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1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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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늘 아래 그녀

빛이 보이지 않는 이유

by moonrightsea Jul 30. 2023

  며칠째 학교에도 화실에도 보이지 않던 희경이 왔다는 재민샘의 말에 나는 바로 비상구로 향했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길게 연기를 내뱉던 그녀는 나를 보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 괜찮은 거야? 무슨 일 있었어?"

" 훗.  "

나는 말없이 그녀의 뒤로 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희경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 희경아..."

그러자 그녀는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 갑자기 막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당황한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 들어가자. "


희경과 함께 화실로 들어서자 재민샘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희경의 등을 다독였다. 그러자 희경이

" 어머 선생님~~ 이렇게 하심 애들이 저 질투해요. 저 좋아하시는 거 아니죠? 이쁜 건 알아가지고."


희경의 말에 이내 심각했던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린 재민샘은

" 희경아. 끝나면 샘이랑 상담 좀 하자. "


재민샘이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다시 화실 가운데로 가서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한참을 희경을 기다린 후 나는 버스도 타지 않고 그냥 아무 말 없이 터널 터널 걷고 있는 희경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노란빛의 가로등 불빛은 길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어둑한 주변으로 이어지며 텅 빈 공터와 도로를 그렇게 환하게 분리해 놨지만 어두운 희경의 마음에는 닿지 않았는지 희경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느새 희경의 집이 가까워져 오자 그제야 희경은 휙 하고 뒤돌아서 내게 다가오더니


" 저 집구석 너 아니었으면 여기까지도 안 왔을 텐데. 내가 너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 "

" 집에서 잘 거지?"


" 왜 안 물어봐?"

희경은 내게 물었다.


" 네가 마음 괜찮아지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희경아. 응? 알지?"

" 아냐. 모르겠어. 이대로 들어가도 될지."

" 아냐. 들어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건. 넌 아직 학생이니까. 집에서 잠은 자야지. "


내가 그렇게 말하자 희경이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 오늘 너네 집에서 자면 안 돼?"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웬일인지 흔쾌히 데려오라고 말하셨다. 

" 가자. "


" 너네 집에 말 안 해도 진짜 괜찮겠어? 내가 어머니께 전화드릴게. 전화기 줘봐. "

희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경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최대한 공손히. 그러자 어머니는 내게

" 미안해. 미소야. 이런 집안사정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지만. 희경이 좀 부탁해. "




우리는 그렇게 다시 길을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는데 희경이 나를 휙 돌아보더니 이내 내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 생각해 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지. 뭐. "


" 뭐가?"

그러자 희경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 이제야 궁금증이 생긴 거야?"

가로등 불빛에 희경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왠지 모를 불길함에 나는 몸서리쳤다.

" 뭐가... 잘된 일이란 거야?"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휙 돌아서더니

" 그 미친년이... 죽어 버렸어.  아무 말도 없이. "


나는 놀라서 순간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멈춰 섰다. 


그러자 이내 희경이 뒤돌아 봤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씩 웃으며 다가와 다시 팔짱을 끼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이끌었다. 그러며 바닥을 보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 난 궁금하지 않았어. 밤마다 그년 방에 그 미친놈이 드나들며 무슨 짓을 하는지. 그리고 그 년이 죽겠다고 미친 짓을 해대며 집을 나가도 별로. 그 집 인간들이 애초에 우리 집에 들어온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거든."

 


멀리서 보이는 가로등 아래 어머니가 서 계셨다. 

" 엄마. 왜 나와 있어요."

" 다 큰 딸내미 둘이나 이렇게 늦게 안 들어오는데 걱정이 안 되니?"

어머니를 본 희경이 갑자기 공손하게 


" 죄송합니다. 어머니. "

" 네가 희경이구나? 들어가자. 밥 차려놨다. "


식탁에 앉자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여져 있었다. 희경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공깃밥을 뚝딱 먹어 치웠다. 그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는

" 어른들 깨시니 설거지는 그냥 담아두고 조용히 어서 들어가서 자. 늦었다."


