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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녀녕 Jul 05. 2024

이분법적인 생각은 참을 수 없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

[여름: 제 13부]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간관계가 점차 좁아지고 삶이 단순해진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 말은 나에게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나의 인간관계는 원체  좁기에 친한 사람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열 손가락을 넘기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못한다. 가뜩이나 좁은 인간관계인데 여기서 더 좁아지면 나에게 남는 인간관계가 있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맞지 않은 성격임에도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관계를 끊어내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물이 고이듯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가 화근이었다. 사실 그전부터 그 친구와의 만남은 좋은 감정보단 안 좋은 감정으로 기억된 날이 많았지만 단순히 나의 예민함 때문이라고 결론을 짓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녁식사 내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는 마치 문제의 답을 구했다는 듯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고 저녁을 먹고 있던 나는 음식이 기름진 탓인지 속이 불편했다. 그 후에도 나를 위한 조언이라며 직설적이고 강한 단어를 사용을 했는데 나는 그 마음이 고맙지만 괜찮다며 거절의 표시를 하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하지만 친구는 다시 그 대화를 꺼내며 자신의 말을 왜 듣지 않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나는 도대체 이 대화는 누구를 위한 걸까 라는 생각과 함께 친구의 대화 속 의도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에 접어들었다. 잠시 숨을 고르게 쉰 다음 친구에게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을 건넸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그렇게 대화 없이 지하철 역을 향해 걸었고 간단한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게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알던 친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저 이제는 내가 그 친구를 담아낼 마음의 그릇이 작아진 것이다. 예전에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컸다면 이제 그 그릇에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더 많이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어떤 걸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보다 명확해졌고 그만큼 나의 주관이 뚜렷해지기도 하면서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불협화음이 생긴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단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쉽게 지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이유 탓인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여 남의 의견을 수용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다. 대화는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을 쏟아 내는 말은 대화가 아니다. 일방적인 대화만을 고집하는 사람과 있다 보면 쉽게 피로해지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시 그 친구와 이야기로 돌아와서 잘 맞지 않았음에도 계속 친구 관계를 이어나갔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것뿐이었다.

혹시나 매번 어떤 인간관계에 있어서 불편함과 불쾌함을 심히 느낀다면 이 관계는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보낸  긴 기간이라는 게  꼭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지 않는다. 혹여나 홀로 남겨져 외로워질까 봐 걱정한다면 혼자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정리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구태여 오래된 관계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며 그 공간을 비워두어야 또 새로운 인간관계가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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