"
그러자 그는 내게 화면은 보여줬다. 문자에는 00 갈빗집.
차를 타고 가는 내도록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혼자 초초히 손톱을 깨물고 있었는지 나도 몰랐다.
" 그만 물어뜯어. 손톱 맛없어. 왜 안 하던 버릇까지 나와."
운전하며 연신 내 눈치를 살피던 연우는 기어이 내 입에서 손가락을 빼서는 그렇게 손을 잡고 웃으며 운전을 했다.
" 아 그게 아니고 이대로 가서 뭘 어쩌려고 그래?"
" 뭘 어쩌긴. 장인어른께서 고기 사주신다는데 가서 갈비나 실컷 얻어먹어야지. 히히."
" 미쳐. 내가. 오빠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해 진거야?"
" 나? 원래 내가 좀 뻔대잖아. 몰랐어?"
갈빗집에 도착하자 이미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자리를 잡고 계셨고 옆에는 언니들과 남동생까지 와 있었다.
" 휴우... 이런 자리는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잡아도 되잖아요. 아빠. "
내 태도가 못마땅한 듯 어머니는 나를 나무라셨다. 그리고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연우에게
" 너는 아버지께 말버릇이 그게 뭐니? 앉아요. 정서방. "
" 안녕하세요. 장모님 인사 늦어 죄송합니다."
" 멀리 있으니 그럴 수 있죠. 자 편하게 앉아요. 너도 어서 앉으려므나. 미소야."
" 언니 전화라도 좀 주지. 그랬어?"
" 네가 전화를 안 받는데 응? 전화라도 좀 받지. "
" 매형. 잘 지내셨죠?"
나만 빼고 다들 화기 애애한 자리. 연우는 언제 본 사람인지 표도 나지 않게 그렇게 그 자리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근황을 물으며 어울렸다.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그저 밑반찬으로 나온 찬거리와 연이어 나온 소고기를 몇 젓가락 드시고는 물끄러미 우리 테이블에 놓인 반찬을 쳐다보시고 가족들을 한 번씩 둘러보셨다.
" 자네도 들게나. 뭐 좋아할지 몰라서 우선 자네 오면 바로 먹게 내가 소고기 시켜뒀는데 보아하니 미소가 영 잘 못해 먹이는구나. 많이 들게. "
" 아버지 저희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심 곤란해요. 제가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들어갔다가 하던 말이 툭 하고 내뱉어진 그 순간.
" 아하하하하. 아버님. 미소가 아주 잘 먹이고 있는데 제가 진짜 많이 움직여서요. 좀체 살이 잘 안 붙습니다."
" 그래. 그렇지. 서울에서 돈 벌며 살아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
" 그래 자네는 직업은 있고?"
" 네 저..."
아버지께서는 연우가 '네'라고 대답을 하자 채 말도 하기 전에 말을 끊으셨다.
" 그럼 되었고, 집은 있나?"
" 아네. 집 있습니다. 그 제가 사는 자취방...."
" 그것도 그럼 되었네. 그럼 뭐 더 안 물어봐도 알아서 하겠지. "
" 어머 당신은 사람이 말을 하는데 자꾸 끊고 그래요. "
어머니께서 당황해하는 연우를 보며 말하자 아버지께서 그런 어머니 말씀을 또 막으셨다.
"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봐요. 하던 말 마저 하게. "
그리고 천천히 말씀을 이어가셨다.
" 내가 이 사람..."
그렇게 뜸을 들이시고 어머니 손을 잡으셨다.
" 내가 이 사람 우리 집에 데려 올 때 나는 고작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거든. 그래서 이날 이때껏 고생만 시키고 변변히 선물하나 제대로 못하고 살았어. 시어른 모시고 애들 뒷바라지에 박봉인 나 뒤치닥 거리 한다고 말은 안 해도 이 사람 엄청 화도 나고 원망도 많이 했을 거야. 그런데 자네."
" 자네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아까 자네가 식장에서 그러고 나가는데 여느 때 같으면 괘씸도 하고 어른들 앞에서 제대로 여자 하나 못 이겨서 저렇게 못난 짓을 할까 생각이 들었을 텐데 근데 말이야. "
" 내가 딸을 둘이나 시집보내고 나니. 그렇더라고. 살아보면 뭐가 더 필요하겠나.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을 맞추고 사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네를 끌고 나가는 그 딸자식이 이 세월을 살아보니 딱 나야. 내 성격이더라고. 미안하이. 딸 교육을 제대로 내가 못 시켰어. 자 한잔 들게."
" 아 네. 장인어른. "
연우는 잔뜩 긴장한 채 잔을 받아 마셨다.
