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들여다보면

그를 대하는 법

by moonrightsea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분에 겨워하는 것도 정우에게서는 느낀 적이 없는 감정들. 미쳐 내가 이 세상에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


인간이기에 느끼는 모멸감. 절망감. 좌절감. 어쩌면 그 모든 숱한 표현으로도 모자랄 감정들.

그에게 느끼는 어떠한 연민도 애정도 애증도 사랑도 이런 마음과 같을까. 다를까.


그를 보면 화가 나고 그에게 달려들어 난리치고 싶은 감정들. 그를 보면 미치도록 소리치고 싶고 마치 발광한다는 표현이 맞는 이 감정들. 어쩌면 이리도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나. 도대체 그가 무엇이길래.


그는 이토록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나.


문득. 그런 생각 뒤에 나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다시 가지런히 책을 정리하고 옷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불을 밝히고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못 채운 부분들. 내가 놓친 부분들. 내가 알고자 한 부분들. 내가 찾고자 한 부분들.


분명 이 책 속에 답이 있지 않다면 결국에는 그에게 답이 있으리라.



회사가 병합되고 옮긴 부서는 전략팀.

소비자 심리를 분석하는 최정예 팀으로 석박사 이상급의 수재들이 포진한 그곳은 전 세계 내놓으라는 인재들이 모인 곳으로 저마다 말로 다 설명을 못할 정도의 스펙을 자랑했다. 영재들은 기본이고 몇 국어를 하는 친구부터 대부분 나보다 어리거나 아니면 나보다 더 몇 배는 많은 연봉을 자랑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하는 일은 각 연령층의 소비패턴을 심리학에 근거해서 분석하고 행동을 분석하여 앞으로의 소비패턴에 적용하고 다시 사회 시스템에 적용하여 회사 시스템화 시키는 정교한 작업들. 그리고 이들이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철저히 계산된 공학식을 적용하여 분업화되어 회사는 돌아갔다.


하다못해 회사의 컵 배치 컬러 배치, 커튼의 위치까지 이곳의 철저한 분석에 의해 배치되고 일의 효율과 능률을 극대화시켜 이윤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전략적으로 나아감으로써 여기 모인 모두가 실험체 인 동시에 분석가이자 멀티 테스터 였다.


눈만 뜨면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심리적 분석 대상이 되어 서로를 감시하고 분석하며 패턴화 하고 정형화하는 작업이 쉴세 없이 이뤄졌다.


그 모든 것이 이뤄지는 공간에서도 그들에게 자유는 존재했고 휴식도 존재했고 그들의 삶은 여느 직원에 비해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유일하게 없는 것은 사장과의 면담 시간. 여기서 사장은 대표로 불리며 매시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온라인 홈페이지에나 존재하는 인물이고 SNS를 통해서나 소식을 접하는 연예인이었다.

분석하길 좋아하는 이들에게 대표는 항상 화제의 중심이었고 그의 일상은 더더욱 이들에 의해 철저히 공유되고 또 브리핑되었지만 회사에 입사하고 두 달이 넘도록 그의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나도 나름은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며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부서의 특징이 나를 더 보호해 주는 느낌이랄까.




지하철 역에서 내려 급하게 올라탄 엘리베이터 앞. 그 바쁜 출근 시간 가득 찬 인파들 사이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 급한 마음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덥석 엘리베이터를 탔고 내가 타자 마자 한 명이 부리나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닫히는 문.


이상한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바라보고 섰는데 문에 비친 그의 모습.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려 태호를 바라보고는 다시 놀라 고개를 돌려 급히 3층을 눌렀다.


" 11층 아니던가?"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

엘리베이터는 멈춤도 없이 바로 30층으로 올라갔다.

대표실.


" 미안. 이건 내 전용이라서 말이지. "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말자 바로 내려 나가려 돌아섰는데...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다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그제야 나를 보며 씩 웃었다.


