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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대신할 수 없는 것

이상과 현실 차이

by moonrightsea

" 이제 더는 너를 친구로도 못 보겠다."

" 미안해. 하지만..."

" 나한테 미안한 문제가 아니잖아. 이건 네 일이야. 어떻게 그렇게 그냥 둘 수 있어?"


" 나인지... 어떻게 안 거야?"

" 지금 그걸 나한테 말이라고 물어?"


내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자 한팀장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분명 선화 씨가 한팀장과 결혼을 했다고 말한 그 시기는 내가 태호의 집에 머무를 때였다. 그 말은 이미 그전부터 선화 씨를 만나왔다는 말인데 그때는 한팀장이 결혼을 준비하던 기간이기도 했다.


" 넌 아내가 있잖아. 아니 그때는 사귀던 사람도 있었잖아. 근데 왜 그런 거야?"

그러자 한팀장은 조금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아니 그때는 그때는 정말 실수였어. 처음에는 그냥 네 남편의 정보를 알아볼 요량으로 접근했던 거고 그 후로 그쪽에서 가끔 연락이 와서 나도 연락하면서 자연스레 물어봤던 거고 그러다 정말 우연히 정말 그러니까 우연히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온 선화 씨가 먼저 연락이 와서 네 안부를 묻길래 만나서 술 한잔 한다는 것이... 애가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 "


" 그럼 서울에서 만난 아내를 정리했어야지. 왜 그랬던 거야?"

" 이미 아내랑 날까지 다 받아 놓고 식장까지 다 잡아 둔 상태였는데 선화 씨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걸 어떻게. 그래도 헤어지고 아내랑 결혼은 했는데 그사이 선화 씨가 애를 낳고 다시 연락이 오면서 막상 아내가 입신하고 너도 알다시피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잖아. "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떻게 네가 두 여자의 인생을 망쳐. 네가 뭔데... 네가 도대체 뭐라고 너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

" 아냐. 나 쓰레기 맞아. 그런 놈이었어.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될 줄. 막상 마음은 선화 씨가 맞는데 어떻게...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아내를 어떻게 무슨 면목으로 헤어지냐고. "


한팀장이 선화에게 접근한 건 내가 서울에 오면서였던 거고 그 후 그녀와 연락을 이어오다 지금의 아내와 날을 받아 놓고 선화와 우연히 보낸 하룻밤이 그에게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와 선화 씨 사이에 아이가 생겼는데 그걸 모르고 그는 결혼을 했고 그 후에야 선화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그가 선화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와 결혼한 척 꾸몄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애를 낳고 그러는 사이 선화가 신경 쓰였던 한팀장은 그녀와 연락을 이어오다 결국 아내와 헤어질 결심을 했었지만 이미 아내가 임신을 한 후였다.


" 그럼 사랑하지도 않는 아내와 애는 왜 가진 거야? 그럴 거면 헤어지고 선화 씨에게 가던지."

" 나도 그러려고 그랬어. 그래서 아내와 잠자리도 피했던 거고. 그래서 이혼하자고 미친 듯 싸웠는데 그런데 하필... 둘이 술을 먹고 임신이 되는 바람에..."


" 그래서 술도 잘 안 먹던 네가 그렇게 술타령이었던 거야?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한팀장은 나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어제 선화 씨 만났어. 오늘도 만날 거야. 선화 씨 너 찾아서 강원도 우리 집에 들어와 있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한팀장은 눈이 동그래졌다.




" 너 강원도 갔어? 언제? 회장님이 별말씀 없었는데?"

"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테니까.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지금 네가 나 걱정할 때야? 니 걱정해.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야.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선화 씨 만나서 서로 입장 정리해. 내가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야. "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한팀장은 다시 나를 한번 쓱 바라봤다. 그리고는

" 너는 보이는 구나. 내가 누구에게 더 마음이 있는지."

" 네 스스로 알면서 외면하려 들지 마. 세상 그리 녹녹지 않아. 알잖아. "


" 근데 그 모든 걸 내려놓는 게 쉽지 않다면?"

" 그건 네가 선택할 문제지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냐. 네가 수습해야 할 문제야. 넌 참 재주도 좋다. 초식남 주제에 어디 술김에..."


내가 그렇게 말하며 한팀장을 째려보자 한팀장은 이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 선화 씨가 너한테 마음이 없었던 걸 알면서도... 넌 참 대단하다. "


" 그 그건 어떻게 알았어?"

" 그러면서도 선화 씨가 좋은 이유는 도대체 뭔데?"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내가 그때는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돼. "

" 정말 남자들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 정말. "


하아~ 갖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마음.

도통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왜 분명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면서도 가지려고 들까.


왜 굳이 자신의 것이 아닌지 시험해 보려 할까. 왜 선화 씨는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흔들려서는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남녀 관계는 둘의 문제니 다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말하고 보니 나도 한편으로 태호가 생각이 났다.


나 스스로 마음을 내어준 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그리고 우리 태영.


잘 지내겠지...?