" 근데 또 생각해 보니 저렇게 막무가내인 내 딸이 더 소란 피기 전에 그래도 얌전히 끌려가는 자네가 내 기특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가 데려갈까 고민도 많이 되었는데... 오늘 여기 이 자리에 그렇게 잘 어울려 주니 참 고맙고 고기도 반찬도 그렇게 열심히 잘 먹는 거 보니 음식도 안 가리는 것 같고 뭐. 직장 있고 월세방이면 어떻나. 그렇게 잘 맞춰 시작하는 게 젊음이지. 이렇게 어려운 자린데 선뜻 마다도 않고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한잔을 권하셨고 연우는 목례를 하며 연신 아버지께 잔을 올리고 또 잔을 받아 마셨다.
" 자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자네가 하자는 대로 할 테니. 저 애물단지만 자네가 좀 책임져 주게. "
" 네 장인어른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아빠... "
" 미소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책임지고 먹여 살리겠습니다. 장인어른 걱정 안 되도록..."
" 암 그래야지. 잘하겠지. 뭐든 싹싹하게 잘 해내는 사람인 듯 하니. 밥만 안 굶기면 되네. 저게 저래 봬도 밥을 안 먹으면 나처럼 성격이 지랄 맛아서 말이야. 어서 들게. "
" 어머 당신은 그래도... 자네도 너무 고생이 많아. 긴장된 자리일 텐데... 이이가 조금 고지식한 부분이 없잖아 있어서 말을 다 안 듣고 자꾸 끊어 미안해요. 저 어서 들어요. "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머니께서는 다정히 연우의 밥 위에 금방 구운 고기를 올려주셨다. 연우는 한입 고기를 입안 가득 담고는 그렇게 열심히 먹었다. 그러자,
" 그래 자네는 무슨 일..."
" 어허 당신은 밥 먹는데 그런 거는 묻지 말아. 알아서 무슨 일이든 해서 먹여 살리겠지. 뭐 별거 다 걱정하고 그래. "
" 어서 들어요. 내가 초면에 실례를 했구려. "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연우는 네네를 연신 말하며 열심히 밥 2 공기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식사자리에서 인사를 하고 그렇게 자리에서 나왔다.
" 와. 체한 거 같아. "
" 아. 오빠 진짜 미안해. 어떻게 잠시만."
나는 약국에 들러 소화제와 활명수를 사서 그에게 건넸다.
" 끄~~ 억. 이제야 좀 소화가 되네. 아 차 마시자는 데 넌 왜 기어이 끌고 나와. 차라도 마셨으면 소화되었을 건데. 이야기도 좀 더 나누고 얼굴도 좀 뵙고. 너도 오랜만에 뵙는데 말이야. "
" 아 그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는데 어떻게 해. 아까 오빠도 봤잖아. 어디 우리가 입이라도 열려고 하면 말이야. 다 말문 막아놓고 아무 말도 못 하게 자르시고. 항상 그래 오셨는데."
" 그거야 하실 말씀이 너무 많으니 그렇지. 걱정도 앞서고 어른들 말씀 중이니 들어드리는 건 당연한 거고. 그래도 아버님께서 별달리 다른 것도 안 물어보시고 직업도, 나이도, 하물며 재산하나 안 물어보셔서 나 너무 놀랐어. "
" 왜? 고작 나를 그냥 직장 다니고 나 안 굶기고 응? 월세 산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방만 있음 되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덜컥 맡기셔서?"
"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야. 넌 그렇게 부모님 마음을 몰라?"
" 칫. 뭐가. 집 있다고 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게 월세인지 전세인지 관심도 안 가지고 바로 시집이나 보내려 하시고 마치 똥차 된 것처럼 말이야. 얼른 시집이나 보내려 하시는데..."
" 히야. 다 컸다 생각했는데. 아휴. "
" 아까 말씀하셨잖아. 두 분이 살아보니 서로 맞춰 살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서로 성격 알고 응? 아껴주고 같이 머물 공간이 있음 되는 거다. 그러니 네가 잘 맞춰주고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 언제? 칫. 언제 그랬냐고?"
" 와 환장하겠네. 같이 앉아 있었는데 넌 뭘 들었냐? 그러니 부모님 속을 그리 모르지. 어이구. 이 애기야."
그렇게 말하며 연우는 연신 내 머리를 콩 쥐어 박았다.
" 아. 말이야. 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너 진짜 잘 골라서 잘 투자한 거 같아. 현명한 선택이었어."
그러며 토라져 있는 내 볼에 뽀뽀를 했다.