" 내 방은 엘리베이터랑 비상계단 밖에 없어. 아무나 못 오는 곳이거든. "


전면 유리창을 뒤로 대표책상과 마주 보며 길게 이어진 긴 테이블. 그 옆으로 가로 지르는 긴 진열장. 그 뒤로 목을 빼고 보니 출입구가 보인다. 저기구나.


내가 몸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며 나가려 들자 그가 내 팔을 잡고는 돌려세웠다.

" 그냥 나가려고? 이렇게 오랜만에 봤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두근대는 내 심장소리.




멋들어지게 내려온 그의 심플한 넥타이. 그 위로 길고 굵게 뻗어 올라간 그의 목. 그 가운데 꿀꺽 타고 올라가는 그의 커다란 목젖. 그리고 거만하리 만치 내려간 그의 매서운 눈매. 오늘따라 유달리 힘을 준 앞머리. 그의 딱 벌어질 어깨선을 타고 내려온 내 팔을 잡은 그의 거친 손. 그 손목에 반짝이는 커프스.


나는 손을 뻣어 그의 가슴에 살며시 댔다. 그리고 그를 손끝으로 밀었다.


" 이제 아침인데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비상구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다리는 미친 듯 후들거렸고 기어이 18층쯤 왔을 때 나는 난간을 붙잡고 섰다.

크게 숨을 후~~ 우 쉬고 다시 몇 걸음 내려와 다시 숨을 후~ 쉬고 그 자리에 서서 조금 더 진정을 하고 그리고 빠르게 내려오던 발걸음을 천천히 한숨을 돌려가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12층.

코너를 돌려고 할 때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


" 글쎄 아침에 누가 대표님 엘베에 탔대. "


" 누구래? 그 간 큰 사원이?"

" 모르지. 내일 되면 알겠지. 내일 또 누가 대기 발령받거나 순환 보직받으면 그 사람 아니겠어?"


" 아휴.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생긴 거랑 다르게 성격은 겁나 까칠해서는."

" 뭐 그래도 난 부럽기만 하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신의 얼굴을 영접한 거 아냐?"


" 뭐 근처서 봤으면 로또 번호라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건드는 사업마다 대박이고 인수합병하는 회사마다 주식 폭등이고 대박이지. "

" 암튼 누군지는 몰라도... 불쌍하게 되었네. "




" 정대리 또 걸어왔어? 그냥 엘베 기다리지 그랬어? 고작 몇 분 차인데."

내 이름은 정연수가 아닌 정대리. 회사가 합병되며 유일하게 남은 사람인 나를 사람들은 정대리라고 불렀다. 사장이 추천한 인재라고 그렇게 부른다고 했지만 그들은 서로 이름을 불렀고 직함이 있는 사람은 팀장 이상급의 사람으로 대우해 주며 나름으로 합병한 회사와 본회사와의 구별을그렇게 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관심은 내게 없었다. 그들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기에 나는 어쩌면 더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도 수월했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기도 나았지만 어느새 내게 관심을 가지는 팀장이 생기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나와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동갑. 하지만 능력은 이미 인정받아 애시당초 진급이 확정이 된 상태에 집안도 빵빵한 집안이란 소문이 파다했고 얼굴도 꽤나 준수했고 더구나 미혼. 그는 일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라 은근 여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내 신상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유부녀인 것도 그는 알았다. 왜냐면 그가 우리 회사의 인수합병에 결정적인 실무진 역할을 했으니까.


극비에 진행된 인수합병 작업에 그의 스펙은 꽤나 유용하게 작용했다. 그가 제일 먼저 우리 회사에 회사 자문으로 파견되어 한 일이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쳐낸 역할이었고 그 다음 한 일이 회사의 재무구조를 파악하고 주가를 분석하고 그 다음 한 일이 실무진 중 현재의 회사에 데려갈 인재를 뽑는 일이었는데 그는 단호히 나를 제외하고 회사에 인재가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고 스스로 내게 말했다.


사장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나는 태호를 보고서 알았다. 그 모든 게 그의 계략이란 사실을. 다만 저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았다. 한 팀장. 그는 철썩 같이 본인의 눈을 믿고 있었다. 대표가 원하는 인재를 골랐다고 자부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유독 나를 챙겼는지 모른다. 내게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보이며.