그들은 내가 없어도 분명 그들의 원하는 것을 얻으며 잘 지낼 사람들이니까.


한팀장과 헤어져 카페를 나서는데 입구에 낯익은 차가 보였다.


" 사모님. 회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모셔오라고 합니다. "

" 저는 볼일이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시죠.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차 뒷좌석 문이 열리며 태호가 나를 불렀다.

" 타. 가서 이야기 좀 하고 가."


차는 한강변을 돌아 그가 최근에 인수한 비즈니스호텔로 들어섰고 그는 나를 호텔 스위트룸으로 안내했다.


" 괜한 오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더는"




내가 그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는 나를 보며 그저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 난 단지 이야기를 다 못 들었을 뿐이야.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래."


최근에 리모델링을 끝낸 스위트룸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뷰를 지녔다. 스위트룸으로 들어서고도 한참을 스케줄 조절로 내도록 통화를 하며 일정을 조정하던 그가 이내 뒤돌아 내가 앉은 소파로 왔을 때 그는 약간은 긴장한 듯 보였다.


" 혹시 당신이 떠난 게 이것 때문이야?"


그는 내게 서류를 내어 보였고 그의 손에는 가족증명서가 있었다. 그와 세희, 그리고 태영이 함께 올라있는 서류. 내가 태영이 태어나고 집을 나갔을 때 태영의 출생 신고를 하며 올린 서류들.


나는 서류를 덮어 두고 다리를 꼬아 앉아서는 천천히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 이건 이미 예상했던 거야. 이런 걸로 당신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요. 난 떠난 게 아니니까. "


" 그럼 도대체 뭐야? 당신이 왜 나를 떠난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

" 아직도 모르겠어요? 난 애초에 당신의 아내였던 적이 없어. "


그러자 그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 당신도 나를 원했잖아. 난 느껴졌다고. 당신이 나를 간절히 원하는 게. 당신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예전부터 항상. 그래서 당신을 곁에 둔 거였다고. "


" 지금도 그래요? 내가? 내 마음이 느껴져?"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태호는 내게 다가와 내 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이내 흔들리는 눈동자로 시선을 외면한 채.


" 왜 근데 지금은 안 느껴지냐고. 왜! "




" 그건 애초에 내가 원하지 않으니까. 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내어주었고 이제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졌잖아요. 그거면 만족할 줄도 알아야지. "

내가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한대 피우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그는 이내 소파에 앉아서는 나를 바라봤다.

" 왜 당신 곁에 내가 아니 나와 태영이 아니고 그들이야?"


나는 천천히 일어나 담뱃불을 껐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 난 나름 최선을 다해 당신을 지키고 있어. 그것만 잊지 말아요. 그러니 더 이상 선도 넘지 말고. 모른 척 지내요. 당신이 원하는 꿈만 바라보고. 사사로이 나와 엮일 생각으로 욕심부리지 말아요. 그게 당신이 살길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잡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가 내려놔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이미 세희는 그녀가 가진 본인의 지분을 포기하고 그에게 갔고 그들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이 되어 언론에 대서특필이 된 상황이었다. 이제와 그에게 나란 존재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임에도 그는 갖지 못한 내가 이내 아쉬울 따름.


그에게 그의 마음에 과연 나에 대한 사랑이라는 마음은 존재하기는 한 걸까.


나를 갖고자 하는 욕망 이외에.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마음.


태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급히 타자 마자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숫자를 세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끼고는.




기억하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사람의 뇌는 더 선명히 그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더 머릿속에는 각인이 되는 법. 이때는 오히려 생각의 끝을 가만히 두거나 다른 생각들로 채우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태영과 있었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기보다 그 아이의 무표정한 표정을 떠올리고 태영이 하우스키퍼와 환하게 웃던 모습을 떠올리는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게는 일말의 죄책감이 사라진다. 애초에 내게 주어진 운명에 충실히 해야 그 아이의 운명을 지킬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내가 거둬가지 않으려는 몸부림.


태영의 기운은 나와 멀어질 때 그 기운이 더 강해진다. 그 아이에게 생의 원동력은 나와의 이별. 그것이 그 아이 생의 원동력이고 나와 같이 있을 때 내가 태영에게 다가갈수록 그 아이의 명운은 짧아진다. 그리고 나는 내 힘이 되살아났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내게 사라졌던 기운이 되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


태호에게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강한 기운으로 인해 태호의 야망에 그의 욕망이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태호가 개발하고 있는 감정을 조절하는 칩은 어찌 보면 인간에게 매우 유용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지배하거나 통제하기에 그만큼 좋은 것도 없는 법.


그것의 안정화를 위해 태영의 혈액과 내 혈액의 연구는 필수였다. 거기에 나와 태영의 행동패턴과 생활패턴 일상의 모든 데이터들을 연구한 자료들은 좋은 재료가 되어 쓰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연구의 성과는 거기까지.




인간이 가진 모든 본성과 욕구. 삶. 감정. 그 모든 것들을 데이터화해서 정형을 뽑아낸다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역부족이었지만 물론 일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두 얻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는 순간. 인류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나는 이런 그의 생각을 간파하고 내 혈액을 기관에 기부했다.


