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7 02화

7-2. 우리의 존재

by moonrightsea

그렇게 차에 오른 우리는 연우의 집을 들어서며 미친 듯 서로를 갈구했다.


나에게 연우는 세상에 하나여야 했고 단지 나만 바라봐야헸고 나밖에 안 보여야 했다.


그래서 그가 그저 일상적으로 대하는 모습의 사람이 아닌 나를 자극하는 사람과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성을 잃고 아무것도 눈에 안 보일 만큼 어느새 그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각인이 되어 나를 쓰다듬는 손하나하나 내 몸을 타고 흐르는 그의 땀방울 하나하나까지 내 것이고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져 나는 그를 불같이 탐하였다.


그저 사소하리 만큼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이야기만 나누면 금방 풀릴 일들인데도 도무지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어떤 변명도 눈앞을 못 가릴 만큼 그는 내게 탐이 나는 존재였다.


그와의 뜨거웠던 몸부림은 어느새 나를 차츰 제정신으로 돌려놓았다. 무엇인가 빠져 버린 내 정신에 마치 숨이라도 불어넣듯.


연우는 곁에 누운 나를 물끄러미 그렇게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 미소야"

" 응?"


" 기억나? 내가 한강둔치에서 그때 네게 했던 말... "




" 너는 사람에게 빠져들면 정말 앞뒤 안 가리고 네가 상처 입어도 못 보고 그렇게 미친 듯 빠져든다고. 난 늘 그게 걱정이면서도 혹여 네가 그로 인해 어떤 시련을 겪을까 봐 그게 너무 걱정되었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내게 더 올려주었다. 그러며 말을 이어갔다.


"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내심 그렇게 네가 미친 듯 몰두하고 빠져드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왔었어. 그래서 출구조차 못 찾았으면 좋겠다고. "


그렇게 말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연우를 돌려 나는 그 위에 올라앉았다.


" 그거라면 오빠가 성공한 거 같아요. 인정할게. 오늘 정말 난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들 뿐이었거든."

나는 쓰러지듯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쿵쿵쿵

연우의 심장소리. 그런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려 쓸어내렸다.


" 말도 안 되게 같이 있던 사람들 말이 귀에 안 들리고 분명 이성적으로 이러면 안 되고 좀 더 냉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보다 눈치 있게 센스 있게 상황을 살피고 오빠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어 오빠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내게 설명하길 기다리면 되는데... 그렇다고 오빠가 말을 안 해줄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난 왜 그저 당신을 잃을까 봐 "

" 그 불안에 미친 듯 아무것도 아무 말도 안 들렸는지 모르겠어. 말이 안 되게 말이야. 당신이 다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를 안 챙긴 것도 아닌데... 어쩌면 타이밍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예상치 못하게 제때 전달이 안되고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매우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휴우."




연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목을 타고 내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


" 그건 믿음이 부족하기보다는 너무 믿고 신뢰해서 정말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 버린 걸지도 몰라."


" 그래서 어떤 때는 미칠 듯 숨이 안 쉬어지는데 그 숨을 참으며 키스를 하고 싶고 어떤 때는 너무 강렬히 원해서 더 강하게 갈구하고 마치 상대도 원하는 것처럼 말이야. "


"그 마음의 정도는 본인 밖에 모르는 데 정작 상대편 마음도 내 마음 같으리라 착각하게 만들거든. 때로는 그게 안되면 상대의 마음조차 그런 내 마음과 같아지길 원하고 강요도 하고...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어떤 것들. "


그렇게 말하며 연우는 내게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그러며 그의 얼굴 위에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을 응시하며 바라보고는 다시 내 얼굴을 당겨 그의 볼에 눕혔다.