" 봐. 다른 어른들은 그런 자리면 제일 먼저 부모님이 무얼 하시는지. 내 딸 맡아서 먹여 살릴 직업은 있는지 재산은 좀 있는지 그런 거부터 물어보시거든? 근데 니네 집은 아니잖아. 너랑 나랑 사이가 좋은지. 그리고 같이 잘 시작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먼저 물어보셨어. "
" 하물며 내가 뭐하는지 묻지도 않고 내행동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하시고 그러고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시잖아. 역시 난 분이셔. 사람 볼 줄 아시네. 장인어른. 멋진 분이셔. 암."
" 뭐야. 결론은 오빠 잘 낫다는 말?"
" 당연하지. 그러니 진흙 속에서 너를 찾아내지. 내 건 줄 알아보고."
" 쪽"
그런 연우를 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어려운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또 그 자리에서 그냥 그렇게 우리 가족을 신뢰하며 흡족해하다니.
딸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어서 늘 미안해하시는 부모님이시고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을 알아서 나는 스스로 알바며 대학등록금이며 알아서 그렇게 미친 듯 일에 공부에 빠져서 살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래서 더 그렇게 집안일이며 다른 이야기는 내게 안 하시고 그저 안부만 물어보시고 전화를 짧게 끊으셨는지 모르겠다.
" 아 아무리 생각해도 참 기특해. 기특하단 말이야 이 자식."
연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자,
" 아 왜 이래. 이래 봬도 내가 응? 오늘 장인어른한테 응? 한방에 ok 얻어낸 그런 난 놈이라고 내가. 으흐흐"
그러고 보니 그도 그랬다. 아버지도 보통 깐깐한 분은 아니셨다. 매일 아침마다 다른 와이셔츠에 양복에 칼 주름을 새워 입고 나가시고 술이라고는 담배라고는 입에도 안대는 분이신데. 그런 아버지께서 도대체 뭘 보고 연우를 한 번에 그렇게 좋게 보셨는지 나는 궁금하기도 하였다.
연우와 헤어져 집으로 향하며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 잘 들어가셨어요? "
" 응 지금 내려가고 있다. 니어머니는 주무셔. "
" 언니집에서 안 주무시고 그냥 가세요? "
" 뭐 하러. 자기들도 지네 삶이 있는데 폐만 되지. 얼굴 봤으면 되었고. 잠은 어제 거기서 자서 아침까지 얻어먹었으니 충분하다. 그거면. 그래 연우 군은 잘 들어갔고?"
" 네. 안 그래도 미리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 죄송해요. "
" 흐음. 이제야 내 딸 같구나. 너도 그 힘든 서울에서 잘 지내는 거 같아 이제야 안심이구나. "
" 저야 잘 지내왔죠. 자주 못 찾아 봬서 죄송해요. 진짜. 너무 미안해요. 아빠."
" 후훗. 우리 막내딸 많이 보고 싶었는데 이리 보니 되었다. 그동안 잘 못해줘서 참 미안했는데 그래도 연우군 보니 영 안심이 되네. 잘 지내고 다음에 통화하자. 뚝."
역시 아버지시다. 항상 하실 말씀만 딱 하고 내가 눈물바다가 터지기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신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또 한참을 울었고 곁에 있던 희경이 어느새 다가와 그런 나를 끌어안았다.
" 이제 알았냐? 너 이 언니 덕분에 이제껏 이리 잘 버텨낸걸? 난 진작에 알았는데 네가 곁에 있어서 내가 가족보다 더한 네가 있어서 참 좋았는데 이 년. 넌 좀 맞아야 해. "
결혼을 하고 얼마나 서로를 알게 되면 그렇게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견뎌내고 버텨지는 게 가능할까.
때로는 말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어쩌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도 있을 텐데. 얼마나 속속들이 서로를 깊게 사랑하고 이해하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부모보다 더 길게 같이 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께 언젠가 화가 나서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살 거라고 그렇게 악을 쓰며 소리쳤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적어도 삼촌일이 있었던 그때 이후로는 우리 자매들 앞에서 남동생 앞에서 그렇게 소리를 내며 화를 내시거나 싸우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다. 두 분이서 이야기를 하시고 때로는 산책을 다녀오시고는 그렇게 일이 생길 때마다 두 분은 동네를 걸으러 나가셨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모습조차 왠지 위선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고 때로는 나가서 고함지르고 싸우기라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속이 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때마다 소리가 나와야 할 타이밍이면 휴우 하며 한숨을 쉬고 말을 멈추시거나 때로는 그렇게 미칠 듯 화가 나는 순간을 넘어가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시며 재치 있게 그 순간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셨다. 그것도 해안을 찾아 어느새 결론이 나서 말이다.
살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어떤 일들이 들이닥쳐 힘든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두 분을 오랜만에 이렇게 뵈니 참으로 어려운 자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두 분의 그 삶을 그렇게 새롭게 들여다본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