" 네"

우리는 얼른 대답을 하고 바로 간단히 세수만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희경이 길게 한숨을 쉬고는

" 와 너네 어머니 진짜 무섭다. "


" 이제 알았어?"

" 네가 왜 그렇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는지 알겠다. 와 밥 다 올라올 뻔했네. 근데 무지 맛있다."

" 어서 자."


내가 희경에게 이불을 덮어주자 희경은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덮고는 옆으로 등을 보인 채 누웠다. 그리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 넌 좋겠다. 이런 가족들이 곁에 있어서."

" 너도 있잖아. 가족."


" 가족 같은 소리 하네. 별 그지 같은 인간들."

" 야 너 말을 해도... "

" 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 인간들은. 정말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돼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야. 그놈의 집구석."

 " 어서 자. "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 그 끝에 움켜쥔 연필. 

그 손가락을 타고 내려온 굵은 힘줄과 핏줄을 움켜쥔 듯 감아 든 근육질의 팔뚝. 그 위를 터질 듯 동여 올려 메서 채워진 팔뚝 위 접힌 옷소매. 재민 샘의 떡 벌어진 어깨를 연신 번갈아 보며 학생들은 넋을 잃고 샘의 얼굴과 어깨를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민샘이 시범을 보일 때면 그렇게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며 다들 초 집중한 나머지 누가 다가와도 모르게 앉아 시선을 고정한 채 오로지 재민샘만 바라봤다. 


" 에험. 다들 침 좀 닦자. 사람이 다가와도 아는 척을 안 하네. 이렇게 다들 보라는 그림은 안 보고 말이야. 재민샘 얼굴만 온통 쳐다보고 있으니 그림 실력이 늘 수가 있나. 재민샘 저 좀 잠시 보시죠. "


어느새 우리 곁에 원장선생님이 다가와 계셨고 그런 원장선생님의 부름에 재민샘은 연필을 내려놓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러자 몇몇의 여자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내 후다닥 달려와서는 헐레벌떡 숨을 내 쉬며 

" 야. 큰일 났어. 재민샘 우리 이제 안 가르치나 봐. "

옆에서 현욱이 물었다.


" 왜?"

" 재민샘이 그럼 우리 떠나버리는 거야?"

" 아 재민샘 보는 낙으로 오는데 이제 어떻게?"

아이들은 저마다 속상해하며 한 마디씩 했고 주변은 소란스러워졌다.


원장샘과 재민샘의 대화내용을 엿듣고 달려온 아이들이 급히 상황을 설명할 틈도 없이 이내 뒤따라온 재민샘이 자리에 앉자, 원장샘이 시범을 보이던 자리로 와서는 말했다. 




" 이야기 들어서 알겠지만 수요일까지 그러니까 이번주까지 재민샘이 수업하고 다음 주부터 재민샘은 3학년 디자인 실기수업을 들어갈 예정이니 1, 2학년 데생 수업은 한동안 내가 지도할 예정입니다. 다들 이번주까지 재민샘과 수업 잘 듣고 마무리 잘하도록. "


그렇게 말하고 원장샘이 화실을 나가자, 이내 주변이 술렁였다. 그러자 재민샘이

" 이야기 들어서 알겠지만 아마도 모레가 마지막 수업이 되겠네. 우리 남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 "

" 샘 이런 법이 어딨어요? 저희가 싫어진 거예요?"

옆에 있던 진아여고 애들이 한 마디씩 하자 이내 희경이 무심한듯 

" 그렇게 아쉬우면 송별회라도 하던가."


" 샘 우리 송별회 해요. 송별회 송별회."

아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송별회를 외쳤고 그런 우리의 부산함에 샘은 몸 둘 바를 몰라하더니 이내 주변을 조용히 시키고는 

" 그럼 수업시간에 원장샘 눈치도 있고 다른 반 수업도 방해되니 송별회 하기는 그러니까. 언제 가 좋을까? 음. 평일에 수업 끝나면 다들 집에 가기 바쁘니까 주말에 너네 시간 될 때 하자. 언제가 가능하니?"