" 사랑은 가끔 종교처럼 사람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인정받게 하고 때로는 종교보다 더한 존재로 구원하기도 하거든. 미처 깨닫지 못한 아주 사소한 것들 아니 매우 중요한 것들. "


" 그 모든 것을 일순간에 깨닫게 만들기도 하고 아주 천천히 알려주기도 하니까. 너를 그때 내가 강원도 부모님 댁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혀 모를 세상일들 그저 남들일 들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


" 나는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마치 너는 작정이라도 한 듯 바닥에 와장창 집어던지는 그런 이상한 마력을 지녔더라고.


" 덕분에 나는 개념을 다시 세우고 나 스스로에게 다시 묻고 또 묻고 그렇게 되더라고. 진짜 내가 아는 게 맞는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


" 사람들은 가끔 착각하기도 해요. 잘 안다고. "




나는 천천히 그에게 기대어 크게 숨을 들이 마쉰 뒤 천천히 그렇게 또 내쉬었다.


" 다 안다고 생각하고 편견을 가지고 마치 무 자르듯 그렇게 정해진 틀로 잘라낸 뒤에 그리고 판단을 하기도 하죠. 오늘 나처럼. 훗. 철썩 같이 믿으며 스스로를 의심조차 하지 않으니까. 내가 봐온 것 내가 들어온 것 내가 경험한 그 모든 것들을 동원해 나 스스로에게 용기와 응원을 줬으니까. "


" 믿음에게 나 스스로 가 바라보는 존재에게 그렇게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렇게 믿음을 심어주니까. 그것만으로도 해서는 안될 용기, 가려서는 안 될 진실을 가리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 정작 어떤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내가 알던 일들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도 그 믿음을 벗어나기 쉽지 않더라고요. 더구나 상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생각했는데도 정작 하나도 제대로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상대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상대가 전혀 모르기도 하는데도 이미 그 상대는 온몸으로 말, 행동, 눈빛 그 모든 걸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반대라는 걸 증명하기도 하니까. "


" 그래서 경험해 봐야 하고 더 느껴봐야 하고 시간이 지나야 하는 것이 있는데... 정작 그 순간이어야 하는 것들도 있으니까. "


나는 그에게 다시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러며 옆으로 스르르 내려와서 천장을 보고 누었다.




" 그릇은 바닥에 떨어지면 깨어져 버리고 때로는 오래 쓰면 낡고 때로는 쓰다 보면 부딪혀서 깨져 새로 사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릇은 어떤 것을 담기 위한 존재기에 그릇이고 그걸 담으려면 결국 금이 가거나 깨지면 안 되기에 사람들이 바꾸는 거죠.


그래서 그걸 바꾸지 않기 위해 좋은 것도 사고 때로는 튼튼한 것 자신이 바라는 질리지 않는 것도 고르고 그렇게 딱 자신이 가장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족해 줄 수 있는 그런 것을 골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게 그릇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거죠.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으니까. "


" 살아가다 보면 시간도 걸리고 어쩌면 취향이라는 것도 바뀌니까. 하지만 그릇은 그 가치는 변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언제든 찾아가 그 사람의 그릇이 되어주고 다시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 그릇이 되어주죠. 그 사람이 원하는 건 그릇이니까. "


" 그래서 그릇인 거죠. 그래서 난 오빠에게 그런 그릇 같은 존재가 되어 싶었어요. 가끔 추억하다 꺼내도 질리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어주고 언제나 든든히 곁을 지키며 찾으면 항상 그 자리에 언제든지 있는 존재. 근데 그 그릇이 제게는 오빠였어요. "


" 크핫"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머리 위에 올리고는 그렇게 웃었다.


" 왜.. 그래요?"




" 난 사실 니 얘기를 들으며 네가 그릇 갔다고 생각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나에게 넌 물이었어.

"


" 있는 듯 없는 듯 표도 나지 않게 스며 들어서는 어느 순간 내 숨이 넘어 가려할 때 그렇게 내가 벌컥벌컥 들이켜게 다가왔다가 또 어느 순간 보면 암전하게 내 품에 잘 안겨 들거든."