퇴근 무렵.

사내 메신저로 뜬 메시지.

' 해가 졌군. 지하 4층.'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퇴근시간. 붐비는 엘리베이터. 하아. 나는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구 문을 열고 9층으로 접어들었을 때 누군가 내 팔을 이끌었고 고개를 돌리자 나도 모르게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나를 붙잡은 손. 고개를 들어보니 한 팀장이었다.

" 밤에는 비상계단이 위험해요. 조심해야지."

" 제가 유부녀인 거 알고 있으시죠?"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으로 나를 밀며 다가왔다. 그러며

" 매력적인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나는 그런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는

" 모르나 본데."

그를 밀며

" 유부녀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요? 당신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하는 세계를 알거든. 유부녀가. "


그렇게 말하며 8층 비상문을 열고 나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눌렀다.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출입구로 냅다 달렸다.


내가 동네 호군 줄 아나.

유부녀에 혼자 사는 여자. 그에게 보인 내 모습은 마치 별거 중이거나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 외따로 떨어져 미친 듯 돈을 좇거나 언제든 쉽게 다룰 수 있는 여자쯤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나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다른 이들에게 관심 따위는 없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 교정. 태호의 차가 보였다. 나는 그 옆을 지나 걸어 내려가는데 그가 차에서 내리더니 나를 이끌어 차에 태웠다.



" 여전히 말을 안 듣네. 어차피 내 손아귀인데."

차에 탄 내가 여느 때와 달리 가만히 앉아 있자 그는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차를 몰아 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지하주차장. 문 앞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 당신이 모르는 게 있나 본데. 여기가 당신 손아귀라지만 당신에게 달린 눈이 그만큼 많음을 의미하기도 하죠. 당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렇게 함부로 생각 없이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단 말이죠. 안 그래요?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이내 빙긋 웃으며 내 안전벨트를 풀었다.

" 돈이 왜 좋은 줄 알아? 이런 모든 것을 다 막아주니까 그런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서 내려 내 차문을 열었다.


나는 순순히 그의 차에서 내려 그의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의 반응이 이상했는지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이내 나를 거칠게 엘리베이터 벽에 밀고 내 몸을 타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 이 순간을 아주 간절히 기다렸지. "

그의 거친 숨결.


귀 옆으로 느껴지는 거친 숨결에 나는 '하아'하고 숨을 내 쉬었다.

그러자 그가 이내 더 흥분해서 내게 거칠게 키스를 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나의 손을 이끌고 집안으로 나를 들였고 나는 그의 그런 행동에 기댄 채 천천히 집안을 훑어 봤다. 예전에는 미쳐 보지 않았던 던 그의 집.

아무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그의 공간.




깔끔하게 정리된 그의 공간에는 심플한 디자인의 가구들. 드라마에서나 보는 그 화려한 샹들리에도 없는 깔끔한 장식이 돋보이는 길게 내려오는 일자 디자인의 포인트 샹들리에.


언제든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스탠드 바. 그 위에 깔끔히 진열된 위스키와 그 곁에 장식장 안에 가득 찬 값비싼 술들 그옆에 차려진 과일 안주들. 스탠드 바아래로 반투명 유리에 보이는 와인냉장고. 그리고 'ㄷ'자로 연결된 주방. 뒤로 길게 이어진 복도로 난 방 3개.


거실 반대편에 위치한 화장실. 옅은 회색빛 벽면. 모든 색감은 그레이톤으로 차분하게 통일 감 있게 구성되어 있고 테이블은 짙은 오크색 계열. 소파는 화이트 톤의 아이보리 계열. 커튼은 깊은 심해를 나타내는 인디고 계열.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을 읽어 내려가는 그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이 공간에서 자신을 객관화시키며 철저히 분석하는지 다른 방의 디자인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승리의 쾌감을 맛보는 화장실은 금색으로 치장한 화려한 디자인의 장식품이 있는 공간일 테고 옷방의 옷들은 가지런히 투명 유리에 진열되어 그의 선택을 기다릴 것이다.


