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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Mar 22. 2016

마음의 병을 위한 처방전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완연한 봄이 왔다. 

 음원 차트에서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앤딩'이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며 10위권 안착을 시도하고 있고, 한 낮에는 반팔 차림의 사람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날씨가 된 것이다. 이제 곧 있으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아름다운 그 시절이 다가올 것이다. 봄이 되면 집 앞 역전 공원 가득 벚꽃이 피어오른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무언가 2%가 부족하지만, 일상과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이너의 벚꽃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 모습이 묘한 끌림을 만들어 예전 단편영화를 만들 때 인트로 장면을 그곳에서 촬영하기도 하였다.  지하철을 타러 가다 날씨가 너무 좋고,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Lasse Lindh'의 'You’re So Cool'의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그곳 벤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들으며 그곳에 앉아 있자니 알 수 없는 즐거움이 안쪽에서부터 차올라 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몇 곡의 노래가 끝나고 갑자기 힙합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다음 노래로 넘기려다 음악을 껐다. 옆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가 처음으로 들렸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멀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 소리, 그리고 새소리까지 조금씩 작은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리를 듣는다. 옆 벤치의 할아버지가 장기 훈수 두는 소리, 유모차를 끓고 나와 수다 떠는 어머니들의 소리, 지나가며 친구와 수다를 떠는 학생의 소리, 잰걸음으로 걸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는 직장인의 소리까지 많은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가 흘러 나간다.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정오의 시간이긴 하지만, 전철역 앞이어서 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정장을 입은 30대의 직장인부터, 기타를 둘러맨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과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는 아주머니, 그리고 무료함을 달래고자 집 밖으로 나온 것 같은 어르신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빠른 걸음으로 앞을 지나가고 있다. 옆을 보지 않고 하늘을 한번 처다 보지 않고 모두 약속이 한 것처럼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앞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빠르게 쉼 없이 전철 역사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 것일까?

 집이 1호선 라인에 있다 보니 신도림에서 환승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환승할 때 보면 1호선 문이 열림과 동시에 100미터 달리기의 출발 신호가 떨어진 것처럼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대부분 사람들 역시 경보 선수가 된 것처럼 다들 2호선으로 바삐 발걸음을 재촉해간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빠르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전 직장 인턴을 했던 후배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홈쇼핑 PD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인턴부터 체험단, 모니터링 요원 및 공모전까지 홈쇼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에 하나도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이다. 심지어 직원인 아내도 가지 않는 회사  봉사활동까지 같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나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생활하는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내면을 가만히 보면 불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좀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지금 내가 부족한 게 아닌가? 가만히 있으면 남들보다 뒷쳐져 낙오되는 것이 아닐까? 이 길이 옳은 길일까?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인가?' 모든 일에 대해 너무 불안해한다. 내가 볼 땐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잘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강남역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시간이 남아 옛 직장 동료를 만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6개월 선배였으나, 내가 이직을 할 때 신입으로 이직을 하는 바람에 그 친구가 나보다 1살 어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이 묘한 관계 때문에 친분은 있으나 친밀하지는 못하다, 이직의 이슈가 날아왔을 때 나는 이직보다는 여행을 선택하였고, 그 이직의 이슈를 그 친구에게 넘겨주며 자연스럽게 친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능력이 좋았던 그 친구는 이직에 성공해 새로운 직장에 잘 안착하고 잘 적응하며 살았고, 여행을 다니는 중간중간 가끔씩 안부를 물어오며 인연을 이어갔고, 지금은 가벼운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와 사는 이야기와 앞으로 둘 다 태어날 새 식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물어 익을 때쯤이면 그 친구의 단골 레퍼토리가 나온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할지 정말 답답하다.”

 40대를 앞둔 모든 직장인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 대화의 화두로 부상한다. 새벽에 일어나 회사를 출근하고 저녁 늦게 해가 지면 야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그 주체의 혼돈 속에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그 위안도 정작 열심히 일할 수록 가족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 괴리감을 느낄 때마다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직장 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진을 하기 위해 퇴근 후 영어회화 학원과 중국어 학원을 다니며, 주말에는 봉사활동과 대외 활동, 경조사를 챙긴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지만, 조직 내에서 한시라도 퇴보될까 봐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칼날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심정이라 가족을 위한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모두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뒤로 물러 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잘하고 있다며, 수고하고 있다는 칭찬의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를 그 누구도 건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일들은 모두가 겪어가고 있는 일이며 너무 당연한 일이기에 유난 떨지 말고 겸허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며 강요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인내를 그렇게 배워가며, 존재 조차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에 희생을 강요당하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오늘도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 힘겹게 살아가다 보니 모두가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않고 살아가게 된다. 대안이 없기에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희생을 감내하기 위해 작은 보상이 필요할 것이며, 그 보상의 일환으로써, 마음의 병의 처방전으로써 칭찬이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칭찬에 너무 인색하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고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활력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칭찬을 하는 당사자에게도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칭찬으로 한 이야기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칭찬을 한다고 스스로의 가치가 하락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칭찬을 함으로써 칭찬을 받는 사람에게 생각지도 않은 호감도까지 쌓을 수 있는 무결점에 가까운 대인관계의 최고의 스킬이다. 더 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삶이 힘들어 남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쉽게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뀌 생각하면 나의 삶이 힘든 만큼 옆의 친구의, 동료의 삶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해주기를, 힘이 되는 칭찬 한마디를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먼저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는 칭찬 한마디를 건네는 건 어떨까? 그 작은 한마디가 지금 벼랑 끝에 힘겹게 서있는 누군가에겐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 당신은 충분히 위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미래가 조금 불안할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이제껏 잘해 왔고, 지금처럼 노력하면 무엇이든 잘 해 낼 것입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그렇게 된다 하여도 당신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그 존재 자체 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같지 않으며, 자신만의 가치를 지닌 소중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옆의 소중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한마디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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