" 내 말에 내가 지시하는 일들에 순순히 수긍도 잘하고 그렇게 물 흐르듯 잘 스며들다가 어느 순간 넘쳐서 쏟아져서 일순간 사라져 버려서 내가 애타게 찾게 만들고 또 그래서 적당히 채워서 이제 만족하려 하면 어느 순간 내 그릇이 작게 느껴질 만큼 불어나 있어. 이렇게."


그러며 연우는 팔을 들어 내 머리를 들고는 팔베개를 해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래서 난 늘 욕심을 내서 그릇을 키우고 그러려고 궁리도 하고 그래서 잔뜩 키워 놓으면 어느새 물이 훅 줄어들어 버려서 그 큰 그릇으로는 네 존재조차 찾을 수없어서 너를 보려면 그릇을 줄여야 하고 내가 숨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갈증도 나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말이야. "


"무엇 하나 계획대로도 안되고 마음이든 생각이든 수시로 바뀌고 형체도 찾을 수 없어서 어떤 게 진짜 네 모습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없게 만들어서 어떤 모양의 그릇이 되어야 할지 늘쌍 고민하게 만들거든. 네가."


" 흐음. "

나는 한숨을 쉬며 옆으로 돌아 누워 그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도 내 인기척에 옆으로 나와 눈을 맞추며 돌아누었다.


" 그건 서로가 너무 달라서 그랬겠죠?"

" 아니. 그건 서로가 너무 닮아서 그럴지도?"




그는 나를 끌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 넌 원래 그런 그릇 같은 존재였지. 항상 누군가 곁에서 묵묵히 들어주고 그걸 받아주던 존재. 그런 네 그릇을 채우고 싶은 존재였던 나를 만나 어느새 너를 담고 싶은 존재. "


"그 존재로 점점 변해가며 서로 닮아가고 또 채워가는 존재가 되어가는 거지. 그러니 어제일은 너무 실망하지 마. 내 머릿속에 네가 보여준 어제 네 눈빛을 새롭게 입력했으니까. 푸훕."


" 응? 그 눈은 잊어버려요. 그런 눈 다시는 되고 싶지 않아."

" 음. 매력적이던데? 되려? 근데 어쩌나. 다시 보고 싶지는 나도 않아. 그 이후를 아니까. "


" 응? "

" 네가 이미 다 예전에 보여줬잖아. 그 이후가 어떻게 되는지. 내게."


" 하아.. 오빠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안 되겠어. 제거되어야 겠어."

그의 품에서 나와 그를 끌어안고 마구 흔들자 그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힘이 빠진 나는 풀썩 쓰러지자,

" 이리 와."


그는 연신 내 등을 쓸어내리며 다독여 주었다.


" 하아. 나 잘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이렇게 어렵기만 한데."

" 뭐든 잘할 거야. 지금도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고. 많이 성장해 왔으니까."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는지 또 어떤 존재이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수많은 인연 중에 우리가 만나고 스치는 인연들 중에 의미가 있든 없든 그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때로는 가치 있었음에도 스스로 본인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지나야 보이는 인연.

때로는 그 순간이어야 보이는 인연들이 어느순간 다가와 그 존재를 드러면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마 서로가 알지 못하던 어느 과거의, 때로는 어떤 미래의, 현재의 공간에서 숨쉬는 순간에서 이미 그 가치를 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스치듯 지나친 인연도 쉬 놓지 못하고 알게된 인연도 마음에 깊이 담은 채 항상 언제든 그들이 원하면 언제든 달려가 그들이 원하는 모습의 그릇이 되어 그들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존재.


나는 그런 존재이고 싶고 그런 그릇이고 싶었다.


그저 스치듯 잠시 지나쳐 지금은 분리수거되거나 어디있는지도 모를 추억의 끝자락에서라도 못찾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게 그들에게 나의 존재라 할 지라도 그것 또한 나의 그릇이기에 우리의 인연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로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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