그러자 이내 혜영이


" 샘 이번 주말 어때요? 샘 자취방에서 해요. "

" 안돼. 우리 집은 너무 멀어. "

그러자 아이들은 다들 샘을 졸랐다. 이때 명숙이 한층 더 들떠서는 거들고 나섰다.


"  애들 대부분 경원대 근처 살고 경원대가 종점 근처니 진아여고 애들도 오기 편하고. 샘 집이 경원대 앞이니까 장원여고 애들만 가면 되잖아요.  샘 집에서 해요. 네?"

" 다들 참석 가능하겠어?"

그러자 애들은 

" 네! 해요. "


그러자 재민샘이 난처한 얼굴로 나와 희경을 바라봤다. 그러자 희경이 어깨를 들썩이며,

" 뭐 어때요? 미소는 내가 데려가면 되고. 저희도 가능해요. 우리만 가면 다 참석 가능한 거라 잖아요?"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30분.

현욱은 주말이면 과외며 학원수업때문에 이미 참석을 못한다고 해서 빠진 상황이고 희경의 손에 이끌려 참석은 한다고 했지만 막상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할때까지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희경이 가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버스에 올라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희경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났지만 희경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경원대 버스정류장에 서서는 한참을 희경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다

' 에이 그냥 못 간다고 말하고 집에 갈까? '

라는 생각이 들려고 할 때 


" 여보세요?"

" 희경아!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나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너 왜 안 와?"

" 아 미안. 나 지금 급히 갈 곳이 있어서 재민샘한테 상황은 이야기해놨으니 거기 딱 기다려 재민샘 올 거야. 알았지? 어디 가면 안돼. "

" 야. 희경아. 너 안와? 재민샘한테는 왜 연락한 건데? 재민샘한테 뭐라고 한 건데...? 여보세요?"


어이없게 재민샘한테 뭐라고 한 건지 자초지종은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재민샘에게 전화를 했다.

"샘 저 미소인데요.  "

" 아 안 그래도 희경이 한테 전화받았어. 나 지금 너 데리러 나가는 길이야. 지금 버스 정류장이지?"


" 네? 네... 아 저 근데. 오늘은 일이 생겨 못 갈 거 같아요."

" 아냐.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바로 데리러 갈 테니까. 10분만 아니 5분만 기다려. 진짜 금방 갈게. 뚝"

" 아 아니.."

채 말도 다 끝내기 전에 재민샘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저리 오가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10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 




" 미소야. 많이 기다렸어? 어서 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재민샘이 헬멧을 내게 내밀고 있었다. 


뒷 좌석이 위로 올라간 오토바이. 

" 오토바이 무서워요."

내가 망설이고 있자 재민샘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내 두 손에 헬멧을 쥐어주고는 머리에 띄웠다. 그리고 내 손을 이끌어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웠다. 

" 오토바이 처음 타는구나? 걱정하지 마. 나만 꼭 붙잡으면 돼. "


그렇게 말한 재민샘은 내 두 손을 자신의 허리에 감싸게 하고는 이내 허리를 숙였다. 

" 부릉~"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털컥 거리며 안전장치가 풀리자  오토바이는 흔들렸고 나도 모르게 재민샘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그의 등에 기대었다. 


경사가 진 뒷좌석 오토바이는 몸이 자연스레 그의 등에 내가 기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자 재민샘은 내가 꼭 붙잡은 손을 한번 더 확인하더니

" 잘 잡아야 해. 놓치면 위험해. 알았지? 꼭 붙잡아. 간다."


그의 등에 기댄 채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천천히 오토바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길게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옹기종기 모여든 자취방과 빌라들 사이 좁은 골목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 길.

구불구불한 그 길을 따라 오토바이는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시끄러운 엔진소리와 속도감에 못 이겨 더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가 흘깃 뒤를 돌아보더니, 

" 훗. 귀엽네. 이런 걸 무서워하는구나. 꽉 잡아."

그렇게 말하고는 조금 더 속도를 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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