그가 매일 보는 서재는 아마도 오크색 색상의 책상과 검은색 디자인의 의자가 있겠군. 책은 마치 벽면이듯 한쪽 벽을 가지런히 색상별로 진열해 뒀을 거고. 그의 침실 옆 다른 한 방은 게스트룸쯤 되려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어느새 그는 내 옷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나는 잔뜩 흥분한 그의 손을 잡은 채 그의 입술에서 입을 떼어냈다.




그러자 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바라봤다.


" 오늘은 이만하면 구경 잘했는데... 그만 가봐야겠어요.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그는 흥분을 가라앉힌 채 웃더니 뒤돌아 스탠드 바로 가서 위스키를 한잔 부어 마셨다.


" 오늘 여기 온 목적은 내가 아니었군."

" 이제 알았으면 된 거죠. "


그러자 그가 '흐음'하며 숨을 내 쉬더니

" 그래 다음은 뭘로 나에게 한발 더 틈을 주려고 그러나?"


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나가가 그의 목 넥타이를 당겼다. 그는 어느새 내 허리를 한 손으로 감쌌다. 그런 그의 손을 한 손으로 잡았다 다시 놓고 그의 목에서 넥타이를 풀고 단추를 두 개 풀었다. 그리고 그 사이 선명히 드러나는 그의 가슴에 내 코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가

'하아'

하며 목을 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그의 목으로 손을 뻣어 천천히 타고 내리며 그의 가슴속으로 손을 파고들다 손을 돌려 그의 정장 위로 드러난 그의 넓은 가슴으로 가져다 대며,


" 조급해 말아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직 여기 근처도 안 갔어."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손을 떼고 그를 가볍게 밀어버리고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그에게 등을 돌려 눈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흐음. 게임이 재밌어지겠군. 기대해도 좋아. "

" 얼마든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니까. "




사냥꾼에게 틈을 만드는 방법은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특히 먹잇감이 다 잡혔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미 나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접근한 그에게 빈 틈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줄다리기가 아니다. 그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그를 긴장하게 하면서 때로는 잡힌 것처럼 때로는 죽은 것처럼 행동하며 그의 시선을 교란시켜야 하고 때로는 그에게서 동정심도 얻어내야 한다.


그가 다 잡은 먹잇감으로 생각한 것이 때로는 그를 잡아먹는 맹수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내가 맹수가 되기에는 내가 가진 패가 너무 약하다.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노련하게 피해서 도망을 쳐야 하지만 한번 문 먹잇감을 쉬 놓을 인간도 아닌 그를 어떻게 이 판에서 떼어낼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매력적이지 않은 먹잇감이 되어 더 나은 먹잇감을 줘버리면 되는 것. 나보다 더 나은 탐나는 것을 물어다 주는 편이 낫지만 애초에 판의 설계는 나를 체스판의 여왕으로 두고 시작된 판. 그렇다면 내가 잡아 먹힐 때까지 이 게임의 끝은 없다고 봐야 하는 게 맞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최대한 그의 손에서 살아남아 그의 애간장을 녹여야 한다는 말.


그는 공간을 매우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선택받은 자만이 출입이 가능한 공간.


그가 머무는 공간에 그를 설명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말에 집중하게 되고 그런 그의 말과 선택을 통해 오로지 그의 행동을 통하여 그는 설명된다. 그런 공간에 내 던져진 평범한 인간은 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욕망에 눈앞이 가린 자들은 그에게 순순히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전할 것이다.


그의 인간관계 또한 그는 잘 짜 놓은 시스템을 이용하겠지.

철저히 전문화 분업화된 시스템을 이용하여 선택받은 이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며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능력치를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여건을 주는 한편으로 그런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선택이 되는 순간 언제든 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런 그의 눈썰미는 예리하고 냉철하며 자신의 공간으로 최종적으로 먹잇감을 날라와 원하는 순간에 언제든 원하는 것을 취해 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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