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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녀녕 Jul 12. 2024

비 오는 날, 낙엽

솔직함을 보여주는 계절

[가을 : 제1부]



가을 아침에 포근한 이불속을 벗어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시월에 쌀쌀한 아침 공기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머리를 감고 로션만 대충 찍어 바른 채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바람이 거센 탓에 덜 마른 머리카락이 묵직하게 바람에 날렸고 정류장 근처 은행나무들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군데군데 앙상한 가지들이 오늘따라 더 두드러지게 보였고 완연한 가을이 왔구나 생각했다.

  만약 가을이라는 계절을 사람에 비유하면 아마 중년쯤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사람을 계절에 비유할 때 봄은 유년기, 여름은 청년기, 가을은 중년, 겨울은 노년에 많이 빗대곤 한다. 봄과 여름은 항상 싱그럽고 성장하는 느낌을 주지만 가을과 겨울은 쓸쓸하고 저물어 가는 느낌을 준다. 나도 그런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만큼은 떨어지는 잎들을 보며 쓸쓸함 보다는 멋지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 군데군데 보이는 앙상한 가지들의 모습은 마치 꾸밈없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보통 우리의 어린 시절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서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화려하게 치장하고 실제로 우리가 가진 젊음으로 그 화려함은 배가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갈수록 타인의 시선에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내면을 채워 간다. 그래서 내면이 차곡차곡 채워진 중년의 무게로 옷차림은 전보다 간소해지고 단정해지는 것 같다. (사실 이건 개인의 취향이라서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화려함을 좋아할 수 있다.)

 ’ 가을 추‘ 사전적 의미를 보면 ‘벼’와 ‘불’ 합쳐진 글자로 햇볕을 받아 잘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계절을 뜻한다. 이처럼 나이를 들어간다는 게 한없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춘다는 게 아닐까. 여전히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닐 테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잘 알아가고 솔직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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