그들 또한 태호의 연구를 알고 있었기에 견제를 하던 중이었고 그들에게 무엇보다 내 자료는 유용하게 쓰였다. 그들이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은 태영의 자료였지만 그것은 태호의 독점자료이고 태영의 목숨은 내게 달려 있었고 그런 태영의 심리적 상태와 감정에 대한 연구는 아직은 미완이라 태호도 기관도 불완전한 데이터를 가진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태호가 알고 있는 것은.

나라는 존재.

나라는 변수.

태호의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미 인간의 모습을 벗어나야 하겠지만 나는 끝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미친 듯 애를 쓰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호는 내가 변하는 포인트를 모르지만 나는 너무나 나 자신을 알 잘고 있다. 그리고 세희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도 태호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완성의 마지막 퍼즐은 태호이니까.


목숨은 목숨으로 대신하는 법.

세상에 불멸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순리. 대신할 수 없는 것을 탐을 낼 때 그 대가는 혹독하다.


어리석게도 인간은 그것을 항상 가끔씩 잊어버리고 하늘에 도전장을 내밀고는 한다.

그래서 한낯 인간일 뿐인 게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선화에게 바뀐 한팀장의 연락처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가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어차피 그들의 문제이기는 했지만 한팀장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자 선화 씨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처럼 내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도착하자 정우는 어느새 퇴근을 하고 정영과 식사까지 마친 뒤였고 정영은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 여보 우리 산책 좀 할까요? "


" 정영아. 잠시 혼자 있을 수 있지? 엄마랑 데이트 좀 하고 올게."


내가 정우에게 말했을 때 정우는 흔쾌히 윗옷을 걸치며 길을 나섰다.


익숙하게 집을 나서 차를 타고 이른 호수가.


우리는 그렇게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정우가 이내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빼서는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정우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 당신 서울에서 생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야?"


" 응. 당신도 알아야지. 그래야 우리가 같이 계속 살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내리죠. "

" 흠. 그건 당신이 애초에 내게 이혼 서류에 적어서 보냈잖아. "


나는 길을 가다 그 자리에 선 채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우수에 젖은 그의 눈빛.

" 당신이 화가 나야 하는 상황인데도 너무나 태연하게 행동하니 너무 당황스러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정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말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었지. 보통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게 가능한 일일지도 알 수 없는 거고."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겉옷을 풀어헤친 채 그에게 배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가 급히 내 옷을 덮으며

" 날도 추운데 무슨 짓이야. 감기 들어."


"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봐요. 보이잖아요. 선명한 수술자국. 이게 뭘 의미하는지 당신도 알잖아. "


그러자 조금 당황해 보이던 정우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 팔을 이끌며.

" 그래. 보통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행동들이지. 그런 당신이 여기 있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당신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 "


그의 말에 나는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채.


" 화... 나지 않아요?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나를 믿을 수 있겠냐고. "


그러자 정우는 뒤돌아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내가 당신의 삶을 당신의 밤낮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글쎄. 몰랐을 수도 있었을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사실 나도 인간인데 어찌 당신을 이해하겠어. 단지 당신의 선택을 믿으려고 노력했었고 당신이 보여준 그 배. 아마도 정영의 동생이겠지만 그 어린 핏덩이를 두고 적어도 당신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거라면 이제껏 그가 내게 달려와 당신을 달라고 난리 치지 않은 걸 보면 당신이 현명한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늘이 선택한 인연이고 운명이니 당신이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도 이해하고. "


그러다 문득 발길을 머문 채 바닥을 보며 그는 슬픔에 젖은 채 말했다.

" 근데 나도 인간이라 나 혼자였다면 아마도 못 견뎠을 거 같아. 미쳐버렸을지도 모르지. 근데 말이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 당신이 내게 준 선물이 있었잖아. "

"우리 정영이. 얼마나 대견한지. 내가 힘들어질 때마다 그 녀석은 얼마나 대견하고 씩씩하게 나를 다독이며 당신을 믿고 잘 버텨냈는지 몰라. 그런 정영이 참 의지가 되더라고. 그 녀석을 보며 나도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를 썼지. 그리고 당신이 우리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항상 당신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걸."


나는 정우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내 두 볼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

" 내가 당신과 정영을 지키려면 나 또한 내 피와 살을 내어주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걸. 알겠더라고.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삶이고 마음을 내려놔야 하는지도. 살아가면 갈수록 더 어려운 게 인간의 삶이고 부모의 삶인 거 같아. 다른 사람에게 갔었던 나를 당신 진심으로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러자 정우는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 적어도 당신이 내어 준 게 마음은 아니란 사실을 아니까. "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천천히 들어 그의 가슴에 얹었다. 그리고


" 당신이란 여자가 여기에 당신의 마음을 숨겨둔 걸 아니까. 그리고 이 눈물. 당신 쉽게 보이지 않잖아. 그것 또한 아니까. 그래서 당신을 믿는 거야. 당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한 지를 아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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